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숭구 (문단 편집) === 후주 시기 === 사홍조와 교분이 두터웠던 [[후주]]의 태조 [[곽위]]는 사홍조의 옛 관리들을 찾을 때 이숭구를 만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와 사홍조는 [[후한(오대십국시대)|한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함께 힘을 합쳐 왕실을 장려하고 도왔지만 간사한 이들에게 참소를 당하여 사홍조는 결국 큰 재앙을 입었고 나 또한 겨우 재앙을 벗어났소. 그대는 사홍조의 옛 관리이니 나를 위해 사홍조의 친척들을 찾아주시오. 내가 장차 그들을 위로하겠소. 이숭구는 사홍조의 외삼촌 복(福)[* 이름이 복으로 성은 불명이다.]을 곽위에게 천거하였다. 이숭구는 본디 사홍조의 집안일을 주관해서 사홍조의 집안 재산을 모두 모아 복에게 주었다. 곽위는 이숭구를 칭찬하여 그를 자신의 양자 [[시영]]의 막하에 두었다. 954년 시영이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2대 황제인 세종이었다. 이숭구는 공봉관(供奉官)으로 보임되었으며, [[고평 전투]]에서 종군하여 전공을 세워 공비고부사(供備庫副使)로 전임되고 작방사(作坊使)로 전임되었다. 959년 세종의 4남 [[시종훈]]이 즉위하니 이가 후주의 마지막 황제인 공제였다. 이숭구는 시종훈이 즉위한 뒤 [[남당]]으로 가서 시영의 죽음을 알렸으며, 돌아와서 판사방관사(判四方館事)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