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범호 (문단 편집) == 여담 == * 별명은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줄여서 '''꽃범호''')', '한화의 매력남'[* 한화의 매력남이라는 별명은 이범호 전용 응원문구에서 따 온 별명이다.(한화의 매력남은 누구? 이범호!)], '월드추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입단 당시 언플에 실망한 한화팬이 지어준 별명.], KIA 시절에 새롭게 나온 별명으로는 2017년 6월 14일 마이데일리 이후광 기자의 오타에서 나온 별명인 "이봄허"[*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614174601775|라인업 기사]]], KIA의 주장을 3년간 역임한 탓에 '''꽃주장''', '''듀당''', 그 외에 두더지 등[* 부상으로 1군에 왔다 2군에 갔다를 반복해서라는 썰과, 외모가 두더지같다는 썰, 둘 다라는 썰이 있다.]이 있다. 아무쪼록 [[개그 콘서트]]의 [[오지헌]]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붙은 별명들. 본인도 컴플렉스를 느끼는 듯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꽃범호'라는 별명은 이범호를 놀리는 것이 아닌 팬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한 [[야빠]]들 사이에선 '''꽃'''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 이적생 출신으로는 최초로 타이거즈 주장을 맡았다. 2014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3년간 주장을 맡았다. 3년차인 2016 시즌에는 후배들에게 넘겨주려 했으나,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의 요청으로 주장을 1년 더 하게 되었다. * 유독 [[다르빗슈 유]]에게 상당히 강했다. WBC 결승에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것도 이범호였고, 2010 시즌 중에서는 멀티히트까지 때려낸 적이 있었다. * 동시대에 리그를 지배했던 투수인 [[더스틴 니퍼트]]에게도 상당히 강했다. 연타석 홈런에 심지어 한국시리즈에서 빅게임피쳐에 무실점 기록을 세운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려서 우승을 확정시킨적도 있다. 뿐만아니라, 유희관 노경은 등 두산 의 주축투수 상대로 대부분 쥐잡듯이 잡았다. * 리그 최고의 빅게임 클러치히터. 수많은 결승타를 때려냈으며, 국제대회의 여포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최다홈런기록, 최다만루홈런기록 등등 찬스상황에 굉장히 강했다. * 햄스트링 부상 이후 주력이 크게 떨어져 굉장히 느리지만 고교 시절에는 100m를 12초대에 끊는 준족이었다.[* 한때 11초 대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범호 본인이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옐카3]]에 나와서 12초 1까지 나온 적 있었다고 밝혔다. 2008년에도 12도루로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다.] 지명 당시 같은 팀 동료이자 친구인 [[김주찬]]과 유격수 최대어로 꼽혔다. *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그에게 반한 [[조교]]가 등장한다. [[http://news.nate.com/view/20091112n03487?mid=s1004|#]] * 인터뷰에서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전두환]] 대통령 덕분에 프로야구가 만들어졌잖아요. 야구선수들이 큰 은혜를 입은 거죠. 누군가 나서 돔구장을 짓는다면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분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다만 발언 당시는 한화 소속이었고, 무엇보다 이범호 본인이 대구경북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이런 인식이 있을 수 있다.] * 화장품 광고를 찍은 게 아닌가 의혹이 제기되었다.[[http://www.youtube.com/watch?v=Tr9kBrEbi3Q|#]] 그런데 사실 이범호는 2008년에 [[강민호]], [[이용규]]와 함께 [[왁스]]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eesung7777&logNo=80055803823&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 * 소속팀 모기업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2012년 [[기아자동차]]의 희생번트편에서 번트를 대는 선수로 나왔다. 목소리로 나오는 사람은 [[김상훈(1977)|김상훈]]이 출연한 광고와 마찬가지로 베어스의 레전드 [[박철순]]. 그런데 이범호는 실제로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선수라는게 에러.[*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범호는 기아 입단 후 2013년 4월 21일에 처음으로 번트를 댔다. 근 6년만에 댄 번트라고.][* 한화에 있을 때는 그래도 간간히 희생번트를 댔던 편. 본격적으로 터지기 이전인 2001년에 7개, 2003년에 8개를 성공시켰으며, 번트 작전을 잘 쓰지 않는 김인식 때도 2007년엔 6개를 댔다. 한화에 있을 때 기록한 총 희생번트는 32개.] 그래서 밑에 나오듯 [[사도스키]]가 번트 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희생이란 건 거짓말이라고 까기도 했다. *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sadowski.jpg]] * 2013년 [[마구마구]]에서 파워 79의 스페셜 카드를 부여 받았다. 그보다 적게 홈런을 친 [[강정호]]와 [[나지완]]이 레어를 받았는데 문제는 이들보다도 파워가 낮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할4푼의 낮은 타율인 것 같다. 그러나 기올유저들은 환영하는 입장. 구름 속의 존재인 [[김상현(1980)]]과 플래툰이 가능하므로. * 2016년부터 [[티웨이항공]] 홍보모델이 되었는데 여기서도 꽃범호는 여전했다.[* 이는 티웨이항공이 [[광주공항]]에 취항한 기념으로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선수 중 이범호를 홍보모델로 채택했고 비슷한 시기 [[대구국제공항]]에 취항하자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을 홍보모델로 채택한 바 있다. 참고로 이범호와 구자욱은 둘 다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생년월일]]이 같다. * 타고 다니는 차는 [[기아 K7]]이다. * 경기장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 선수 중 하나인데 어느 정도냐면 화낸 순간을 팬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일례로 2017년 6월 18일 경기서 임찬규가 전타석에 안치홍에게 사구를 낼 뻔한 것도 모자라 결국 헤드샷을 맞자 화를 냈다. 그것마저 득달같이 달려들 정도로 화내는 것은 아니고 심판의 제지에 문제는 크게 없었다. 임찬규는 규정에 따라 결국 퇴장당했다. 또한 2015년 5월에도 앞선타자 최희섭이 배영수에게 사구를 맞고 이에 본인도 배영수에게 2타자연속 사구를 맞자 살짝 화내는 모습도 있었다. * 선수 생활을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등 자기관리 면에서 철저한 면을 보이고 있다. 주장이 되어 선수들을 독려하는 자리가 되면서 술은 입에 대기 시작은 했지만, 잘 못 마신다고...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뷰로서 능력도 훌륭한 편이다. [[박용택]] 만큼의 달변은 아니지만 언변이 매우 뛰어난 편이고 재치도 상당하다. 굉장한 호평을 받았던 은퇴식 고별사도 원고 없이 즉석에서 뱉어난 것이라 한다. 나중에 말하길 원고가 있긴 했지만 노안 때문에 인해 글씨가 안 보였다고 한다. * 팀 내에서 [[나지완]], [[김민식(야구선수)|김민식]]과 더불어 팬 서비스가 안 좋기로 유명한 선수이다[* 사실 KIA는 [[팬 서비스]]가 가장 좋지 않은 구단 중 하나다.]. 하지만 잘해줄때는 또 잘해준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거나 은퇴 직전에는 팬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평이 갈린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에서 김민식 싸인 받으려다 거절당해서 보다 못해 이범호 본인이 대신 싸인 해줬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 이름의 '범'에 쓰이는 한자가 일본에서 [[상용한자]]밖에 있다 보니 일본에서는 이범호를 李ボム浩라고 적는 경우가 많다. [[이승엽]]의 '엽'(燁)을 가나로 대체해서 李承ヨプ라고 적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그래서 야구 국가대표시절 일본과의 국제 대항전의 일본 기사를 번역기로 돌리면 이[[폭탄]]호라고 번역되었다. * [[심정수]], [[마해영]], [[박경완]]에 이어 2개 팀에서 세자릿 수 홈런을 친 4번째의 선수지만, 기준을 150홈런으로 올리면 역대 최초의 선수이다.[* 송지만도 트레이드는 한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히어로즈가 현대의 역사를 버리면서 인정되지 않는다.] * 1회 WBC 때는 55번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6번을 달았다. *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레전드인 [[양동근(농구)|양동근]]과는 1981년생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 사이다.[* 사실 양동근은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고, 이범호 외에도 [[손시헌]], [[이종욱]] 등과도 친분이 있다.] 이범호가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이범호의 초등학교 동창인 [[이영수(야구)|이영수]]가 양동근과 [[한양대학교]] 같은 00학번이라 친분이 있었다 보니 이 둘을 연결시켜 줘 그 뒤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대표 한정으로 이 둘의 번호를 서로 바꿔 단 적도 있는데, 이범호는 2009년 WBC 때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을, 양동근은 국가대표에서 이범호의 등번호 7번을 달고 뛰었다. 2011년 이범호가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면서 이범호와 양동근 둘 다 같은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 소속이 됐다. 2019년 7월 13일 열린 이범호의 은퇴식 때도 양동근이 참석해 꽃다발을 건네주기도 했다. * 해외 진출을 한 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복귀할 때 이전 소속팀이 아닌 곳으로 돌아왔는데, KIA 타이거즈 출신으로 2006년 마이너리그로 진출했다가 이듬해 원소속팀이 아닌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한 [[최향남]]의 사례가 먼저 있긴 했지만, [[KBO FA제도|FA]] 자격을 제대로 얻고 진출한 선수들 중에서는 이범호가 최초. 이후 2017년까지 추가 사례가 없다가 [[황재균]], [[김현수(1988)|김현수]] 등이 뒤를 이었지만, 일본 진출을 했다가 다른 팀으로 복귀한 선수는 이범호가 여전히 유일하다. [* 이는 대체로 한국의 프로야구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에는 원 소속구단의 동의 하에 진출한 뒤 [[임의탈퇴]] 신분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KBO FA제도|FA]] 자격으로 진출했을 경우에도 원 소속구단과의 관계가 좋았을 경우에는 별 탈 없이 원 구단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FA 자격을 얻고 해외에 진출한 뒤 복귀한 팀이 원 소속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일 경우에는 보상선수 관련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한 몫 한다.] * 이범호 은퇴 후 관중석 인터뷰. [[https://youtu.be/0kYPYQUw6lA|영상]] * 한화이글스 소속 [[노시환]]과 많은 것들이 닮았다. 이범호와 노시환은 경상도 토박이라는 점, 모두 한화이글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드래프트 역시 2차 1라운더로 지명되었고, 당시 1차지명은 모두 북일고 선수였다. 또한 180중반의 키와 90키로가 넘는 육중한 몸매 및 두터운 하체를 보유하고 있고, 두 선수 모두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 점 역시 닮아있다. 상당히 귀여운 외모 역시... 주 포지션은 3루이지만, 커리어 초반 유격수로도 출장을 하였으며, 잦은 실책과 아쉬운 수비를 보였지만 강력한 송구가 강점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두사람 모두 이글스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강석천]]과 [[송광민]]이 은퇴하는 시점에 등장한 3루수라는 점도 인상깊다(실제로 [[강석천]]과 [[송광민]]은 모두 15시즌을 이글스에서 뛰었으며, 타격 스타일이나 성적도 상당히 닮아있다). 플레이 스타일 역시 많이 닮아있는데, 모두 우투우타라는 점, 초창기 파워는 가공할만하나 변화구에 약점을 보여 삼진이 잦다는 점 역시 비슷한 점이다. 실제로 커리어 1~3년차 성적을 보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아쉽게 순위권에 들지 못한 10명 중 1명이다. 순위는 44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