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가 (문단 편집) ==== 토산 전투와 군사재판 회부 ====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후퇴하던 1950년 12월, 8사단장 이성가 준장은 사단 주력을 예하 16연대장 유의준 중령이 인솔하도록 맡겨놓고 차량 대열과 동행하여 연천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보로 이동하던 사단 주력이 황해도 토산 신장리의 [[임진강]] 좌안에서 도섭을 실시하다 북한군 패잔병 2개 대대의 기습적인 포위공격을 받아 병력과 장비의 1/3을 상실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패배가 알려지자 이성가 준장은 1951년 1월 적전 직무유기 및 군무이탈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2군단장 유재흥을 비롯한 여러 장성들의 탄원으로 무기로 감형된 후 다시 참모총장 [[정일권]]과 국방장관 [[신성모]]의 지시로 선고유예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후 1951년 1월에 7사단장으로 부임해 동부전선의 [[백석산 전투]] 등을 이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