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봉원 (문단 편집) == 상세 ==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개그맨이다. 1980년대에는 공채로 입사한 [[KBS]]에서 주로 활약했고 1991년 [[SBS]]가 TV 채널을 개국하자 SBS로 둥지를 옮겨서 그 곳에서 주로 활약했다. 지상파 TV 3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MBC 출연 경력이 없다. 21세기 이후에도 [[경인방송|iTV]]를 중심으로 방송 활동을 해왔지만 과거에 비하면 활동 폭이 다소 줄어들었다. 1984년 KBS 개그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았고 공채 2기로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했다. 이 당시 개그 콘테스트 동기로는 [[이경애]], [[김미화]], [[김한국]], [[임미숙]], [[조금산]] 등이 있고 그들의 1기수 선배가 [[심형래]]와 [[이경래]]다.[* 1990년대 초 이봉원의 단짝이었던 [[최양락]]은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 대상을 받았으나 몇 달 뒤 1981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자리를 옮겼기에 이봉원에게는 2기수 선배가 된다.] 대부분 1980년대 후반 [[쇼 비디오 자키]]와 [[유머 1번지]]에서 히트작들을 양산했던 스타 코미디언들이다. [[유머 1번지]]에서는 '북청 물장수' 코너의 주인공을 맡았고[* 유행어 "반갑구만 반가워"로 유명한 허풍쟁이 사장 [[조금산]]의 연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동작그만]]에서는 보호관심병사 곰팽이 이영남으로 나왔으며[* 안타까운 것은 이 곰팽이란 별명으로 인해 '더러운 개그맨'이란 오해를 받았다는 점. 다른 코너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이 '곰팽이'란 별칭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쇼 비디오 자키]]에서는 [[장두석]]과 콤비를 이뤄 선보인 '시커먼스'로[* 다만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흑인을 차별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이후 2탄으로 듀엣 그룹 '니캉내캉(너랑나랑의 경상도 사투리)'이란 컨셉으로 노래 개그를 선보였는데 이것도 대박을 쳤다.] 많은 인기를 누린 코미디언이다. 1991년 11월 KBS에 있던 동료 코미디언들과 신생 방송사였던 [[SBS]]로 이적한 후 [[웃으며 삽시다]], [[코미디 전망대]] 등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희극 발전사를 재조명한 코너 "코미디 천국"에 등장하는 [[이주일]] 역할을 맡았는데 이주일의 성대모사와 용모를 완벽히 재현했다.[* "리틀 이주일"이라고 불릴 정도. [[이주일]] 본인이 개나소나 다 자기를 따라한다고 디스할 시절에도, 이봉원 만큼은 자신과 제일 똑같다며 인정했다.] 1994년 4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1년 6개월간은 일요일 오전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좋은 친구들(예능)|좋은 친구들]]의 초대 MC를 최양락과 함께 맡기도 했다. 한편, 이봉원은 1999년 3월에 [[일본]] 유학을 떠난 뒤[* 거의 같은 시기에 [[최양락]]은 '좋은 친구들'에서 잘린 충격으로 호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후회하고 다시 귀국하여 친정인 MBC로 복귀했다.] 2001년 10월 귀국했고, 같은 해 11월 3일부터 시작한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진행을 맡아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홍록기]]와 공동 [[MC]]를 맡았던 이 프로그램은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꿈꿨지만 [[시청자]]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게 되자[* 이 시기 이후로 [[개그콘서트]]를 빼고는 지상파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처음 시작할 때 참여했던 출연진들이 대거 빠져나간 뒤 [[신인]] 개그맨들[* 2001년, [[공채]] 6기 개그맨들인 [[윤성호(코미디언)|윤성호]], [[최국]], [[엄태경(코미디언)|엄태경]], [[박보드레]], [[손명은]], [[김주현(코미디언)|김주현]], [[김경욱(코미디언)|김경욱]], [[조세호]] 등. 이 프로그램이 종영된 이후 6기 모두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윤성호(코미디언)|KBS로 이적해서야 유명해진 개그맨]]이 있었고, [[김주현(코미디언)|SBS에 계속 남아서 기회를 얻은 개그맨]]도 있었으며, [[김진성(코미디언)|방송 기회를 얻지 못해 방송이 아닌 다른 무대를 선택한 개그맨]]도 있었다.] 위주로 꾸며왔다. 토요일 오후 5시대에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동시간대에 경쟁했던 [[KBS 2TV]] 뮤직플러스와 MBC [[생방송 음악캠프]](2001년 11월 3일 첫 회), [[코미디 하우스]](2001. 11. 10. ~ 2001. 12. 29. 최종회) 때문에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1년 12월 8일 방송분부터 [[임하룡]]이 공동 MC로 투입되어 이봉원, [[홍록기]] 등과 함께 3인 체제로 바뀌었으나 역시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9회(2001년 12월 29일) 만에 [[조기종영]]됐고 이봉원은 그 이후 [[경인방송|iTV]] 위주로 활동해 왔다. 이후 iTV도 2004년을 끝으로 문을 닫고 지상파 TV 채널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이봉원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코미디언보다 사업가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과거에도 여러 [[사업]]을 벌였으나 죄다 망했다고 한다.[[http://m.site.naver.com/18rmu|#]] 오죽하면 [[토크쇼]]에 나와 아내 박미선이 이 양반이 하던 사업이 모조리 망해서 내가 뒷감당하느라 고생했다고 같이 있는 자리에서 투덜거리고 이봉원도 뻘쭘한지 쓴웃음 지으며 난감해 했을 정도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이봉원이 익숙하지 않은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겐 이 사업 저 사업을 벌이다 모조리 망한 걸로 유명한 사람(...)으로 인식될 정도. 대략 살펴보면 [[단란주점]]을 했다가 오픈한지 얼마 안 돼 심야 단속이 강화되면서 손님이 끊겨 망하고, [[백화점]]에 [[커피숍]]과 [[삼계탕]]집을 시도했다 또 실패하고, [[일본]] [[유학]] 자금을 위해 [[고깃집]]을 했다 또 망하고, 이후 일본 유학 후 돌아와서 기획사와 연기학원을 하다가 또 실패했다.[* 일본 유학 시 [[요시모토 흥업]]을 보고 벤치마킹한 듯하다. 실제로 당시에는 일본의 [[게닌]] 출연 시스템을 보고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꽤 있었는데, 개중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올랐던 것이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다. 그러나 스마일매니아도 [[웃찾사]] 출연진들의 부당처우가 드러나며 타격을 입는다.] 기획사에는 [[김구라]], [[이광기]]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는데, 하필 이들은 이 소속사를 나오자마자 뜨기 시작했다는 듯. 그러나 김구라가 방송을 통해서 여전히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서로 사이가 나쁘진 않은 듯하다.[* 라스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접대를 할때마다 이봉원이 우리 구라좀 잘 부탁해 이 한마디를 참 못한다고 김구라가 밝혔다... 그런 낯부끄러운 모습 보이는것에 상당히 약한듯 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에 또 사업한다고 [[사채]]까지 쓰면서 7억원이나 빚을 졌다. 박미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못 갚았을수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뻔뻔하다느니 돈 날리는 식충이라느니 온갖 비난을 다 들었다. 그래도 박미선이 참으로 성인군자처럼 꾹 참고 다 갚아줬다고 우스개로 말하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인]]이 일해서 다 갚았다고 하며, 박미선이 웃기려고 과장한 내용이 많이 섞인 정보라고 한다. 자기가 일해서 차를 사도 주변에서 마누라 등골 빼서 차 바꿨다느니 비아냥 거리는게 짜증난다고 한다. "이래서 연예인은 한번 시작하면 평생 방송을 해야지, 사람들은 방송에 안 나오면 노는 줄 안다."라면서 불평하기도 했다. 박미선도 방송에서 일종의 자학개그로 써먹은 개념에 가까운데 사람들이 진짜로 이봉원이 자기 등골 빼먹는 못된 남편이라고 오해해서 속상했다고 해명한다. 또한 박미선은 다시 태어나도 이봉원과 결혼할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봉원이 자기 등쳐먹었다는 루머를 잠재웠다.[* 이와 별개로 이봉원은 젊을 적부터 "결혼은 당연히 나보다 나은 사람과 해야지"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아내가 자기보다 잘났다고 말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이봉원이 기본적으로는 대범한 인품이다. 개그맨 활동을 한창하던 시절에는 사석에서 동료선후배들이 개그랍시고 짓궂게 놀려도 개의치 않거나, 조금이라도 재미있으면 오히려 재미있다고 웃어줬다고 한다.] '''실제 [[빚]]은 수십억원'''대였으며, 10년 동안 밤무대 및 방송일 행사 등을 겸하며 [[2015년]]에 다 갚았다고 한다. 당연히 아내에게 손 안 빌리고 다 자력으로 해결했다. 사실 이봉원급 되는 [[연예인]]이면 지금 아무리 한물 간 개그맨이라고 해도 밤무대나 행사만 뛰어도 수입이 엄청나다. 이봉원 정도면 당대급으로 [[최양락]], [[이상운]],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 '''[[이경규]](!)'''와 동급이던 연예인이었다. 당장 아무 명성 없는 밤무대 가수가 월 250만원에서 300만원을 번다. 한마디로 이정도 급 되는 사람들은 어지간히 폭망하지 않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이봉원이 음주운전을 한차례 한 흑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에는 딱히 사건을 일으킨 건 아닌데다 이름값도 있는만큼 밤무대나 행사를 뛰는데 지장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배우 [[이동준(1958)|이동준]]만 해도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영화 제작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들 때 밤무대에 진출하여 스타로 군림했고 10억원 빚을 4년만에 갚았다.[* 그 유명한 [[똥꼬쇼]] 사건도 이 시절에 나온 얘기다. 사실 다른 밤무대 배우가 쓰던 현수막에 이동준 사진만 합성해버리는 바람에 저런 밈이 생겼다. 자세한 건 해당항목 참조.] 이봉원 정도면 상기한 것처럼 음주운전을 다시 저질러 바닥까지 찍지 않는 이상 밥 굶을 걱정은 없다. 애초에 사업을 벌이고 수십번 망한 걸 방송에서 우스갯소리로 들고 나올 정도면 여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사업들을 하면서 남은 건 오로지 개업 축하 화분. 집에 가면 이 [[화분]]들로 가득 차서 [[식물원]] 수준이라나 뭐라나? 이때 후배들이랑 [[술]] 마시고 술값이 50만원이 나왔는데, 제일 [[선배]]인 이봉원이 내려 하자, 후배들이 "선배님 빚이 30억원이라면서요? 저희가 낼게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봉원이 '''"30억원이나, 30억 50만원이나 뭔 차이가 있냐?"'''[* [[1호가 될 순 없어]]에서는 자신의 가게에서 최양락과의 술자리에 이 일화를 이야기하는데 당시 7억원 남았을때라고 말한다. 정말로 총 10억원 빚인지는 불명.] 라면서 쿨하게 결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참다 못했는지 부인 박미선이 고깃집과 꽃 사업에 도전했다. 근데 고깃집은 잘 안 된 모양이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작전역]] 근처에 '포도청'이라는 이름으로 했었다.] 본인 말로는 본인의 기운을 받아서 잘 안 된 거 같다고 드립쳤다. 꽃 사업은 별다른 언급이 없으나, 이봉원 본인의 말로는 잘 안 되는 거 같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업 욕심은 버리고 본업인 방송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지상파]]보다는 [[종편]] 등 중장년층 타깃의 프로그램에 아내 박미선과 짝을 맞추어 출연하는 경우가 잦다. 물론 사업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2016년에 수입산 소고기 양념육 시리즈를 런칭했다. 물론 이런 류의 사업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본인이 직업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이름만 빌려주는 형태로 보인다. '미식가 이봉원의 비밀 레시피'라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똑같은 회사[* 하늘단이라는 식육 가공업체다.]에서 앞의 사람 이름만 바꿔서 똑같은 제품, 똑같은 포장 디자인을 판매하고 있으니 이름만 빌려줬다고 봐야 할 듯. 2015년에는 [[전철우]]의 LA 소갈비라는 식으로 판매를 한듯 한데, 제품 이름 부분만 제외하면 홍보 이미지까지 완전히 똑같다. 이후 [[2018년]] [[여름]], 연고도 없는 [[천안시]] [[두정동(천안)|두정동]]에 [[짬뽕]]집을 열면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더군다나 경영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연신내에 위치한 유명 중화요리집 중화원에서 요리를 배워서 [[짬뽕]]을 손수 [[요리]]하는 집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7년]] 여름에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음을 인증하였다.[* 보통 [[연예인]]들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유명인들은 대표자 명의로만 앉은 채 주방장은 따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고, [[김용만]]의 맘보국수집처럼 아예 지분에 참여하면서 얼굴만 빌려주는 경우도 많다.] [[네티즌]]들은 반신반의하는 중이지만, 메인 메뉴가 자신의 이름을 딴 '봉짬뽕'인 것을 보면 나름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봉짬뽕, 많은 양의 밥을 세모꼴로 쌓아올린 벚꽃새우 볶음밥 이 두 가지가 시그니처 메뉴다. 방문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유튜버]]들이 한결같이 "짬뽕 맛은 괜찮다"라고 호평을 많이 한다. 중화원에서 직접 비법 전수를 받고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예전과는 사업 마인드가 달라졌다. 다만 2020년 이후로는 나이도 나이이지만 힘든 주방일의 후유증으로 허리에 철심을 박은 몸이라 주방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은 주로 서빙 일을 한다고... 2020년 초, 아내 박미선의 [[유튜브]] 채널 [[미선임파서블]]과 [[https://www.youtube.com/channel/UCcKONiMqDh1T7MaUp6WJoKw|나는 박미선 - PARKMISUN]] 채널에 봉짬뽕 가게가 등장한 거 보면 최소한 2년 넘게 '''망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실제로 천안 내에서 장사가 꽤 잘되어 두정동에 이은 또다른 번화가인 불당동에 분점을 냈다. 에이핑크 [[김남주(Apink)|김남주]]의 유튜브 남주세끼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서울에 지점을 낼 생각도 있는 모양. 아내와는 [[현재]] [[주말부부]]로 지내는 상태라고 한다. 물론 방송일도 간간히 겸하고 있다. 사업과는 별개로 본인이 KBS표 정통 희극 연기에 대해서 나름 자부심 같은 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개그스타]] 같은 심야 신인 코미디 발굴 프로에 [[송은이]] 등과 함께 출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감독 역할)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일본 희극인들과의 교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을 때에도 종종 등장하는 편으로, 2014년에는 [[요시모토 흥업]] 소속 [[코미디언]]들과 KBS 공채 개그맨들의 협동무대인 '코미디 한일전'의 한국 좌장 역으로 출연했다. 정통 희극 연기력을 바탕으로 하여 정극 연기에도 도전하는 편으로, 2016년에는 [[MBC]] [[드라마]] [[옥중화]]에 고정 [[조연]]인 포도부장 양동구로 출연한다. 사실 드라마는 2005년 [[EBS]]에서 방송했던 '겨울아이'[* 이 드라마에는 훗날 [[가수]]로 데뷔하는 [[이홍기]]가 [[주연]]으로 나왔다.], 2012년 [[KBS]] [[드라마스페셜]]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 [[유오성]] 주연.]에 이어 세번째다. 그런데 각종 기사에는 이걸 잘 몰랐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는지 옥중화가 첫 드라마라고 나왔다. [[2017년]]에는 전 MBC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에 출연했다. [[2016년]]에는 [[가수]]로 데뷔하여 음반을 냈는데, [[본인]]이 직접 작사하고 [[김범룡]]이 작곡한 '중년의 청춘아'라는 곡으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김범룡]]은 이봉원의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이자 동네 형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온 걸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저 곡으로 [[전국노래자랑]]에도 초대가수로 나온 적 있다. 2020년 SBS 창사 30주년을 맞아 진행된 [[SBS 연예대상]]에서 1990년대를 빛낸 [[이경실]], [[이성미]], [[이홍렬]], [[임성훈]], [[최화정]], [[최양락]]과 함께 레전드 특별상을 수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