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돈(1951) (문단 편집) == [[정치]]활동 == [[참여정부]] 시기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앞장서서 비판한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고, 보수적 시민사회의 젊은 주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1951년생으로 당시에 이미 50대였지만, 소위 애국보수라 자처하는 우익조직들이 대부분 다들 머리 허연 노인들 뿐이라 당신만큼 젊은 사람이 없다고 반가워 하였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햇볕정책]]을 비판하였다.[[http://news.donga.com/3/all/20070112/8395043/1|#]] 이런 논설로 인해서 참여정부 일부 인사는 실제로 낙마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학법]]을 전격 비판하였다. 그는 TV토론에 출연하여 "보수는 도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당선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가는 시점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정치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당시 이상돈은 한창 주목받는 신인 정치인으로 [[자유선진당]]의 중역도 맡을 뻔 하였으나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당시 이상돈은 이명박 후보는 선거에선 승리해도 실현 불가능한 [[한반도 대운하]] 계획 때문에 결국 국정운영에선 실패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MBC [[100분토론]]에 종종 출연하였으며, 2009년 5월 11일 방영된 토론에서는 [[전원책]] 등과 함게 '한국의 보수' 논객으로 출연했다.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혹은 표방하는 지식인들과는 선을 긋고 그들을 비판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그는 4대강 사업을 매우 집요하게 비판하였고 ‘4대강 사업 위헌·위법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환경법 전문가로 [[4대강 정비 사업]]과 관련된 교수, 전문가, 공무원 등을 잘 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그 사람들이 모두 눈치만 볼 뿐 입을 열지 않는 현실에 무척 당황해하다가,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은 듯 하다. 그 사람들이 선후배 관계나 지역 연고 등에 따라 똘똘 뭉쳐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배타적으로 보호받는 대신 정부의 실정을 앞장서서 감추고 있다며, 이는 [[경술국치|일본의 조선 병탄]]부터 무려 100여년이나 이어지는 역사로 보인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하였다. 이후 개혁성향의 시민운동단체, 환경단체 및 진보인사와 교류를 시작하였고, 보수도 비판 받을 것은 비판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보수진영의 모순적 언행을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2008년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이를 비하하는 보수 인사들을 향해서 '''사립학교법 개정 때에 촛불을 든 자기들 얼굴에 침뱉는 격이라며 비난할 자격이 없다'''라면서 다른 보수논객과는 정반대 태도를 취했다. 2008년 말 [[두바이]]를 본받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두바이는 왕조국가인데 왕조를 본받자고 하는 건 어리석다. 게다가 거기는 [[석유]]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부다비]]에만 의존하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선견지명]]을 보이며 비난했다. 이상돈은 '[[국가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시민적 경제적 자유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보수주의]]’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신화(myth)가 되었다."라고 평하였다. 그러면서 "신화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신화를 까부술 수 있다 이를 debunking[* 한국어에 없는 개념인데, 공개된 장소에 잘못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거나 평판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이른다. 가장 비슷한 단어가 폭로전술.]이라고 한다." 라고 말하였다. 보수세력은 그의 이런 발언을 공격하였고 "보수에게 공격 받는 보수"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이상돈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당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 비판할 점은 강도 높게 비판했고, 보수적 시민사회 운동의 모순된 점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출범 이전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였으며 이명박 정부 동안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잠시 돕기는 했지만, 이후 자신이 기대했던 길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보수 개념은 전술하였던 바와 같이 수백년 역사를 가진 미국식 정통 보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2008년 그는 블로그에서 "명색이 보수주의자인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생명처럼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보수적 신념 때문에 의회 다수당이 대의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제정한 사학법, 신문법 등에 반대했다."고 하였다. 그는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자신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였다."고 고백하면서, 촛불시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다른 인사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하였다.[[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889.html|인터뷰]] 상기하였듯 2011년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 [[새누리당]]에서 비대위원으로 영입되어서 2012년 치루어진 [[19대 총선]]의 새누리당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비대위 시절 당시 [[이준석]], [[김종인]]과 함께 소위 '비대위 3인방'이라 불리며 한나라당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와 선긋기, 당의 노선 변화 등에 힘을 실어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면서는 박근혜 대선 정치쇄신특별위원을 지냈다. 대선정국에서도 김종인과 더불어 [[이한구]] 원내대표 용퇴 및 친박 주류의 2선 후퇴를 주장했고,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솔직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근혜 후보 당선에 큰 기여를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된 뒤 그를 더 이상 찾지 않았고 입각 제의를 하지도 없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 서서히 비판적인 입장을 개진했다. 이상돈은 그 후 매체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박근혜 정부에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측으로부터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 2014년 12월 "결과적으로 [[토사구팽]] 아닌가?" 하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http://news.joins.com/article/16735757|인터뷰]] 한때 인사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를 [[대한민국 환경부|환경부]] 장관으로 기용하자고 하는 아이디어가 제시된 바 있지만 실현되지 않았으며,[* 이 당시 [[김기춘]]은 이상돈을 왜 기용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알려진 것과 다른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는 대답을 했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도 계속 편향된 인사 패턴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시절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을 타진했으나, 이미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해서 기대를 버린 이상돈이 이를 고사했다고 한다. 그는 점점 박근혜 정권의 행보에 실망하였고,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것을 후회하고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1310|오마이뉴스 기사 "이런 박근혜 대통령 만들어 죄송합니다"]]. 이후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박근혜 정권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런 행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2014년 11월 이상돈 교수의 모친상에 조화를 보내지 않았고 새누리당 인사들도 빈소를 찾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관계가 상당히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8376|"박근혜 정권은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7644|"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에서 닉슨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4739|"숨만 붙어있는 식물정권"]]이라고 하는 등 비판의 수위가 굉장히 높다. 아무래도 본인이 박근혜 대통령 정권 수립에 일정부분 기여를 했었기에,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회한이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월 이상돈은 보수에 염증을 느낀다며 아래 같은 발언을 하였다.[[http://radio.ytn.co.kr/program/?f=2&id=40501&s_mcd=0214&s_hcd=01|이상돈,"무슨 얼어죽을 보수? 염증 느껴"]] > 저는 탈이념, 중도, 이런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사실 정책과 비전에서는 상당히 방향성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철학이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본질이 아닌 것까지도 [[진영논리]]로 서로 치고받고 있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또 민주주의나 법치주의 같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아닙니까? 그 기본적인 속성을 훼손하면서, 이게 보수라고, 무슨 얼어 죽을 보수입니까? 저는 거기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죠. 6월 14일 국민의당 [[김수민(정치인)|김수민]] 비례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 김수민을 겨냥하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287951|30대 정치진입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수구보수적 발상, 정동영의 노인 폄하성 발언의 다른 버전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 전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개인의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었고, 앞뒤 맥락에서는 정당들의 '''보여주기식''' 청년비례대표 공천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더군다나 이상돈은 다른 인터뷰나 강연에서 청년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고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젊은 예비정치인들이 정당에 참여하고 훈련과정을 거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바른미래당 분당사태 당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을 여러차례 보였다. 이후 진행된 셀프제명 사태에서 셀프제명을 택했으나, 스스로도 그것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이후 [[민주통합의원모임]]에 속하였으나, [[민생당]] 창당에는 불참하였다. 본인은 무소속 당적으로 남고 싶어하는 듯. 이후 3월 16일 [[민생당]] 측에서 접수한 비례대표 제명 무효 가처분이 인용되면서 다시 민생당 소속으로 되었다. 20대 국회 임기가 끝난 후 민생당을 탈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