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가 (문단 편집) == 여담 == 백선엽의 평대로 운이 없다. 물론 이성가의 업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6.25전쟁 초기 8사단은 북한군 특수부대[* 지금처럼 스페셜포스가 아니라 오토바이기동대대와 같은 부대를 말한다]가 포함된 병력을 차단하고 심지어 역습까지 해 강릉을 탈환했다는 것, 그 덕분에 6사단은 후방걱정없이 전방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과, 또한 제대를 그대로 유지 퇴각하였는데 그 6사단도 퇴각도중 일부 병력과 중화기를 손실했으나 8사단은 차량을 징발하여 병력과 중화기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이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25전쟁사에서도 '''가장 견실한 부대운영'''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 1개 사단 주력 섬멸에 일익을 맡아 아군의 반격작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백선엽이 운이 없다고 한 이유는 [[김종오]]는 많이 알려졌지만 [[이성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6.25 개전 당시 사단장 중 유일한 중국군/광복군 계열이다.[* 1사단장 - [[백선엽]], 2사단장 - [[이형근]], 3사단장 - [[유승렬]], 5사단장 - [[이응준]], 6사단장 - [[김종오]], 7사단장 - [[유재흥]], 8사단장 - 이성가, 수도 - [[이종찬]]. 50년 6월 10일 인사조치 전에 7사단장은 중국군/광복군 계열의 이준식 준장이었으나 육사 교장으로 전보되었다.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이준식 장군은 이범석 전 국방장관(당시) 계열로 분류되기도 했다. 당시의 7사단은 수도사단이 개칭된 사단으로 지금의 수도사단과는 다르다. 중국군/광복군 출신으로 군사영어학교 동기이기도 했던 유해준 장군은 6.25당시 중령으로 연대장에 머물러 있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향해 쏜 [[발터 PP|발터 PPK]]가 육군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1960년 당시 육군대 총장이던 이성가 장군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140.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