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수영(가수) (문단 편집) == 생애 == 독실한 [[개신교]] 신자며, [[자수성가]]한 케이스 가운데 하나다. 별밤지기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니는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 2명의 동생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남동생은 데뷔 초기 남해의 외가에 내려가 있기도 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나,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수영의 아버지는 경상도 남해 출신이며, 어머니는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가족 공개를 극히 꺼리는 편으로,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남동생은 이수영 관련 방송에서 아주 잠깐 모습이 나왔으나 여동생, 남동생의 이름과 신상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수영 콘서트에서 잠깐 남동생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거의 다 커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압도적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자주 언급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어머니의 화목하지 않은 결혼 생활 때문에 어머니를 더 이해하고 많이 의지하게 된 듯 하다. 생전 이수영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의 남편(아버지)과는 사이가 매우 나빴다고 한다. 어머니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동시에 개신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냈는데, 반대로 남편은 그 종교를 믿지 않았고 매번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이유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며, 심지어 남편에게 폭행까지 당해서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이로 인해 이수영의 어머니는 전 남편이 죽고 난 후 재혼을 성급하게 결심하여 새로운 남편과 재혼하였으며, 이후 개신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0857|#]]] 한창 어머니 일이 언급될 당시 일각에서는 ''''엄마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수영 본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는데''' PC통신을 중심으로 지인들이 이 사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속사가 언플로 이 사실을 활용해 ''''소녀가장 가수''''라고 알려졌던 것. 상술한 남동생 방송공개도 이때의 사건이다. 그러나 이수영은 데뷔 때 이미 21세 성인이었으며, 나중에는 '''"부모님을 두 번 죽이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라디오 방송을 꾸준히 하던 중 2010년 8월 결혼 발표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배우자는 9집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교회 지인에게 소개를 받은 10살 연상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팬들은 10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별다른 잡음 없이 잘 살고 있다. 2011년 7월 27일 아들을 순산했다. 태명은 '''탕탕이'''. 엄마 배를 발로 탕탕 차대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트위터에서 아이를 '조탕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 남편이 '조 씨'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토크쇼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남편은 단순히 사랑을 하거나 받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 점이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특히 빨간 딱지가 붙을 정도로[* 압류딱지. 2006년 즈음 리쿠드 엔터테인먼트와 서로 10억짜리 손배소를 제기하면서 일어났던 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이수영의 고모가 경영하던 회사인 해브엔터테인먼트의 파산으로 인해 이수영의 자택에 압류딱지가 붙은 적도 있었다. 이 경우 이수영의 고모가 이수영의 명의로 대출을 받다가 전액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회사 자체에 부도가 나면서 결국에는 그런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자산관리가 허술한 본인에게 직접 은행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 등 관련 부분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청담동 모처에서 결혼식이 진행되었고 규모가 꽤 커서[* 연예인이지만 타 연예인에 비해 그다지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다.] 시가(媤家)가 재력이 꽤 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시가에서는 둘의 결혼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출산]] 준비나 [[산후조리]] 등에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외롭고 우울했는데, [[김희선]]이 낸 출산 관련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인 개신교(기독교)를 믿게 된 계기의 경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 종교의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R&B, 소울 음악이 가스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듣고 동네에 가스펠 축제를 보러간 것이 계기가 돼서 신앙을 갖게 되고 고등학교 때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앨범에 [[개신교]] 관련 내용을 담은 노래가 가끔씩 나오기도. 6집 silent eyes, 7집 우리, 8집 다 이루었노라가 개신교 관련 곡. 6집엔 시편 24편의 암송이 들어있는 인터루드(Interlude)도 있으며, 7집 outro 끝부분에는 그녀의 육성 기도가 들어 있다.[* 사실 개신교를 믿게 된 것은 어쩌면 전술한 바와 같이 이수영이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지냈던 점으로 인한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 그렇게 됐다고 봐야 하는 것이 맞다. 비록 어머니의 경우 새아버지와 재혼 후 불교로 개종을 했지만, 그 이전에 어머니가 개신교에 대한 신앙심을 가지면서 그러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줬던 것이 분명한 터. 이런 이유로 사실상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난 것이 맞는데, 이를 두고 몇몇 언론사에서는 이수영이 불교 집안에서 자란 줄 알고 오해해서 뉴스기사를 잘못 내보내기도 했다. 2021년 현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우리들교회 집사 직분을 맡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