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이슬람 (문단 편집) === 종교의 특징 === >- "믿는 신앙인이란 하나님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알 후주라트|쿠란 49]]:15)"[[http://www.nwahy.com/quran/translate.php?sora=49&l=12|#]] >- "믿는 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 하라 하나님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앗 타우바|쿠란 9]]:123)"[[http://www.nwahy.com/quran/translate.php?sora=9&l=12|#]] 일단 경전 자체가 무함마드를 비롯한 예언자들이 신의 계시를 받고 전도와 성전으로 국가를 이룩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타 종교들에 비해서도 독보적으로 '''정치적이다'''. 신정에 입각한 정책, 도덕관, 외교 및 전쟁까지 굳이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경전에 대한 해석으로 교리가 성립하는 여타 종교와 달리 경전이 곧 교리 그 자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번 전향하면 배타적 신정사회를 형성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종교들은 대부분 영향력 내지는 명분만 제공하지만 이슬람은 경전이 교리 그 자체인데 쿠란 다음으로 중요한 경전인 하디스는 '''신정 지도자의 전기와 후일담'''이기 때문에 종교를 국가화하는 데 못을 박아놓는다.[* 튀르키예의 아타튀르크가 한때에 국부와 위인으로 칭송받은 것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교분리를 확립하여 국가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슬람 사회를 평정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안정적인 교화적 민주 체제를 이륙하면 다른 국가들도 뒤따를 것 같았지만 교리 자체가 워낙에 배타적이고 정교분리와는 정반대인지라 도리어 튀르키예가 다시 신정국가로 회귀하는 추세다.][* 종교학적으로 보자면 창시 당시의 이슬람은 한 유목민 아저씨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세력을 넓힌 유대교 내지는 그리스도교의 또다른 신흥 분파이기에 국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마니교]]처럼 차후 도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스도교 역시 초창기에는 주로 지중해 동부를 중심으로 유행하다 로마 제국의 공인과 지원을 받은 이후 서유럽으로 급격히 전파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다만 이슬람 역사 석학 아이라 라피두스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의 이슬람 신정 국가는 무함마드의 메디나 이주부터 [[우마르]] 사후까지 해당하며, 그 이후 이슬람 정권들은 명목상 정교일치에 그쳤다.] 이슬람의 기본 가치는 크게 (알라에 대한) 숭배, (타 문화/사회에) 전파[* 독특한 아잔 문화도 숭배와 전파를 위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기도를 하고 주변에 개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시"를 듣는다는 것], (개인적 유혹과 외부 사회의 정치/종교적 압박에 대한) 저항[* 이게 바로 그 지하드 되시겠다]이라 기본적으로 유화주의나 교화주의와는 거리가 먼 편이고 강경 배타주의성이 강한 편이다. 하술하듯 아브라함 계열 신앙인들에게 (그나마 좀) 관대했던 것도, 당시 지정학적으로 따지자면 주변이 다신교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로 포위된 상황에서 막나가면 역공을 받아 존립이 위태로우니까 자기네 보신을 위해 그런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결국 교리상의 궁극적 목표는 그 일대와 나아가선 세계를 개종시켜서 하나의 통일 신정사회를 이륙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선 꾸란이 신정사회의 세계정복 설명서로 보일 수도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이걸 진짜로 실행하려는]] 국가 내지는 집단들이 창시 이후로 그 폭력성/극단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1세기인 지금까지 꾸준히 있어왔다. 단지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에 근본적으로 배타성과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서구 주류 학계와 심지어 아랍사회에서도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을 정도로 어느정도 인정되는 사실이다.[[https://www.yna.co.kr/view/AKR20151110201300009|아야안 히르시 알리 하버드 케네디스쿨 특별연구원 기고]]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90302.010140812280001|폭력과 이슬람]] 뿐만 아니라 경전에 성전을 명분화하고, 딱 한 번 개종을 권유한 뒤 거부하면 개종을 강제하거나, 그래도 듣지 않으면 거짓된 자(쿠프르)로 간주해서 신에게 심판받게 올려버린다는 식으로 외교전략과 전술적 견해까지 제공한다.[* 현대 지하디즘/테러리즘도 이런 타크피르 교리에 입각한 결과다. 이슬람이 원래 유목민에게 처음 전파된 종교이다 보니 과거에서부터 머리통 날리는 건 기본이있다. 다만 요즘시절엔 어지간해선 잘 하지 않는 짓을 지금도 하니까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 현대에 들어서 살생과 전쟁을 지양하는 대부분의 타 주류종교에 비해 자의적으로 이슬람의 권위가 실추되었거나, 무슬림들의 삶, 신앙, 영토가 위협된다면 전쟁도[* 그것도 그냥 전쟁도 아니고 너죽고 나죽고 식의 '''결사항전'''] 불사한다는 식의 교리로 해석되었고, 상당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이를 정책, 심하면 국론으로 채용했거나,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전도 중에 저항하지 않고 순교하는 걸 미덕으로 보는 그리스도교와는[* 구약은 기원전 부족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대표적으로 예리고 함락 등의 빼도박도 못하는 전쟁범죄와 비윤리적인 전쟁들이 묘사되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니케아 공의회 등을 포함한 숱한 개혁을 거쳤으며, 현대로선 예수의 새로운 개명(서로 사랑하여라)과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하사받은 십계명이 최우선이란 원칙하에 되도록이면 평화를 추구한다. 극단적인 반전교리를 펴는 분파를 제외하곤 군종 사목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전쟁터에서 부득이하게 사람을 죽이는 병사들에게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유혈 저항중에 전사하는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정의하며, 조건부이긴 하지만[* 그 조건이란 게 좀 두루뭉술한데, 단체간의 스케일로 지하드 발동 조건을 충족시키면 자동으로 성전 돌입이다. 무슬림들을 개종시키거나, 전도를 거부하고 지즈야 납세도 하지 않을 경우 타겟이 될수 있다. 그러니까 무슬림들의 이익에 반하는 집단에는 그냥 전쟁 건다는 뜻이다. 다신교, 혹은 무신론자들의 사회는 그냥 공격해도 교리상 무방하다. 그냥 이슬람을 거역하면 지하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전도의 수단으로 국가 단위의 전쟁이란 개념 자체를 긍정한다는 거부터가 스케일이 다르다. '''[[우상숭배]]를 매우 배척'''하는 게 특징. 물론 이건 [[유대교]], [[그리스도교]] 역시도 공유하는 특징이지만 이슬람은 이들보다 더더욱 철저하게 우상숭배로 오해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이에 성화와 성상은 물론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같은 [[상징]]마저도 만들지 않는다. 그 덕택에 발전한 예술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아랍식 [[서예]]다. 우상에 대한 배척은 다른 어떤 종교도 못 따라갈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이다.[* 이슬람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에서는 [[인형]](人形)의 반입도 금지되며, 허락이 된다 해도 목을 떼어내야 한다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빅잠은 가능하지만 [[건담(기동전사 건담)|건담]]은 불가. 이것도 나라마다 기준이 다른 건지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6&dirId=60904&docId=190028993&qb=7J207KeR7Yq464qUIOqwnOuwqeyggeydu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이집트에서는 넨도로이드도 반입이 가능한 모양이다.]] 이집트 국내에서도 야시장이나 백화점 등지에서 고대 이집트를 소재로 한 피규어들을 팔기도 하는 걸 보면 이집트는 확실히 기준이 느슨한 듯.] 그래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좀 덜한 곳도 있다고 한다. 특히 [[시아파]]는 이런 면에서 좀 더 관대한 편이다. [[이란]]에서는 알리와 그 아들 하산, 후세인의 초상화 등의 [[성상(조형물)|성상]]이 있는 경우도 보이며 무함마드가 들어간 우편이나 초상화를 팔기도 한다. 무함마드 얼굴이 직접 나온 그림이 보면 십중팔구 시아파 신자가 그린 그림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예 징표가 없으면 곤란한지라, "알라(الله)"를 적은 아랍어나 [[무함마드]]의 [[달]], [[월성기|초승달과 별]] 정도는 사용한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과거 상대적으로 타종교인에게 관대했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종교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066년 그라나다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가 말살되었고, 1126년 안달루시아에는 수천~만 명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자 주민들이 모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 이후 12세기 모로코에서 등장한 [[무와히드 왕조]]는 안달루스를 장악하고 나서 딤미(무슬림들에게 2등시민으로 차별받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든지, 나라를 떠나든지, 아니면 순교하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하여 많은 비무슬림들이 북쪽의 그리스도교 국가나 동쪽의 관대한 타 이슬람 국가들로 이주하였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개종하거나 죽음을 택해야 했다. 그리고 훗날 스페인은 레콩키스타를 통해 그라나다까지 함락시키고 이슬람 침략자들로부터 스페인을 수복한 뒤 무슬림들에게 이를 똑같이 되갚아주고 나아가 이슬람출신 개종자들과 개종한 유대인들까지 신뢰할 수 없다며 추방해버린다. 이슬람 정복 통치하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 당국의 허가없이 새 교회 건물을 짓거나 개축 및 보수할 수 없었고 공적인 종교 행렬도 거행할 수도 없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경우, [[밀레트 제도|밀레트(종교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 외에도 쿠란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 조항을 명시해 놓는 등 타 종교에게 마냥 관용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전체 역사적으로 볼 때 중근동의 수만 개의 타종교 교회나 시설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당했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이슬람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중근동 지역에 매우 많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금은 소수를 빼면 다 어디 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관용'과 '관용의 상징인 견딜 만한 [[세금]]'이 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비이슬람 소수종교가 괴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슬람권이 그리스도인과 유대교인들인을 박해 및 차별하지 않았다거나 평등하게 대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타종교인들은 무슬림만 보이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말을 타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현대로 치면 타종교인은 '''[[자동차]]를 못 타게 하는 수준'''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가시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타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극심한 불관용은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현대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위 '''관용의 상징'''으로서 타 종교인에게 세금([[지즈야]])을 부과했다는 것도 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차별조항이다. 이슬람 측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지배자들과 비교하면 차별수위가 낮고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징수했기에 이 장점이 원동력이 되어 주변 종교보다 늦게 창시된 불리함을 극복하고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고 변론하나, 이는 상대적으론 나았다는 양비론적 해명이지, 차별이 아니었다는 주장으로는 쓰이기 힘들다. 이슬람 측의 주장은, 당시 이슬람 정권은 25%가량의 토지세를 내는 조건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개종자에겐 약 10%의 인두세를 추가로 면제해줬다. 이 같은 정책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대량 개종의 길을 열어줬다.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개종자가 너무 급증하자,''' 이슬람 정부는 한때 세수 확보를 위해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종을 하지 않고 인두세를 포함해도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등 기존의 비이슬람 국가들에게 착취당하던 세금에 비하면 그 액수가 가벼운 편이었으므로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도로 널리 퍼져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존의 동로마, 페르시아 양국이 장기전을 치루느라 이슬람권보다 상대적으로 세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이슬람이 세수확보를 위해 조세부담을 분산하기보단 딤미들에게 부담이 편중되어있던 기존 구조를 유지시키는 개종금지정책 등으로 문제를 해결코자 했던 부분은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 지도자, 사회에 따라 달랐으며, '''소위 '관용'이라는 기준도 들쭉날쭉이어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을 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관용과는 한참 멀거나 극도로 가혹했을 때도 많았고, 타종교인을 그럭저럭 대했던 시기만큼 타종교에 폭력적이고 가혹했던 시기도 많았다. 이슬람 초창기 [[우마이야 왕조]]는 당대에 박해받던 마니교를 향해서도 해코지 없이 내버려뒀고 오히려 학자나 칼리프 중에 마니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동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을 정도로 나이롱이었지만 바로 다음의 [[압바스 왕조]]에선 그들을 악마숭배자 취급하여 박해하였다. 중세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와 시리아의 [[미르다스 왕조]] 등지에선 그리스도교도 재상 혹은 총독을 선임하기도 하였다. 특히 후자에선 대부분의 재상들이 그리스도교일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무굴 제국]]의 경우 악바르대제 당시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 성직자가 "그건 좀 아니라고" 뒤에서 비판할 정도로 무신론자도 우대했고, 지즈야가 폐지되기도 했다. 그러다 이후 이슬람 광신도 황제였던 [[아우랑제브]] 황제 때에 재정 부족을 메우려 지즈야를 부활시키자 힌두교, 시크교를 비롯한 비무슬림들이 농민부터 토호까지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진압하는데 애를 먹었고 이것이 그의 사후 제국의 걷잡을 수 없는 쇠퇴와 분열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도 기존의 동로마와 같은 그리스도교국가가 있던 땅에 자리잡다보니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 등 그리스도인을 즐겨 등용하기도 했다가[* 물론 이 이시기에도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각종 멸시, 성당 건축 제한 등의 차별과 그리스도교도 가정을 대상으로 한 예니체리용 자녀 강제징집 및 강제개종 등 탄압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가 되자 서양과 협조하던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일으켜 수십만에서 백만에 이르는 그리스도교도들을 대학살했다. 또한 주류 학파인 하나피파는 법정에서 짐미(이슬람의 보호를 받는, 즉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신자들)의 증언이 무슬림과 동일한 위력을 갖는다고 보았던 반면에 샤피파와 말리키파는 짐미의 증언은 무슬림에 비해 1/2밖에 안 되는 효력, 가장 이교도에 배타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가까운 한발리파는 1/8밖에 안 되는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 시절 정교회나 유대교 밀레트에서 해결하기 힘든 재판의 경우, 무슬림이 아닌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피파 법관에게 가서 재판을 받곤 했었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 역시 역사적으로 힘이 있을 때면 주변국을 침공해 쓸어버리는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다.''' 이슬람 탄생 때부터 [[다신교]]도들과 [[마니교]], [[야지디교]]를 비롯한 소수종교,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고,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한 적도 있으며, 초기 이슬람과 [[오스만 제국]] 말기는 탄압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유럽 그리스도교 왕국들의 유대인 처우가 들쭉날쭉했던 것처럼 이슬람의 종교정책 역시 지도층의 필요나 근본주의에 경도되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관용과 억압 사이를 오갔다. 또한 이슬람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배교자에 대한 살해, 즉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하는 사람에 대한 살해를 경전에 명문화하고 상당수 신자들이 이를 실제로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에야 개종자에 대한 가혹한 박해와 살해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있어왔으나, 21세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이런 극심한 논란을 일으키는 종교는 일부 [[사이비 종교]]들을 제외하면 오직 이슬람뿐이다. 배교자에 대한 살해 논란은 현대 세계 4대 주요 종교 중 이슬람이 거의 유일하다(현대 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개종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는 있어도 이를 죽이는 행위를 '교리적으로' 명문화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공화국|수단]], [[알제리]], [[파키스탄]], [[예멘]],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북부지역 등을 비롯해 이슬람 국가들 거의 대부분[* 일부 세속적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면. 그러나 이런 세속적 정서가 많은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도 가정에 따라 계속 쿠란과 샤리아 교리에 입각해 개종자에 대한 명예살인 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유럽 이민자 무슬림들이 타종교로 개종한 뒤 겪는 박해와 위협에 대한 증언들이나 뉴스들만 봐도 이슬람권의 개종자 박해가 타종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의 '국민 정서'가 타 종교로의 개종을 죽을 죄 로 보며,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자는 죽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정부나 집권층 차원에서 개종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현재까지도 시행하는 국가가 매우 많다. 또한 이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가까이는 비이슬람 문화권에 이민온 이슬람 가정에서부터 튀르키예 같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들에서까지 잊을만 하면 [[https://www.youtube.com/watch?v=O1lnxUXWGgE|개종자에 대한 살인/살해위협과 가혹한 박해가 이어지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극악무도한 교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옴진리교]], [[영생교]]같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하는 짓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교리다. 진보적이거나 온건한 무슬림들이 어떻게 변명하든지, 21세기 현재에도 지구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이슬람권 정부와 공동체, 신자들을 막론하고 상당수 무슬림들은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자에 대한 각종 박해와 살해, 명예살인을 실천하려 하고 있다. 이집트의 한 판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슬람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진리이기에 무슬림은 이미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런 주장은 당연히 [[궤변]]이다. 이슬람이 최종적이고 완벽한 진리라는 식의 주장은 말 그대로 무슬림들이나 하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그런 일방적 주장을 가지고 이슬람 신앙을 버리거나 비이슬람 종교를 믿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이 때문에 비이슬람 문화권,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인권단체 및 비무슬림들과의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으며 굉장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제(성직자)|사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는 신과 인간은 감히 만날 수 없다 생각하여[* 같은 아브라함 종교계열인 [[그리스도교]]와 달리, 쿠란에서는 신과 인간은 직접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개신교는 개인과 신이 직접 교감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제나 성인 같은 중재인을 두지 않는다.] 그 사이를 연결해 줄 뭔가가 필요 없다 여기며, 이슬람이 주류인 지역에서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알아서 관련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무슬림은 전부 다 [[전도사]]나 사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예배 인도 역할을 이맘이 하는데, 신도들은 이맘보다 예배를 먼저 거행해선 안 되고 순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예배를 할 때는 자기가 이맘이 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할 때는 제일 웃어른이 이맘이 되는 등 비교적 유연하다.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 외에도 사제가 없는 종교가 몇 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기에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로 분류된다. 이슬람의 경우 [[수니파]]는 예배시 일반 신도들 중 한 사람이 맡는 '[[이맘]]'이라는 사회자를 맡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분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준 [[예언자]] 수준의 의미를 갖는다. 율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서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주는 율법학자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이슬람에서는 평신도다. [[무함마드]]와 같이 예언자는 신이 계시를 내리기 위해 일부러 파견한 경우가 있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사제가 없다는 게 명시되다 보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신 아래에서 평등성이 강조되어, 종교적인 문제라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예]]가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됩니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라마단]] 금식 등 종교적인 계율을 종교에 대한 신념을 떠나 남의 눈과 지적이 따가워서 잘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이 당시 각 분야에서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학자의 위치와 영향력은 성과 속이 통합되어 있는 이슬람의 특성상 오히려 많든 적든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다른 종교문화권의 [[성직자]]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자체는 [[사제(성직자)|사제]]를 두지 않고 모두 평신도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권한은 다른 어느 종교 문화권보다도 막강하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는 정교일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법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슬람 교리를 해석하냐에 따라 국법이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예로, 일반 [[무슬림]]들과 이슬람 얘길 하다가 [[쿠란]] 구절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면[* 특히 성차별적이거나 전근대적 또는 비합리, 비윤리적인 구절 등.] 대개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슬람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만나서 얘길 해볼 것을 권하고 본인들은 더이상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은 권위있고 신망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사제가 없다는 특징은 초기 이슬람의 전파 양식이 [[상좌부 불교]]나 초기 [[그리스도교]]와 같은 문화적인 전파가 아닌 지배이념으로써 무력에 의한 정복 형태에 주로 의존하게 하였다.[* 물론 초창기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옆동네 그리스도교도 몸집이 불어나고 국가에 의해 제도권 종교가 된 뒤부터는 북방 십자군이나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무력을 동원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무슬림]]들은 육신오행이라 부르는 하나님, 천사, 성전(쿠란), 사도, 최후의 심판, 정명[* 正命. 모든 일은 신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는 뜻.]을 믿을 것(육신)과 따라야 할 5가지 의무(오행)를 갖는데,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 살라트가 유효하려면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청결을 확보하고자 종교적으로 씻는 행위를 '우두'라고 부른다. 종교적 행위로서 우두를 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인식하고 얼굴과 손발, 목, 입 안 등 지정된 부위를 지정된 순서와 방법에 따라 꼼꼼히 씻는다. 물론 우두보다 더 좋은 것은 아예 전신을 목욕하는 것. 다만 예전에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 뒤 이를 더럽히지 않았다면 다시 씻을 필요는 없다. 청결함을 깨는 경우는 방귀를 뀌거나, 대소변을 보았거나, 피를 흘렸거나, 잠이 들었을 경우 등이 있다.] 자카트(자선[[기부]]),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그냥 '라마단'이라고도 한다), 핫지(일생에 한 번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하루에 5번 이상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술룰라"(하나님 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예언자]]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신앙 고백이라고 하며, 이는 이슬람의 첫 번째 의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난한 유목민이나 노동자들도 샤하다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루 5번 드리는 예배(살라트) 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절마다 예배 시간이 달라진다. 아랍인들이 시간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인데 이는 아랍인들이 시간을 우리처럼 1시 2시 이렇게 24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예배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 5번 예배는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하면 되지만, 제 시간이 되자마자 기도하는 것을 신자로서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로 여긴다. * 파즈르(Fajr): 동쪽 지평선에 빛줄기가 보이고 검은 실과 흰 실을 구분할 수 있을 때부터 일출 전까지. 규정 자체가 모호한 만큼, 현대 이슬람계에서 정확한 파즈르 시작시간은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의견이나 기준이 다르다.[* 현대 이슬람은 시작시간을 태양이 지평선 아래 X도가 되는 시각을 천문학적으로 계산하여 정한다. 지평선 아래 몇 도인지는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다르지만, 세계 무슬림 연맹에서는 18도를 기준으로 한다. 몇몇 무슬림들은 항해박명, 즉 12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두흐르(Duhr): 태양이 한낮에 남중하여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부터 아스르 기도 전까지.[*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부터'가 어느 정도인지 역시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남중 시간으로부터 1분만 지나면 된다는 곳도 있고, 5분쯤은 지나야 한다는 곳도 있다.] * 아스르(Asr): 어떤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물체의 높이만큼 되었을 때부터 일몰 전까지. 하나피 학파에서는 시작시간이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 + 물체 높이의 2배가 되었을 때의 그림자 길이라고 본다. 한국어로 이 기도시간을 설명한다면 '늦은 오후 예배'라고 이름 붙여야 할 듯? * 마그립(Magrib): 일몰 후 박명 시간 중에 드리는 예배. 즉 해가 졌지만 아직 빛이 보이는 때에 드리는 예배이다. 아직 빛이 보이는 시간이 언제인지는 역시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 이샤(Isha): 마그립 후, 즉 완전히 어두워진 후부터 밤의 중간까지. 여기서 밤의 중간이란 이샤가 시작할 때부터 다음 파즈르까지의 중간이다. 파즈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내부적으로 정확한 시작시간에 대하여 꽤나 이견이 많다.[* 세계 무슬림 연맹에서는 일몰 후 태양이 지평선 아래 17도로 내려갔을 때를 시작시간으로 본다.] 자카트는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구빈 희사세로 대개 순수익의 2.5%를 지불하며, 비슷한 개념으로 원하고 싶을 때 기부하는 사다까라는 기부 개념도 있다. 라마단은 1달 동안의 단식으로, 1달 내내 단식을 하면 사람이 당연히 죽으니까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행한다. 대략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흡연하지도 못한다.[* 지역마다 일출과 일몰 시간이 다르므로 일출이 늦은 지역은 아침을 먹을 정도로 여유가 될 때도 있지만 중동 지역은 일출이 이르기 때문에 보통 아침을 먹기는 힘든 편이다.][* 물론 날이 극심하게 더울 때 라마단이 걸리거나 그에 준하는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탈수로 죽으면 안 되니까 물 정도는 마시는 편이며 라마단을 이행하기 힘든 스포츠 선수들은 지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팀 스포츠의 경우에는 라마단을 지키기 힘드므로 다른 때에 라마단을 이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듯 하다.] 여담으로 《흡연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이란]]에서는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란의 유력한 이슬람 분파 [[시아파]] 내에서 라마단 중에 흡연을 해도 된다는 율법 해석이 나왔다. 물론 시아파를 싫어하는 다른 아랍 나라에서는 이 일로 이란과 시아파를 엄청 비난했다. 한편 살라트나 라마단이나 모두 태양이 보이는 낮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극지방에 거주하거나 혹은 연하루 종일 날이 밝은 [[백야]]나 하루 종일 날이 어두운 [[극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의견이 꽤 갈렸는데, 해가 떠 있는 시간을 곧이 곧대로 적용하면 백야 기간에는 하루종일 쫄쫄 굶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실제로 백야 때 라마단을 철저히 이행하다 아사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극야면 아무 때나 먹어도 되어서 라마단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를 막기 위해 북위 64° 이상 지역에서는 라마단의 일출, 일몰 기준을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의 일출, 일몰 시각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http://news.donga.com/3/02/20100813/30481260/1|관련 영상]] 살라트 역시 메카를 기준으로 하기로 한 듯 한데, 문제는 태양의 각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오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고, 이런 오차는 [[씁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갔다는 듯. 핫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규칙을 거쳐 [[메카]]에서 순례를 하는 것으로써, 정해진 기간 이외에 다른 기간에 방문한 것은 소순례로만 인정된다. 현재 성지 순례의 기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인구 1,000명당 순례자 1명으로 각 나라당 순례자를 제한한다. [[귀화]]인 포함 [[한국인]] 무슬림 15만 명이고, 그 중 순수 한국인 신자만 2만 명이라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잘못 보고된 덕택에, [[한국]]에서 [[성지순례]] 가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성지순례를 갈 신도가 '''없어서''' 못 보내며, 덕분에 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국가 재외국민들은 하지를 몇 번이고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매년 갈 수 있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한다나. 단, 예외적으로 하지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신자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하려고 한다. 늦더라도 죽기 전에는 다들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순례 인파가 메카에 몰린다. 때문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때에는 개인 위생 문제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신경을 안 썼기 때문.현제 코로나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순례를 마치면 자기 이름 앞에 '하지'라는 호를 붙일 수 있고, 그 사람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 한때는 지하드, 즉 '''성전'''이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라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함마드]]가 천국에 있는 동안 신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뭔 깡으로 이런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세]]가 어이가 없었는지 '''"게으르고 건망증 심한 백성들이 그런 걸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태클을 걸어 다행히 하루 50번 기도는 무산되었고, 무함마드는 신과의 협상을 통해 하루에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지금과 같이 5번으로 줄였다.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주는 [[iOS]], [[안드로이드]] [[어플]]도 나와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