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계(정도전) (문단 편집) === [[역성혁명|야망]]과 [[고려|충성]], [[최영(정도전)|신의]] 사이에서 고민하며 [[위화도 회군|회군]]하다 === 21화에서 최영과 우왕에게 그 동안의 진심을 밝히며 다시 최영의 신임을 얻는 '''듯''' 보였다. 이후 최영이 임견미와 염흥방을 체포하러 간 동안 이인임의 집에서 이인임과 대치한다. 이인임이 "[[사돈]]이라고 믿었더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습니다 그려."라고 비꼬는 투로 노기를 드러내자 "사람 믿는 그 쪽이 아니잖슴메. 이게 다 그 짝한테서 배운 것이외다. 협잡 말이오."라고 받아친다. 이에 이인임은 "[[청출어람]]인 것이로구만!"으로 반응한다. 반항하는 이인임을 순군부로 압송하려고 했지만 이인임이 각혈을 하는 바람에 체포는 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이인임의 처벌 문제를 놓고 최영과 대립하게되는데, 이인임의 처벌을 강행하는 것은 화풀이에 불과하다는 최영의 말에 '''내 화풀이가 문제가 아니라 개판이 된 나라꼴에 고통받은 백성들 화풀이를 하려는 것이다'''라며 강경하게 반응하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우왕이 직접 이인임에 대한 처벌을 말라는 어명을 내린다. 22화에서 일단 한 발 물러서고 원군을 부르라는 정도전의 조언에 신진사대부들과 연합하여 최영을 거의 설득하는데 성공하나 했지만 동정론으로 인해 오히려 죄인들의 처형과 이인임의 사면 일정만 앞당겨진다. 최영의 독단에 분노하여 사직서를 내고 동북면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고 이에 정도전이 직접 움직인다. 결국 23화에서 정도전의 계책으로 이인임의 술수를 안 최영이 사과를 하면서 사직서를 돌려준다. 그리고 이방원으로부터 이인임이 입궐을 거부당한 뒤 최영의 집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고는 정도전과 함께 그 앞으로 가서 이인임을 추포한다. 이 때 정도전이 이성계의 수하였냐는 이인임에게 수하가 아닌 '''동무'''라고 말한다.[* 정치에 있어서 "적 아니면 도구 밖에 없다"고 말하던 이인임과 여러모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이인임이나 훗날의 이방원과 달리, 이성계는 정도전을 단순한 부하가 아닌 정신적 버팀목으로 여겼고, 정도전도 이성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인임 일파 처리가 정리된 후 수시중이 되어 정도전과 정몽주와 함께 술자리를 하는데, 똑같이 입 구(口)자로 시작한 여흥에서 정도전은 역사 사(史), 정몽주는 충성할 충(忠)을 깊이 새길 글자로 적어준다. 이때 정몽주의 말에 감명을 받아 정도전과의 독대에서 자신은 역성혁명을 할 생각은 없으며, 개혁으로 고려를 바로세울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면서 그리 할테니 도와달라는 뜻을 밝힌다. 그에 정도전의 대답은 "물론 도와드릴 것입니다, 대감이 결심이 설 때까지." 여담으로 이인임 일파 소탕 후에는 항상 갑옷을 완전 무장하고 있다. 전투 중에는 물론이고, 도당에 들어온 뒤 심지어 어전에서도(!) 그런데도 최영을 비롯해 도당 대신들 중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20화에서 이인임이 대궐의 숙위를 맡긴 후로 대궐 내에서 계속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인임 일파를 소탕한 후에도 숙위를 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잔당들 때문에 이성계가 경계를 하느라고 무장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며, 또한 극 구조로 볼 때 이인임이 벌을 받지 않는 한 거사가 끝난 건 아니라는 이성계의 항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얼마 못 갔고 이인임이 완전히 귀양을 가고 자신이 수문하시중에 임명되면서 다시 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24화에서는 자신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우왕과의 독대만으로 요동 정벌을 결정한 최영에게 문제를 제기하려다 사열식을 보러 온 우왕에게 씹힌다. 이후 명나라가 적극적으로 철령위 설치를 시도하자 최영의 요동 정벌론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정몽주, 정도전에게 요동 정벌론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 도당에 등청하지 않고 노역장으로 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시찰하거나, 백성들과 어울려 노역하기도 해보고, 무작정 방랑하며 고심해보다가, 끝에 대전으로 나아가 우왕에게 요동정벌의 불가함을 상주한다. 25화에서 그 유명한 4불가론을 내세우며 반대하나, 최영과 우왕에게 호통만 듣고 결국 포기한다. 역사적 기록과는 달리 꽤나 간략화된 편. 이 와중에 정도전이 나중에 전쟁이 불리해지면 협상이 일어날때, 참전한 무장들을 버리는 패로 쓸 것이므로[* 실제로 공민왕이 [[인당]]을 시켜 북진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원에게 협박을 받았을때 겁을 먹고 [[인당]]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 처형한 사례가 있었다.] 그냥 의원과 말을 맞춰서 출병하지 말고 대업을 하자는 말을 하나 멱살까지 잡으며 거절한다. 이후에 다시 조정에서 대업에 대한 속내를 내비치는데, '''"나도 사내고 왕을 만들어주겠다는 책사도 있고 힘도 있으니 왕이 되고야는 싶은데, 문제는 그런 내 욕심을 빼고나면 내가 왕이 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혈통도 없고, 명분도 없고, 할 줄 아는건 사람 때려잡는 것 뿐인데 그런 놈이 나라를 세우면 나라 꼴이 어찌 돌아가겠느냐?"'''라며 거부하지만, 정도전은 오히려 그 모습에 결심을 더 굳힌 듯 "왕에게 필요한 덕목은 오로지 덕이며, 이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내린 운명이다."라는 말과, 자신은 이미 '고려의 백성이 아닌 새로운 나라의 첫 번째 백성'이며 고려와 이성계는 공존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한다. 그래도, 어쨌든 우군도통사로 뽑히는 걸 거절하지 않고 간다. 허나 장마 기간으로 행군이 엄청나게 지체되었고, 군량미까지 제때 보급되지 않아 탈영이 속출하여 사기가 나날이 저하되는 것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품게 된다. 위화도에 도착한 후 [[이지란(정도전)|이지란]]과의 대화에서 과거 [[제1차 요동 정벌|요동 정벌]]을 했던 시절을 잠시 떠올린다. 어찌저찌하여 위화도까지는 왔으니 잠시라도 쉬어야 한다고 [[조민수(정도전)|조민수]]에게 건의하나, 조민수는 조금이라도 더 진군하자고 하는 것에 염려한다. 그런데 다리가 장마비에 다 쓸려내려가,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다시 만드느라 지체되면서 군량미가 모자라게 된다. 군량을 보내달라는 이성계와 조민수의 요구에 조정에서 위무 차 보낸 정승가는 은으로 된 술잔을 주며, 보급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냐는 답변을 하고, 조민수가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넌 후 민가를 약탈하고자 한다.[* 현지에서의 보급, 특히 약탈은 철도와 트럭 등장 이전 모든 군대의 기본 보급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위신을 깎네 뭐네 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국 내를 행군하는데도''' 군량이 떨어져 버렸다는 것. 이는 고려의 지방 통치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 행정과 통치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최소한 자국 내에서는 제대로 보급이 이루어져야 정상이다.] 그러다가 뗏목이 뒤집혀 파견나간 부대가 몰살당하는 악전고투 속에, 정도전이 보낸 서찰에 '''[[위화도 회군|회군]]'''을 보고 갈등한다. [youtube(8FvKCboMIOQ)] 결국 26화에서는 좌도통사 조민수를 설득해서 두 차례에 걸쳐 회군을 윤허해달라는 장계를 보냈으나, 최영과 우왕이 대로하여 진군을 명하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배극렴이 전해준 '''자네를 믿는다'''는 최영의 전언을 듣고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고 잠시 요동 진군으로 의견을 선회하나, 자기 휘하의 장수들은 물론 조민수를 비롯한 좌군의 장수들까지 무릎꿇고서 회군을 요청하자 마침내 독단으로 개경으로의 회군을 명령한다.[* 다만 회군을 결정할 때까지의 연출이 조금 작위적인 부분이 있고(반대하는 장수들도 있었는데 묘사가 되지 않았다던가) 그런 연출이 없었더라도 회군의 당위성은 드라마내에서 충분히 표현되었는데 오히려 사족이 아니냐며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다. 반면 작중 이성계가 대업에 상당히 망설이거나 고려에 여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걸 여러 차례 드러냈고 결정적으로 최영과의 관계가 파탄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저 정도는 되어야 회군을 감행해도 캐릭터 붕괴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어떤 판단을 따를지는 시청자의 몫이다.] > '''"내 한 마디만 한다. [[위화도 회군|우린, 개경으로 간다.]]"'''[* 이런 식으로 '한 마디만 하는' 대사들이 종종 있다. 10화에서는 '''"내래 부인에게 한 마디만 하갔소. 고맙소."''', 황산 전투에서 '''내래 한 마다만 한다. 죽지 말라(발음은 듁디 말라.)''' 14화에서는 천복이와 양지의 무덤을 찾은 뒤 '''"내 한 마디만 하겠수다. 미안하우다."''' 이런다.] 27화에선 회군이 반역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도성 10리 밖으로 퇴각, 그리고 정도전의 조언대로 최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고 잠시 기다린다. 그리고 그 도중 정몽주와의 서슬어린 재회를 한다. 정몽주에게 이성계는 자신은 반역을 한게 아니라는 대의를 위해 움직였다는 항변을 하지만 정몽주는 '''역대 동서 고금 반역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는 반론을 내세우며 이성계를 비판한다. 덕분에 둘 사이에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정몽주는 회군에 대한 자신의 생각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었고 때문에 이성계를 만나 이성계의 행위가 고려에 대한 개인의 역심으로 인한 발로인지, 아니면 고려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인지 가늠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 두 번 거듭하여 이성계에게 역심이 없냐는 질문을 하고 이성계가 없다는 대답을 하자, 정몽주는 그 누가 이성계를 반역자라 멸칭해도 그를 지지할 것을 천명한다. 그러나 정몽주가 두 번째로 묻고 나서 이성계가 없다고 대답할 때 '''약간의 간격이 있다.''' 하지만 우왕은 최영 탄핵 상소를 거부, 결국 도성을 치기로 결단한다. 그리고 어전 앞에서 무장의 예를 갖추어 최영과 [[일기토]]를 벌인다. 네놈은 만고의 역적이라는 최영의 노호성에 지지 않고 자신은 역적이 아니라고 받아치면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초반에는 비슷하게 싸웠으나 일기토가 가면 갈수록 나이가 더 많은 최영이 점점 체력에 부치는 것이 드러나고 둘다 서로 갑옷을 쳤을때도 최영이 더 크게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성계에게 최영을 찌를 기회가 있었으나 인간적인 정때문에 머뭇거렸고 전투는 제개되며 돌격할때 칼이 부러진다. 이후 다른 장수들의 칼을 받은 둘은 많은 합을 겨루고 다시 두번째로 칼이 부러졌는데 다시 칼이 주어지자 이를 최영이 거부함으로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면서[* 군의 열세만이 아니라 무장대 무장으로써도 자신이 이성계의 자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힘에 벅찬 것을 스스로 인식했기에 무장으로써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위화도 회군은 마무리되며, 최영은 나라를 망친 간적이라는 명분으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이후 이성계는 군권을 우왕에게 반납하려 하나, 군권을 상실한 후 왕의 보복을 두려워한 조민수와 대부분 제장들의 반발과 함께 조민수에게서 왕을 폐위시키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하면 [[공요군]]은 정말로 반란군이 된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윤소종 등 사대부들의 바람잡이와 정도전의 일침을 받고 고뇌한다.[* 이는 창작으로 역사상에서 이성계는 이미 회군 당시에 우왕을 폐위시킬 계획을 조민수와 세워두었다.] 고민 끝에 우왕의 어전에서 직접 폐위론을 입에 올리며 하루만 말미를 주면 제장을 설득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실 이것은 함정이었고 불안에 시달리던 우왕이 친히 환관들을 데리고 이성계의 집을 급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지란이 이끄는 복병이 우왕을 포위한다. 이때 이성계가 '전하가 저를 믿어주셨으면 이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자 우왕은 이를 비웃으면서 ''''그대를 믿었던 자들의 최후를 뻔히 아는데, 과인이 어찌 널 믿을 수 있겠느냐?"'''라며 대꾸한다. 그리고 이성계가 제장들에게 손님이 올 것이라고 단언한 것이나 미리 이지란을 시켜 복병을 준비한데서 알 수 있듯이 애당초 이성계 자신부터 왕을 믿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우왕을 상왕이라는 명목만 남긴 채 사실상 폐위시켰으며 우왕의 후계 문제를 두고서 정창군 [[공양왕(정도전)|왕요]]를 옹립하라는 정도전의 조언을 받는다. 대비에게 압박을 가하고 창왕을 편전에 들지 못하게 막은 채 책봉을 강요하려 했으나 조민수의 좌군과 이색으로 인해 결국 창왕이 옹립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때 배극렴 등은 후계 문제를 미룰 것을 주장하나 근비가 세자 왕창을 데리고 난입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려 하자 이성계는 가만히 세자를 지켜보다 결국 여론을 못 이기고 왕창의 왕위계승을 묵인해버린다. 그 후 집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며 조민수의 배신에 분했는지 진흙탕보다 더한 정치판이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지란과 사냥을 나가 서로 팔씨름도 하면서 동북면으로 돌아갈 생각을 품고 있던 중 방원으로부터 최영을 [[고양시|고봉]]에서 [[마산합포구|합포]]로 유배지를 옮기고 위리안치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조민수에게 찾아가 역정을 냈다. 그 후 창왕에게 찾아가 최영의 이배 사안을 물려 달라고 건의하지만 명의 즉위승인을 받아야 하는 창왕보다 최영이 중요하냐는 근비의 역정만 듣게 되자 사직상소를 내고 물러난다.[* 역사상에서 후일 이성계는 정몽주와의 대립 도중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거기서 따온 듯하다. 정작 본 드라마에서는 정몽주와 대립 시절에 귀향하려 한 것은 생략되었다.] 30화에서 정몽주와 정도전이 사직을 취소해달라는 청을 하고 특히 정도전은 백성을 구할 힘이 있으면서 포기하는 것은 죄악과 다름없다고까지 말하면서 설득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전부 선의 때문에 해왔던 것은 아닌데다가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 동북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정도전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선 고통 속에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고 설득하는데 이성계는 이때 혼자 싸우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한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정몽주에게서 정치를 하는 이유를 듣고 정도전과 정몽주가 이인임의 복귀 반대를 위한 시위를 하는 것과 최영이 유배지로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동북면으로 가던 중 정도전의 "도망친다고 고통에서 피할 수만 있다면, 소생 역시 진작에 도망쳤을 것입니다. 이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은, 고통 한가운데로 들어가 싸우는 것 뿐입니다."라는 말과 정몽주의 "미우나 고우나 힘없는 백성들이 기댈 곳은 정치 뿐입니다."라고 한 말을 곱씹어보며 미련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도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편전 앞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정도전 앞에 나타나 사방이 벽으로 막혀도 도망갈 길이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건네고 정도전에게서 자신은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라는 대답을 듣자 드디어 '''함께 싸우자'''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창왕에게 불윤비답[* 왕이 사직을 허가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여 사직을 반려하고 자신도 이인임 복귀 반대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회군 이전부터 줄곧 이성계에게 반감을 표했던 근비는 이성계가 불윤비답을 청하자 곤혹스러워했지만 어쨌든 이성계의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반대 의견을 내진 못했다.] 이후 조민수가 정도전과 조준의 계략으로 탄핵되자 성주에 직접 가서 이인임을 만나며 당신한테 나만한 저승사자가 있겠냐고 일갈한다. 이인임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며 변방의 무지렁이 칼잡이의 손에 나라를 빼앗긴다며 허탈해했고 이에 이성계는 이인임 같은 권신들이 다스리던 때보다 더 잘 살 거라고 비아냥대며 가려 했으나 이인임에게 '''"다음 목표는 임금인가?"'''라는 말에 멈춰서며 이인임과 다시 눈을 마주친다. 이인임은 이성계의 야심을 읽고 "이보게 이성계. 불행해지기 싫다면 '''용상을 쳐다보지도 말게.''' 분수에 맞는 욕망을 품으란 말일세. 자네에게 용상은 '''지옥이 될 것이네'''."라며 상당히 의미심장한 경고를 날리나 이성계는 비웃음과 함께 갈길을 가버린다. 그 경고가 훗날 가장 비참하고 끔찍하게 현실이 되리란 걸 모른 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