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마일파 (문단 편집) ==== [[아가 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아가 칸)] 페르시아로 이동한 니자리파의 제44대 이맘 '''하산 알리 샤'''(Ḥassan ʻAlī Shāh)(1800~1881)가 페르시아 샤의 공주와 결혼하고 '''아가 칸'''(Aga Khan)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아가 칸은 나중에 인도로 이동했으며(현재 근거지는 영국이다.), 아가 칸의 지위는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다.(현재 [[https://en.wikipedia.org/wiki/Aga_Khan_IV|아가 칸 4세]], 1936년생) '아가 칸'은 영토는 없지만 14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와 1,500만명 이상의 추종자[* 정확한 추산은 불가]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1국의 군주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영국으로부터는 '''전하'''(His Highness), [[팔레비 왕조]] 이란으로부터는 '''전하'''(His Royal Highness)의 칭호를 받았으나, 후자는 현재 쓰지 않는 듯 하다.] 본래 아가 칸 파벌은 이스마일=니자리파의 한 갈래였지만, 이스마일=니자리파 가운데 가장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보니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리아]] 등에 퍼져있던 니자리계 분파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가 칸을 이맘으로 인정하고 따르게 되어서 세력이 더욱 확대되었다. 사실상 현재 이스마일파의 분파 가운데서는 가장 세력이 크며, 이스마일=니자리파의 종주를 칭하고 있다. 아가 칸 4세는 극단주의 성향이 강했던 이스마일파를 세속,[* 나이트 클럽에서 술 취해서 주먹다짐하고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몰래 즐기는 형태의 그런~~ 세속화 말고, 과거와 다르게 여성의 사회 참여를 장려하고 이슬람과 직접 관련없는 학문도 교육을 적극 권장하는 형태의 세속화를 말한다.] 온건 성향으로 개혁하는 인물로, 이스마일파 소수민족들이 사는 산간 벽지[* 대표적으로는 [[훈자]] 마을이 있다.]에 학교를 비롯한 여러가지 편의 시설을 지어주고 투자해주는 정책을 통해 이스마일파 신도 전반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악명높은 극단파 암살단의 후예가 현대 무슬림 세계에서 세속주의 온건파로 바뀐 아이러니한 상황.''' 아가 칸 가문이 유럽 대륙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긴 지가 오래 됐고, 아가 칸 4세만 해도 이미 혈통의 1/2이 유럽인이며, 영국에서 영국인으로 성장한데다, 본인과 아들들도 유럽/미국인과 결혼했으니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는 아무래도 서구적 가치관에 익숙하리라 본다. || [[파일:A1F09479-CA84-4A3A-8968-16BF5043AE56.jpg|width=100%]] || || 타지키스탄의 아가 칸 학교. 이슬람 명절인 이드 행사를 이렇게 하는 건 와하브파 무슬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단 하나만 말하지면, 순니 와하브파는 음악을 절대 금기시한다.] 무엇보다도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장소에서 히잡 같은 것도 없이 함께 모여 있다. 사진 왼쪽에는 아가 칸 4세 사진 || ||[[파일:aga khan schools Gahkuch Gilgit.jpg|width=100%]]|| || 파키스탄의 [[길기트 발티스탄]] 주 [[https://www.google.com/maps/place/Gahkuch/data=!4m2!3m1!1s0x38e7e1ea10401d37:0x5cf9fef8ddac1bc0?sa=X&ved=2ahUKEwifoJOhqe_yAhVly4sBHbD7AtgQ8gF6BAg9EAE|가흐쿠츠]]의 아가 칸 학교. 참고로 길기트는 탈레반의 근거지 중 하나인 [[카이베르파크툰크와]]와 접해있다. || ||[[파일:Aga khan school in Maputo.jpg|width=100%]]|| || 모잠비크 [[마푸투]]의 이스마일파 학교. 포르투갈의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대통령이 학생들을 방문했는데, 학생들이 긴장하거나 눈치보는 것 없이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이 학교는 이스마일파 신도 자녀들을 위해서 지어진 학교이지만, 종교가 다른 포르투갈계/레바논계 백인이나 현지 흑인 학생들도 받아준다.] || 1972년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 우간다에 거주하는 인도인[* 파키스탄계와 아프가니스탄계 포함]들에게 90일 이내에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떠날 것을 명령하자, 아가 칸 4세는 우간다에 적지 않은 이스마일파 신도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자신과 친분이 있던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트뤼도 정부는 수천명의 이스마일파 신도들이 캐나다로 망명하는 것을 허용했고, 이후 아가 칸 4세는 '''자기 사비를 털어서'''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버마 등에서 피난온 이스마일파 난민들이 재정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아가 칸 4세는 직접 자신의 신도들이 난민이 되자 정착 후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현지 사회에 쉽게 적응하도록 현지 적응 교육과정까지 직접 지원했다고 한다. 신도들한테서 돈만 축내는 아니라, 오히려 재난 상황에 처했을 때 직접 사비를 털어서 구해주니 이스마일파 신도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여담으로 당시 아가 칸 4세가 도와준 이스마일파 신도들 중에는 니자리파만 있는게 아니라 상술한 무스탈리파가 더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