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선희 (문단 편집) === 1991년~2005년: 위기와 화려한 부활 === 1990년대로 접어 들면서 80년대 중후반을 휩쓸며 90-91년[* 위에 서술된 90년에 발표한 6집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가 91년 4월 21일 KBS [[가요톱10]]에서 1위를 차지했다.]까지만 해도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녀에게도 고비가 왔다. 7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고 상업적으로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8집 《조각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처럼,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었다. 8집 앨범은 이선희 앨범의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에도 색다른 이선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8집에서 이선희는 상당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타이틀곡 '조각배'[* 원래 타이틀곡은 김지하 시인의 시가 돋보인 '어느 할머니의 극락'이었는데, '조센삐'라는 명칭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음반 회수까지는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타이틀곡을 바꿔야 했을 정도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선희는 자선행사와 위안부 할머니 추모제에 모습을 드러내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619557|당시 기사]]]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초청되었던 외국 가수들과 대화하던 도중 '진정한 한국의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고 이에 자극을 받아 국악계의 거목인 김영동과 이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1993년 4월에는 《이선희 애창 동요》를 발매하였다. 반달, 새싹들이다 등의 인기 동료들이 수록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9dn4yRwTyo)]}}}|| || 1999년 [[MBC]] 가요콘서트 '한송이 국화' 영상. || 1994년 9집 《한송이 국화》는 락의 느낌을 가미하며 새로운 이선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송이 국화'를 시작으로 'Bluse Cafe', '기분이 좋아', '비 오는 거리에 서서', '아쉬움'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특히 음원보다 라이브가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 1996년 10집 《First love》는 이선희가 직접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큰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대표곡으로는 '라일락이 질 때'가 있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으로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며, '성 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소국 한다발'이라는 수록곡에서는 성악가 바리톤 김종홍과 듀엣을 펼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현재까지도 응원가로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직접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다. 1998년 11집 《Dream of Ruby》를 발매했다. 대표곡으로는 '낯선 바닷가에서', '너에게 가면', '백우'가 있다. 이선희는 이 앨범에서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넘어지는 가로등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 앨범은 큰 인기는 끌지 못했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팬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에서는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며 여전한 가창력을 나타냈다.[* 이선희의 노래 중 애드리브를 제외하고 최고음을 내는 곡이며 최고음은 3옥타브 파다.] 2001년 12집 《My Life + Best》에서는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가수)|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였고 이선희는 [[MBC]] 10대 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곡인 '이 노래를 빌려서'는 이별의 슬픈 감정을, '아마...'는 소녀적인 감성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대한 격려와 희망을, '이별 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그 외 1988년에 발매했던 '[[나 항상 그대를]]'이 영화 "[[가문의 영광(영화)|가문의 영광]]"에 삽입되며 젊은 층에게도 인기를 모았다.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 [[붉은 악마]]가 운집한 서울시청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애국가,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 해야, 아카라카치, 아름다운 강산 등을 열창하며 거리 공연 및 열띤 응원을 펼쳤다. 식지 않는 열기 속에 2003년 [[월드컵]] 1주년, 2004년 [[월드컵]] 2주년 기념 무대도 가졌다.[* '온국민 하나되어'라는 타이틀 아래 월드컵 D-100, D-50, D-30 공연뿐만 아니라 16강, 8강, 4강, 결승 진출 기원 공연을 벌였다. 이후 재공연은 '온국민 다시 하나되어'라는 타이틀으로 열렸다.] 2003년 10월에는 [[북한]] [[평양]] 특별생방송 통일음악회 (통칭 평양공연)에서 'J에게'와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하기도 했다. 이후 주로 자신의 제자 [[이승기]]와 함께 응원 무대에 등장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독일 월드컵]],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결승전 응원 무대 등에 섰다. 사실상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있던 대부분의 대규모 스포츠 응원 관련 행사에는 이선희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SYSxiObLrt0)]}}}|| || 2006년 4월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에서 '인연' 영상. || 2005년 이선희가 직접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직접 작사, 작곡한 그녀의 대표곡 '인연'이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며 큰 인기를 얻어 화려한 복귀에 성공하게 되며, 곡 '장미'와 '왜?'는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선희 데뷔 30주년을 맞아 네이버에서 실시한 선희톱10 투표 결과 '인연'이 1위를 차지했다.] 그전까지 꾸준히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 '사춘기' 앨범의 퀄리티는 역대 이선희의 앨범 중 최고로 평가받을 만큼 훌륭했으며, 이 앨범은 이선희가 왕년의 인기가수를 넘어 21세기에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창창한 현역이자 훌륭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시발점이 되었다. 콘서트 활동 * 1992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이선희 한의 소리 콘서트' 개최[* 당시 주목받지 못하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 199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10주년 콘서트 '이선희 서울의 사랑 콘서트' 개최 *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선희 BIG CONCERT' 개최 *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0주년 콘서트 'J에게 20주년 이선희 콘서트' 개최 *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2주년 라이브 콘서트 '인연' 개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