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범진 (문단 편집) === 외교관 활동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李範晋.jpg|width=100%]]}}} || 1896년 주미 공사가 되어 7월 대한 제국에서 출발해 9월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러시아 공사로 전임되고 프랑스 • 오스트리아 공사를 겸임한다. 1900년 미국을 떠나 아들인 이기종, [[이위종]]과 5월 파리에 도착했다. 그는 프랑스의 대통령을 만나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러시아에 도착해 러시아 황제를 알현했다. 그는 황제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에도 참석했고 1901년에 프랑스 • 오스트리아 공사에서 해임되었다.[* 러시아 공사직은 유지한다.] 잠시 독일 공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공사 시절 대한 제국의 국권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제는 한일 의정서 체결 이후 대한 제국 정부에 이범진을 소환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소환에 불응했고 황제의 전보가 왔다. 그 내용은 황제는 이범진이 "러시아에 계속 머무는 것을 원하고 소환한 것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후 이범진이 귀국을 거부하자 일제가 공사직을 해임시켰지만 그는 비공식적이지만 공사직을 계속 수행했고 러시아 황제는 대한 제국과 러시아 양국간의 친선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한국의 국권 회복을 바란다라고 했다. 그 뒤 러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이범진은 일제와 러시아의 강화 조약 체결이 대한 제국 국민을 절망으로 빠트렸고 빨리 서울에 러시아 공사를 파견해주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의 황제의 서신을 러시아 외부 대신에게 전달했다. 그 후 무책임한 대신들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황제는 러시아 황제에게 국권 회복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