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계(정도전) (문단 편집) === 동북면의 촌뜨기, [[왕|세 개의 서까래]]를 지게 되다 === 41회에서는 삼봉과의 대면에서 정통성을 잃은 임금이 된다는 사실에 거절을 표한다. 이에 삼봉은 이대로 물러나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며 즉위를 권하고 자신들의 대업이 세상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성계는 정통성없이 왕위에 오른 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안하는 자들의 숙청[* 이때 대사가 '''나를 도적이라 칭하는 놈들, 나를 왕 취급도 안하는 놈들, 왕씨들, 귀족들, 이색의 사대부들'''을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언변을 토해내었다. 실제로 이성계가 왕으로 즉위하고서는 그 유명한 왕씨 몰살을 비롯하여 이색의 문하에 있던 이숭인이나 그 외 고려 조정에 몸담았던 온건파 사대부들을 처참하게 숙청하였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정몽주를 숙청하고서 멀어진 민심이 더 멀어졌으며 오죽하면 개경 사람들로부터 은밀하게 전해 내려왔던 [[성계탕]]이라는 음식으로 능욕을 당하는 등... ]임을 알고 이를 혐오하여 다시 거절. 그러자 정도전은 자신이 이성계의 악명을 다 받아들여 이성계를 성군으로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옥새를 받기 전까진 자리를 뜨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였고 이후 밤까지 둘간의 말없는 기 싸움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서, 저세상에서 포은을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마저도 내놓을 것"을 다짐받고 즉위를 받아들인다. 정도전이 방을 나가고 혼자남은 이성계는 옥새를 바라보며 [[이인임(정도전)|이인임]]의 "용상은 그대에게 지옥이 될 것일세."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이성계는 한 나라의 국부 자리에 오르는데, 즉위식 장면에서 내레이션이 깔렸다. > '''서기 1392년 7월 17일. 마침내 이성계가 왕이 됐다.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최고정무의결기관인 도평의사사[* [[이방원|태종]]때 폐지된다.], 즉 도당의 인준을 받아 정권의 합법성을 획득했다. 이로서 고려는 건국 475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왕조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정쟁과 옥사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군사력을 동원한 정권교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선 건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혈혁명]]이었다. 이성계는 정도전이 작성한 즉위교서에서 고려라는 나라의 명칭은 물론 의장과 법제 모두 계승한다고 선언했는데, 역성혁명에 따른 저항과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성계는 이듬해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새 나라의 태조가 된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농본주의국가 조선왕조 518년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파일:attachment/이성계(정도전)/ZoEhrEz.jpg|width=600]] 그런데 태조 이성계는 [[http://youtu.be/G6BcYD5tbac|개그 캐릭터가 따로 없다]].[* 즉위 첫날에 물에 밥말아 먹는 소탈함과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는 타입의 이성계인데다, 전반적으로 순수함을 강조하는 캐릭터였기에 이러한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영상에선 42화라고 되어있는데 영상은 41화와 42화가 섞인 장면이다.] [[대장금|수라간 음식을 맛보며]] 정도전에게 권하기도 하고, 혼자서 텅빈 정전의 용상에 앉아 리허설도 해 보고. 그러다 [[왕건|전 왕조의 태조]]가 외치는 듯한 '''"네 이놈!!"'''이란 환청을 듣는데,[* 음향 스탭이 녹음했다고 한다.] 놀라서 딸꾹질을 하고 그 이후 용상 앉는게 무서워서 임금이란 사람이 용상을 놔두고 맨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털썩 앉아있다가 정도전에게 태클 먹기도 한다. [[파일:attachment/sulsangkick.jpg|width=600]] 그리고 과거시험장에 나가려다 시험장에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자 '그자들이 벼슬하기 싫은 모양이니 100년동안 과거 못보게 해라'고 말하고 정도전과 내관이 나가자 어린아이처럼 우씨거리며 애꿏은 상을 차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 이지란을 보내서 이방우를 찾게 하는데 이지란이 돌아와서 신하의 예를 갖추며 공손히 인사하자 '''"종간나 새x, 지랄하고 자빠졌네"''' 드립을 친다. 그러나 이방우는 동북면에서 행방불명되면서 세자자리 문제로 시끄러워지는데, 둘째 [[이방과(정도전)|이방과]]와 다섯째 이방원이 후보에 오른다. 평화로운 시절이면 적장자가, 혼란스럽다면 공이 많은 능력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라고 배극렴이 말하지만, 정도전은 여기에 덕망있는 자를 추가한다. 결국 세자자리를 두고 결론은 나지 않는데, 갑자기 이성계를 강씨가 만나러 와 방번과 방석 그리고 자신은 생각해주지 않는다며 사실상의 땡강을 부리고 방과와 방원을 네거티브하며 세자자리에 어울리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를 들은 이성계는 고민하다 이방원을 부르는데, 세자 자리를 기대하고 온 이방원에게 온 대답은 화령으로 가 가묘를 정비하라였다. 이에 이방원은 세자는 누구냐며 돌직구를 날리는데 돌아온 말은 '''의안군 [[이방석(정도전)|방석]]'''. 형 아니면 자기가 세자가 될거라 생각한 이방원은 큰 충격에 빠진다. 42회에서는 이방원에게 '''"넌 덕이 없어서 임금감은 안 됨"'''이라며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조준과 배극렴, 이방과 등의 반대에도 전혀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국공신 명단을 점검 및 최종작성 중이던 정도전에게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자 명단에서 왕자들의 이름을 지운 정도전에게도 지지를 받게 되고 마침내 의안군의 세자책봉을 성사시킨다. 이 대화 중 이성계는 동북면에서 지내며 지켜본 [[여진족]]이 막내에게 상속하는 관습에 대해 대해 언급하며 의안군 방석이 안 될 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이성계가 막내를 세자로 책봉한 이유에 대해 그가 여진족 틈새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진족의 말자 상속이 익숙해서였다고 보는 가설이 있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진족은 유목민족이라기보다는 수렵+농경 민족에 가깝기는 하지만 [[유목민족]]이 대체로 말자 상속의 관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게 유목민족의 특성상 자식들이 성인이 되면 자기 몫을 먼저 받아서 나가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남는 게 막내 밖에 없어(즉 상속 분쟁이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가능한 건데, 이성계는 이것을 무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성계가 있는 곳은 조선이지 여진족이 아니기에, 저 말이 나올 때 정갤 등에선 이성계가 노망난거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사실 이성계가 여진족 사이에서 오래 살고 원의 벼슬을 살기도 했지만 엄연히 고려 사람이고 풍습도 고려 쪽을 따랐으므로 유목민의 말자상속을 따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작중에서도 그냥 신덕왕후를 총애해서 그녀의 자식을 세자 자리에 여진족 말자상속에 대해 언급한 것에 가깝고. 궁극적으로는 제작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배극렴이 죽자 위화도 회군 당시의 그를 회상하며 씁쓸함을 느끼고 이지란을 불러 장가간다며 놀리더니 대궐 안이 갑갑하다며 뜬금없이 '''"성니메~"'''라고 불러볼 것을 요구한다. 이지란은 망극해하며 못 하다가 계속된 요구에 결국 하는가했으나... 갑자기 못한다고 해버리는데 그 태도가 망극해서 못한다는게 아니라 영락없이 친한 형과 장난치는 모습이다. 이에 발끈한 이성계가 꿀밤을 먹이자 이지란이 '''"아!! 성니메!!! 아이씨..."'''라고 외치자 호쾌한 웃음을 내보이며 기뻐하고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출출하여 주막을 들르는데 주인에게 [[성계탕]]의 존재와 어원을 듣고 씁쓸해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밥을 먹게 된다. 과전법 시행 후 정몽주가 우현보에게 이밥의 유래를 '이성계가 내려준 밥이라고 쌀밥을 이밥이라고 부른다'라던 것과 비교하면 이성계에 대한 민심의 동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음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주막 주인 曰 '''"개경 사람들 중에 지금 나랏님 손에 죽은 일가붙이 한 명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니. 성계탕의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는 이지란을 말리고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성계탕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성계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명장면. 43화에서 윤소종이 세자에게 대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뛰쳐나가고 무학대사가 왔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계룡산 천도의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조준, 윤소종, 남은 등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자신이 기대했던 무학대사도 '''"잘 모르겠다"'''라며 어중간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유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무학대사가 일부러 발언을 자제한 것이었고 게다가 답사에서 돌아오면서 하륜의 지지 또한 얻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똘똘 뭉쳐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짜증만 쌓이고 심지어 연좌시위하는 윤소종 등의 무리와 담판을 짓기 위해 불렀음에도 거부하는 소식을 듣고 이지란으로 하여금 숙위병을 풀어 모조리 연행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때마침 명나라에서 돌아온 정도전이 명나라와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깨우치며 잠시 미룬다. 44회에서는 조선경국전 때문에 방원을 포함한 한씨 소생 왕자들이 몰려와 조선경국전과 그것을 쓴 정도전을 비난한다. 이후 정도전이 대전으로 들어서자 재상총재체제을 필요성을 묻고, '''국왕은 현군이 나올 수도 있지만 폭군도 나올 수 있기에 국가 통치에 있어 불안하다. 재상은 언재든지 바꿀 수 있고 해임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다'''라는 정도전의 대답을 듣는다. 이성계는 이인임을 예로 들며 반론을 해보지만, 정도전은 조선 조정은 혈통이 아닌 과거로 능력이 검증된 인재들에 의해 운영될 것이고 재상은 그들의 정점이라며 고려와 다르다는 주장을 한다.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자신이 생각한 왕과 다르다는 아쉬움, 이방원의 정도전에 대한 비난, 정도전의 재상총재체제를 연달아 생각하며 고민하고, 어느날 밤 정도전을 불러다가 무력시위를 벌이며[* 이 때 이성계가 들고 있던 칼은 [[전어도]]로 보인다.] 정도전을 갈구더니 경국전을 태우라고 명하나 정도전은 그것을 거부한다. 그렇게 둘의 입장의 평행선이 이루어지나 싶더니, 이성계는 정도전이 그럴 것 같았다며 자기를 왕취급 안한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옥새를 받던 날 다짐받은 약속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그것만은 꼭 지키라며 정도전이 하는 모든 일을 밀어주리라 다짐한다. 이렇게 짜증만 쌓이던 터에 주원장이 보낸 억지에 가까운 칙서를 받고 분노하여 내시가 읽던 칙서를 뺏어 주원장을 돼지새끼라며 욕하며 짓밟아댄다. 정도전이 들어와 이방원이 있으면 세자의 치세는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이 사실을 감지한 이방원은 명나라로의 사신을 자처하고 나선다. 그 대신 사병 혁파만은 막아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이 말을 듣던 이성계는 눈물을 흘리며 바보같은 놈이 왜 다른 형제들 마냥 참고 지내지 않냐고 슬퍼한다. 이것은 하륜의 충고를 받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계략이었지만 이성계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자 이방원도 같이 눈물을 흘린다. 이렇듯, 이성계가 이미 눈밖에 나버린 이방원이 명에 가는 것을 유난히 슬퍼하는 이유는 고려시대에 이미 (물론 이방원 본인이 자처하면서 명으로 가겠다고 하였으며 이성계 본인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이방원을 이색과 함께 사신으로 보낸 전적이 있었기에 자기 살려고 아들을 두 번씩이나 팔아먹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고, 강해보이지만 속은 여린 이성계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치를 의미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NQOXccQLY1Y|크라잉 성계]][* 실제로 이성계는 정안군에게 명나라에 입조할 것을 명하고 정안군은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성계는 그런 아들에게 '''울면서'''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리의 먼 길을 탈 없이 갔다가 올 수 있겠는가?”라며 많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의 대화를 용의 눈물과 엮어 보면 상당히 재미있어지는데, 유동근이 용눈에서 이방원을 맡았고 이번에는 이성계를 맡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들이 그토록 속을 썩혔던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그의 입장이 돼서 과거의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 된다.] 아들이 명으로 떠나는 날이 오자 이지란을 불러놓고 술만 퍼먹고 있다. 잔뜩 취한 채 왕이라고 앉아서 아들 하나 못지키는 게 왕은 무슨 왕이냐며 이방원 걱정에 눈물만 흘린다. 이 때 하륜이 찾아와 새로운 도읍지로 무악을 추천하고 그 설명을 들은 이성계는 대단히 흡족해서 밖에서 들려오는 대신들의 반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로 치부하며 새 도읍지를 만드는 책임자는 하륜으로 삼겠다고 한다. 이 때 정도전이 찾아오자 천도건으로 왔다면 상소를 올리라고 하는데 정도전은 대신들을 불러 회의를 열어 도읍지 건을 완전 끝내자고 한다. 45화에서 정도전이 민폐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곳으로 도읍을 정하자고 하자 전쟁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녀 본 결과 한양이 제일 적당했다면서 한양으로 천도하기로 한다. 한양천도 후 연회에서 정도전을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격려해주고 흥에 겨워 노래를 하거나 신하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칙서가 내려오자 "주원장 이 간나새끼"를 외치면서 분노한다. 46화에서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명나라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다. 그리고 신하들의 중론에 따라 권근을 대신 보내기로 한다. 이후 정도전의 사직을 받아들이면서 정안군과 하륜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말에 따라 하륜도 함께 명나라로 보낸다. 얼마 되지 않아 신덕왕후 강씨가 음수증(만성 신부전증)에 감염되어 건강이 악화되자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괴로워하고, 대업 과정에서 죽이고 내친 사람들에 대한 속죄를 하기로 한다. 그 일환으로 이색을 부르는데, 이색의 갖은 도발에도 순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덕왕후의 병세는 점점 깊어져갔고 이성계는 죽은 강씨를 위해 직접 명당을 찾아서 전국을 순회한다. 돌아온 이후 명나라에서 다시 정도전을 압송하는 칙서가 내려오고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할 것을 주장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