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범선 (문단 편집) == 인물 소개 == [[선우휘]], [[오상원]]과 함께 [[대한민국]]의 전후([[6.25 전쟁]] 이후)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평안도]] 출생의 [[소설가]]. 호는 학촌(鶴村). 1920년 12월 30일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현 안주시 운학리)에서 아버지 이계하(李癸夏)와 어머니 유심건(劉心健) 사이의 5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계하는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6080501033339179001|대지주로]], 이범선의 집안은 굉장한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1933년 고향의 청강(淸江)보통학교를 거쳐 1938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평양시|평양부]]에서 당대의 엘리트인 은행원으로 근무했으며, [[만주]]에 가서 [[사무직]] 계통의 회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그는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고 1943년 고향의 신안주 금융조합에서 근무하다가, 그해 10월 평안남도 [[중화군]] 풍덕면 풍덕리 출신의 3세 연하인 홍순보(洪順輔)와 결혼했다. 11월에는 일제의 [[징용]]을 피해 당시 처남이 간부로 있던 평안남도 [[개천시|개천군]] 북면 봉천리 소재 풍천(鳳泉) 탄광 경리부로 자리를 옮겨 전쟁의 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표작 [[학마을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최후반기에서 6.25 전쟁 발발 전후 시기로 표현된다. [[8.15 광복]] 후 귀향했다가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의 공산당이 지주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자, 1946년 홀로 월남하여 [[미군정청]] [[대한민국 국방부|통위부]], 금강전구회사 회계과 등지에서 근무하는 한편, [[동국대학교]] 전문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재개했다. 이듬해인 1947년에는 부인 홍순보 또한 월남하여 서울에 새 터전을 꾸리게 되었다. 1948년부터는 [[연희대학교]] 교무과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부인과 함께 연희대학교 사택에 거주했다.[[https://m.blog.naver.com/kwank99/30021718974|#]] 1949년 동국대학교 전문부 졸업 후에는 교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출신의 실향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온가족이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되면서 소설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된다. 1951년 [[1.4 후퇴]]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시]] [[부민동|대안동]](현 [[부산광역시]] [[서구(부산)|서구]] [[부민동]])으로 피난하여 동네에 있던 교회에서 살았다. 그해 가을부터는 [[백낙준]]의 소개로 [[거제고등학교]] 교사에 부임하게 되어 가족들이 [[거제도]]로 이주했다. 이범선은 거제고등학교에서 3년간 근무한다. 1952년 동국대학교 본과를 졸업했고, 1954년 서울로 돌아와 [[성북구]] [[안암동]], [[경기도]] [[시흥군]] [[안양동|안양읍]](현 [[경기도]] [[안양시]]) 등에서 셋방을 얻어 살았다. 1955년부터는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이때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해 『현대문학』 4월호에 단편 「암표」, 12월호에 단편 「일요일」을 각각 투고했다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1959년 대광고등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잠시 교무주임으로 근무했으나 이듬해인 1960년 사임했다. 1961년에는 [[휘문고등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등에서 강사로 출강했으며, 196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임강사가 되었다. 1973년 [[부교수]], 1977년에는 [[교수]]로 승진했고, 1981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82년부터는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문리과대학장으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2월 28일 자택에서 [[뇌일혈]]·[[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줄곧 [[경희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중 결국 1982년 3월 13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자택에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203130032920203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3-13&officeId=00032&pageNo=2&printNo=11217&publishType=00020|별세했다]]. [[김진규(배우)|김진규]], [[최무룡]] 주연으로 《[[오발탄]]》이 영화화되었고 《동트는 하늘밑에서》는 [[클로버 문고]]에서 [[신영식(만화가)|신영식]] 그림으로 〈무적의 독수리 소대〉라는 제목으로 만화화되었다. 《[[학마을 사람들]]》도 TV 문학관에서 극화되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20년 [[학촌 이범선문학상]]이 제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