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병훈(PD) (문단 편집) == 연출 경력 == 직장 초년엔 쉽지 않았다. "입사 첫 해 부산MBC에 보내야 할 필름을 다른 곳으로 잘못 보내 편성국에서 쫓겨났고, 제작국으로 발령 받은 뒤에는 성우였던 아내와 연애를 하다 드라마를 소위 ‘말아먹기도’ 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5241386876586|출처]]. PD 입봉 이후 신참 시절을 제외하면 연출 경력의 거의 대부분이 조선시대 배경 사극이다. 간혹 있었던 예외가 2005년 연출한 [[서동요]]로, 유일한 [[SBS]] 작품이자 삼국 시대작이기도 하다. 1987년 연출한 [[남태평양 3000마일]]은 서사모아에서 조업중인 선원들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이다. 그 유명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1982년작 단막극 [[탄생]]은 현대극인데, 군부정권이 유지되던 시절이다보니[* 후술되어있지만 광해군을 다룬 회천문도 강제종영당했다.] 이 드라마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박모씨를 인격자로, 피해자들을 삐뚤어진 밑바닥 인생으로 왜곡했다. 이병훈의 [[흑역사]] 중 하나. 후술된 1997년작 '세번째 남자'도 사극이 아닌데 역시 막장 드라마로 악명을 얻었다. 하여튼 조선 시대 사극 연출 전문가다 보니, MBC의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중 제 6화, 제 7화를 제외한 전 시즌을 연출했다. * 1980 《[[의친왕(드라마)|의친왕]]》 * 1982 《[[남강 이승훈(MBC)|남강 이승훈]]》 * 1983 제1화 《[[조선왕조 오백년]]:[[추동궁 마마]]》 - 태조 ~ 태종 --- '''이병훈''' 연출 * 1983 제2화 《[[조선왕조 오백년]]:[[뿌리깊은 나무(MBC)|뿌리깊은 나무]]》 - 세종 --- '''이병훈''' 연출 * 1984 제3화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 - 문종 ~ 연산군 --- '''이병훈''' 연출 * 1985 제4화 《[[조선왕조 오백년]]:[[풍란(드라마)|풍란]]》 - 중종 ~ 명종 --- '''이병훈''' 연출 * 1985 제5화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드라마)|임진왜란]]》 - 선조 --- [[유길촌]], '''이병훈''' 연출 * 1986 제6화 《[[조선왕조 오백년]]:[[회천문]]》 - 광해군 --- 김종학 연출[* CP(기획)를 맡았다. 회천문의 주연 광해군 역으로 [[이희도]]를 적극 밀었다.] * 1986 제7화 《[[조선왕조 오백년]]:[[남한산성(드라마)|남한산성]]》 - 인조 ~ 현종 --- 김종학, 유길촌, 장수봉 연출 * 1988 제8화 《[[조선왕조 오백년]]:[[인현왕후(드라마)|인현왕후]]》 - 숙종 ~ 경종 --- '''이병훈''' 연출 * 1988 제9화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드라마)|한중록]]》 - 영조 --- '''이병훈''' 연출 * 1989 제10화 《[[조선왕조 오백년]]:[[파문(드라마)|파문]]》 - 정조 ~ 철종 --- '''이병훈''' 연출 * 1990 제11화 《[[조선왕조 오백년]]:[[대원군(MBC)|대원군]]》 - 고종 ~ 순종 --- '''이병훈''' 연출 1990년대는 데스크로 승진하여 방송사의 인사관행 및 관례대로 한동안은 현장 연출보다는 기획(CP) 업무를 주로 맡다가 세 번째 남자(1997)[* 당시 SBS가 메인뉴스를 9시로 옮기면서 [[행복은 우리 가슴에]]를 방영하기 시작했는데 MBC도 이에 맞서기 위해 이병훈 PD 복귀라는 초강수를 뒀다. 결과적으로는 [[문영남]] 작가의 [[정 때문에]]를 앞세운 KBS의 압승이었다.]로 복귀했다. 허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는데, 이런 저런 이유가 많기는 했지만 세 번째 남자는 당대의 막장 드라마로 내용도 부실하고 선정성이나 폭력성으로 경고도 많이 먹은 드라마였다. 이병훈 PD 본인이 사극에 특화된 감독이었는데 현대극을 했다가 결과적으로 악수만 둔 셈이다. 그러다 창사 특집을 내세우며 기대작으로 심혈을 기울였던 '''[[허준(드라마)|허준]](1999)'''의 대성공으로[* 최고 시청률 64.8%.] 일약 국장급 PD의 현업 완전 복귀를 이루었다. 심지어 이 당시 드라마 제작이 자체에서 외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이후 MBC에서 마지막으로 드라마 [[상도(드라마)|상도]]를 만들고 정년 퇴직 후, 외주제작사(김종학프로듀서)로 이직했다. 이 당시 불던 스타 PD들의 외주제작사 이적의 거의 첫 케이스.[* 2000년부터 시작된 드라마 외주제작 열풍은 현재는 완전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특히나 지상파 3사가 자체 제작하는 드라마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단편극에 그친다. 이유는 돈은 좀 더 들어도 여러모로 골치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기 때문인데 이러한 트렌드를 주도한 것이 이병훈 PD의 이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병훈 PD의 경우 MBC에서의 정년퇴직 후 김종학프로덕션으로 적을 옮겨 계속 연출을 이어간 것으로 현직에서 바로 프리랜서로 전향한 타PD들과는 약간 다른 사례다.] 여담으로 [[상도(드라마)|상도]](2001)의 경우 최인호의 원작도 탄탄하고 연출도 잘된 명작이었으나, 본방 당시 SBS의 [[여인천하]] 인기가 고공행진하던 시기다 보니 이에 가려서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거기다 2002년 1월부터 3월까지 KBS2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면서 ''''역대 한국 드라마 죽음의 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매우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였다. 허나 내공이 어디 가진 않아 이후 '''[[대장금]](2003)'''을 다시 빅히트시켰으며[* 이병훈 PD가 정년퇴직하고 외주제작으로 만든 첫 작품으로, 자신의 입사 후배들이 방송국에서 임원이나 국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병훈 PD를 국장님이라 부르며 대우해주었다고 한다. 이 시기 이병훈 PD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제작비는 바로 그 짬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서동요(드라마)|서동요]](2005)(SBS), '''[[이산(드라마)|이산]]'''(2007), [[동이(드라마)|동이]](2010), [[마의(드라마)|마의]](2012), [[옥중화]](2016) 등을 연출하였다. 몇몇 작품 마지막 장면에서 [[무덤]] 씬이 나왔었다. [[허준(드라마)|허준]], [[상도(드라마)|상도]], [[동이(드라마)|동이]] 등에 나왔다. [[대장금]] 후반부에서도 장금이 [[엄마]]이자 한때 한상궁과 최상궁의 수랏간 동료였던 명이의 돌무덤(장금이가 만듦)에서 [[용서]]를 비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산]]은 거의 드라마 후반부에 [[성송연]]의 무덤씬이 나왔었다. 또하나의 특징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극초반에 출연했다가 사라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각 드라마의 등장인물 참조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까지는 정통 궁중사극 위주였다면, '허준'의 히트 이후에는 이른바 현대 퓨전 사극의 문을 연 PD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용의 눈물]], [[여인천하]]를 연출한 김재형 PD 등과 함께 당대 한국 TV사극계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였다. 프리랜서 이후에도 방송 편성을 주로 MBC로 잡아 '서동요'를 제외하면 모두 MBC에서만 사극을 만들었다.[*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유가 언급되었는데, SBS 제작진과의 작업은 처음이라 손발이 안 맞는 부분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MBC [[사극]]의 절반 이상은 모두 이병훈 감독이 연출하였다. 50부작 이상의 MBC 조선시대 사극은 거의 이병훈 감독이 연출했다 사실 트렌디 사극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나뉠 수 있으나, 덕분에 스토리가 제한되는 정통사극에서 벗어난 1990년대 이후 히트작들은 사극의 주된 등장인물과 배경이 되던 왕과 후궁들의 이야기보다는 '''일반 평민들을 중점으로 특유의 이병훈표 사극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전근대 시기라 당대에는 크게 평가받지 못했으나 현대에는 높게 평가받는 전문적인 능력(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고, 그 직업 집단의 일상을 그려내는 식으로 기존 왕실 위주로 그려지던 사극의 지평을 확대하였다.[* 그렇다고 왕실을 다루지 않는다는건 '''전혀''' 아니다. '허준'의 허준, '대장금'의 서장금, '마의'의 백광현은 [[어의]]였으며, '이산'과 '서동요'는 주인공부터가 왕이다. '동이'의 동이는 그 유명한 숙빈 최씨였다. '상도'가 그나마 왕실과 관련이 적은 편이지만 없진 않다. 왜냐하면 임상옥이 태천 현감 및 곽산 군수에 임명되고 그 전에도 공무역이 주요 이야기 소재로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의 전통 사극들이 십중팔구는 왕과 조정 얘기 뿐이었다면, 이병훈 PD의 작품에선 왕실과 조정이 조연에 머무는 경우도 많고, 주연으로 올라선다 하더라도 조선 시대에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끌어온다는 특징이 있다.] '허준'의 내의원 - [[한의학]], '상도'의 만상 - [[상업]], [[기업]], '대장금'의 수랏간 - 전통 [[한국 요리]], '서동요'의 태학사 - [[과학]], '이산'의 도화서 - 전통 [[미술]], '동이'의 장악원 - '전통 [[음악]]', '마의'의 사복시 - 전통 [[수의학]], '옥중화'의 전옥서와 주인공의 외지부 활동 - 조선시대판 [[교도소]] 및 [[변호사]] 활동까지. 대규모 스케일이 돋보이는 사극보단 오밀조밀하고 세세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사극을 만들었고, 덕분에 장편 사극을 만들면서도 이병훈 사단 특유의 풍부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서동요'나 '동이'처럼 그런 거 보여주려다 입질만 하고 끝난 케이스도 있긴 하다. 서동요는 전반적으로 삼국시대에 과학기술의 개발이라는 얼척없는 설정 때문에 시청률도 기존의 연출작들과 달리 중박으로 마쳤지만 동이는 장악원을 살리진 못해도 시청률은 그나마 후반부에 어느정도 회복해 체면치례를 했다. 등장인물들이 이러다 보니 이병훈표 트렌디 사극들의 주제도 보면, 주로 '''핍박받고 천대받는 입장인 주인공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뤄내는 [[입지전적]]스런 성공담'''들이 많다. 주인공은 일견 고지식하지만 본성은 선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수재이며, 그런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해 주는 연인이 있고, 극중 감초격으로 개그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악역들은 비슷한 음모를 극이 끝날 때까지 반복한다. 주인공은 초중반이나 중반에 인격적인 성장을 끝마치고 선의 화신이 된다. 라이벌은 무조건 악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나름대로의 사연을 갖고 있으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능이 주인공보다 부족해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껴 스스로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나오는데 드라마 '허준'의 '예진아씨'는 '허준'을 짝사랑 하지만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상도'의 '다녕 아씨'는 '임상옥'과 서로 마음이 있지만 결국 맺어지지 못하며, '대장금'은 '민정호-서장금-중종', '서장금-민정호-최금영'의 삼각관계가 펼쳐지며[* 다만 중종은 극 후반부 가서 삼각관계가 되는거고, 요리가 주인 전반부엔 그냥 미식가다.][* 메인은 서장금-민정호였고 최금영이 일방적으로 민정호를 짝사랑했다. 수랏간 생각시부터 나인시절까지는 장금과 금영이 서로 사이도 좋고 서로의 능력을 칭찬하는 친구 혹은 선의의 경쟁자 포지션이었으나 최고상궁 경합을 두고 편이 갈라져 갈등이 시작됐으며, 갖은 술수도 모두 이겨내고 재능과 성실함으로 계속 승리하는 장금에게 열등감을 느껴 갈등이 깊어진다. 이 갈등은 금영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민정호가 서장금에게 푹 빠지면서 극대화되어 이후 금영이 본격적으로 흑화하는 계기가 된다.], '서동요'는 나라를 초월한 사랑이 그려지고, '이산'과 '동이'는 실제로 있었던 왕과 후궁의 사랑을 그린다. '마의'에서도 공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