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명환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시절 [[박석민]]과 함께 대구고의 창단 첫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뒤 [[한양대학교]]에 진학해서도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지만[* 2007년도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경성대를 누르고 6년만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준결승전에서 한양대는 단국대에게, 경성대는 고려대에게 승리하고 결승에서 만났다.], 결국 프로 지명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그래도 고교와 대학 시절의 실적 때문에 [[2008년]] [[KIA 타이거즈]]의 신고선수로 프로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기아 타이거즈 2군|2군]] 무대에서 괜찮은 성적을 내면서 2009년 KBO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선발되어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하며 올스타전 MVP에 올랐다. 하지만 이 퓨처스 올스타전 MVP는 당시 좋지 않던 무릎과 바꾼 것이었다. 쉬어야 할 때, 1군 욕심과 정규 선수 전환 때문에 참았던 무릎이 결국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악화되면서 KIA에서는 정규 선수 전환을 포기했고, 이명환은 수술 이후 재활 끝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다행히 2011년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독립리그]]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에서 뛰면서 야구 선수로서의 삶은 이어갈 수 있었다. 일본 독립리그인 시코쿠 리그 타점왕과 베스트 9에 들어가면서 괜찮은 활약을 보인 이명환을 [[NC 다이노스]]에서 접촉해서 데려갔다. 그래서 2012년부터는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다시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게 되었다. 2012 시즌 [[퓨처스리그]]에서는 주로 팀의 중심 타자로 나섰다. 85경기 233타수 타율 .279 65안타 6홈런 38타점 27득점 1도루 29사사구 56삼진을 기록. 2013 시즌 막바지에 비로소 1군에 데뷔해 5경기, 9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4년 퓨처스 리그에서는 14경기에 출전해 27타수 7안타(타율 0.259) 1홈런 5타점에 그쳤으며, 그나마 7월 20일이 마지막 출전이었다. 그리고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