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사야 (문단 편집) == 신약과의 연관성 == 나중에 신약이 이사야 7장 14절의 "젊은 여인(혹은 처녀)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라는 예언 등 이사야서의 예언들을[* 다른 예로는 제2이사야서에 나타나는 주님의 종 예언] 예수에게 적용시켰기에 신약과의 연관성에서 특히 관심을 많이 받는 예언서이다. 예수 또한 자신이 메시아임을 선언하기 위해 이사야 61장 1~2절을 낭독했다. 성서주석학의 훈련을 받지 않은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신약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거의 누구나 이사야서가 '뭔가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사야서가, 더 나아가 구약 성경이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데 폭넓은 합의가 이루어져있다. 가령 이사야 7장 14절의 번역을 보자. 여기서 쓰인 히브리어 단어인 '알마'는 그 자체로만 보자면 '젊은 여인'이라는 뜻이다. 비록 비록 많은 경우 이 단어가 '처녀'의 의미로 쓰이지만, 또한 칠십인역에서 '파르테노스(처녀)'로 번역했기에 처녀라는 번역의 설득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더군다나 신약에서 '파르테노스'라는 번역을 인용하기에 그 번역의 설득력을 더욱 높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도 이사야서를 번역할 때 '젊은 여인'이라는 번역을 드물지 않게 취한다.[* 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 다만 애초에 처녀라는 단어도 젊은 여인이라는 뜻으로만도 사용할수 있다. 근래 들어서는 처녀가 숫처녀라는 의미로만 사용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의 내적 역동성의 종착점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것은 소급적인 인식이며 그 출발점은 본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선포된 신약의 사건들에 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본문 안에서 선포된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본문 안에 숨겨져 있던 '''잉여 의미{{{-2 (surplus de sen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 >-교황청 성서위원회(위원장: [[베네딕토 16세|요제프 라칭거]]),[[http://m.catholicbook.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6971|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2 ''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제2부 가.6.[* 다음 링크에서 각 언어 번역을 볼 수 있다: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pcb_doc_index.htm|#]] 원문은 프랑스어이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이사야서를 비롯한 구약의 수신자를 1차적으로 유대인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의 틀에서 생각하더라도 1차적 수신자를 유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신앙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며, 이사야서의 예언을 예수에 적용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 이는 일부 극단적인 소수 신학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성서학의 폭넓은 합의이다. >따라서 이사 7,10-17의 단락에서도 일차적으로는 아하즈 시대를 배경으로 이 말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그다음에 비로소 마태오 복음서가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피해야 할 가장 큰 오류는, 이 예언을 아하즈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같은 본문을 예수님께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도 어떤 시대의 예언이 다른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의 본문은 어느 한 시대에 매이지 않고 계속적인 재해석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 지녔던 의미를 보존하면서도 그와 다른 의미를 더 지니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안소근 수녀,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9-1: 이사야서 1-39장》, 바오로딸, 2016, 137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