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만기 (문단 편집) == 정치 행보 == > * 20대엔 '''[[천하장사]]''' > * 30대엔 '''[[대학]][[교수]]''' > * 40대엔 '''[[국회의원]]''' >---- >이만기가 본인의 아내에게 설명했던 미래 인생설계 내용. 성향으로 따지면 보수 성향이 맞으며 [[친박]]보다는 [[비박]] 라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체육위원장을 맡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경력은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중도[[좌파]] 중심의 [[포괄정당]]이긴 하다.] 당시에는 이 당의 핵심인 [[노무현]]이나 [[김경수]] 등이 [[경상남도]] 출신이라서 [[지역감정|이만기 본인을 포함한 현지 주민들에게 지대하게 호감을 얻었기에]]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당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만기는 순수 운동선수 출신자로서 정계에 진출한 것이라서 정치적 감각이나 각종 시사 이슈에 대단히 무지한 사람이니 [[철새(정치)|집권여당이라는 이유로 정치 성향을 무시하고 무작정 당적을 옮겼던 것도 있다]]. 2000년 [[한나라당]]에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했지만,[* 사실은 '''원래 이만기를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했었는데''' 이걸 본 [[김호일]]이 화가 나서 당시 사무총장이였던 [[하순봉]] 前 의원을 두들겨 팼고 쫄은 하 위원장은 '''이만기 공천 취소, 김호일 공천 확정'''으로 만드는 병크를 저질렀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702180442687790|기사 참조]]. ] 현역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김호일]]에 밀려 떨어졌다. 당시 김호일 의원이 "[[한자]]로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른다"고 비방하였고, 빡친 이만기 측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이후 고소를 취하했다.[[http://v.media.daum.net/v/20031028120902733|#]] 근데 김호일은 배우자가 총선 시절에 저지른 선거법위반으로 인해, 2년 만에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후계자 김정부도 부인 때문에 당선무효형을 받는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며 [[국민통합21]] 창당 발기인으로 합류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발기인으로 합류해[[http://www.ej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344|#]]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창원시 마산합포구(선거구)|마산시 갑]] 지역의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서 지역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김정부]] 후보에게 2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또''' 2년 뒤 김정부는 부인의 비리로 결국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2006년]]에 재보권선거를 치뤘고, [[성산구|창원시 을]] 지역구 국회의원과 [[경상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이주영(정치인)|이주영]][* 현재는 국회의원 사무실을 리모델링해서 본업인 변호사 사무실로 쓰고 있다.]이 당선되고 이후 2020년까지 이어지다 21대 총선에는 [[최형두]] 후보가 당선되었다. 탄핵 역풍 바람으로 초반에 앞서가다가 막판에 역전당하면서[* [[정동영]] 노인 비하 발언이 결정타라는 이야기가 있다.] 낙선했다. 덤으로 이 때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고, 재산의 절반을 날려먹었다고 한다. 이후로는 정치적 행보는 크게 보이지 않다가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열린우리당 해체 이후에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위시되는 보수정당으로 전향했다. 당시 경남지역에선 고향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다가 임기 종료 및 당 해체시점에 접어들어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사례가 적지않게 있었다. 대표적으로 [[엄용수]] 의원과 [[강길부]] 의원 등이 있다.] 소속으로 김해시장 예비 후보로 출마하였지만, 당내 경선에서 [[김정권]]에게 패했다.[* 본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맹곤]] 당시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후 2015년 9월에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태호(1962)|김태호]] 의원을 대신해 새누리당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59274&gubun=|김해 을 조직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한다. 1월 11일에 먼저 출마선언한 황전원 예비후보가 사퇴하면서 김해 을의 유일한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되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와의 양자대결이 점쳐지고 있다. 김해을은 기본적으로 새누리당 우세지역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이 위치한 선거구[* 선거구 개편으로 봉하마을 소재지는 김해갑으로 옮겨졌으나 그전 선거까지는 김해을에 위치해왔음[[http://www.vop.co.kr/A00001009908.html|#]].] 이다보니 노무현의 최측근이던 김경수 후보에게 어드밴티지가 있어 접전이 예상된다.[[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6/02/17/0502000000AKR20160217071600001.HTML|#]] 그러나 계속해서 우세한 정당에서 출마한다는 점에서 [[철새(정치)|철새]]라는 비판이 있다. 이는 연예인, 선수 출신 정치인의 한계이기도 한데 정치적으로는 본인이 내세울 이력이 없으니 인지도를 담보로 우세한 정당과 손을 잡을수 밖에 없다. 선거전 여론조사에서 점점 불리해지기 시작하다못해, 2016년 4월 4일 여론조사에서 김경수 후보에게 거의 더블 스코어 차이로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당에서는 불안한지 [[김무성]]을 김해에 직접 보내서 선거운동을 해주도록 하였다. [[파일:김무성 이만기.png]] 김무성은 지원 유세에서 이런 말도 했다. 그외로 "운동권 정당(민주당)이 나라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는 발언을 했었는데 역효과만 내고 지지율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당에다 걸어놓은 초상화 중에서 [[김영삼]], [[이명박]]이 운동권 출신이었으며, 심지어 같이 걸어놓은 박정희는 김영삼, 이명박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이명박]]은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정에 반대했다 투옥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고, [[친이]]는 정치 인생 내내 [[친박]]이랑 싸웠기 때문이다. [[17대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와 대립하며 엄청난 네거티브 대전을 펼쳤다. [youtube(1WqPWV3iIuU, start=1480)] 4월 7일 후보자 토론회에서 김경수 후보의 국보법 위반 경력을 공격하다가[* 김경수 후보는 민주화 운동으로 국보법 위반 관련 구속이 되었다.] 김 후보에게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라는 질문을 해 냉소를 사기도 했다. 물론 이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 김경수 당시 후보는 공장에서 왼손 검지가 찍히는 사고가 나서 면제 처분을 받았는데[* 정확한 면제 사유는 '근위지절강직'. 근위지절 부위는 손가락에서 첫 마디와 중간 마디 사이의 관절을 말한다.] 이걸 문제 삼으려고 자신이 체중 과다로 면제 사유를 밝힌 이후에 저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김경수는 황당해하며 이런 질문까지 받아야 하냐고 할 정도였다. 운동권 출신이라 하도 많이 구속이 되어서 손가락이 멀쩡했더라도 병역 논란이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결과는 김경수 62.4% 이만기 34.4%로 참패했다. 참고로, 김경수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중에서 득표율이 제일 높았고, 20대 총선 영남지역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진 선거구 중 최다 표차 패배지역이 되었다. 낙선 이후 [[이재정(1944)|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의 교과서 국정화 반대 사진과 함께 '''빨갱이는 즉시 사살하라'''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리트윗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김해시 을]]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을 지냈으나 당무감사에서 [[서청원]], [[유기준(1959)|유기준]], [[박민식]], [[류여해]] 등과 함께 물갈이 당했다. [[백년손님]] PD 인터뷰에 따르면 더 이상 선출직 공직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http://naver.me/5XPYuBab|#]] 20대 총선에 출마할 때도 가족들과 주변에서 엄청나게 출마를 반대했다고 하는데 본인도 낙선할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본인의 상대였던 [[김경수]] 의원이 2018년 4월에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경상남도지사]]로 출마하면서 의원직을 내려놓게 되어 자리가 비게 되었고, 출마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계속 백년손님 등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치에 미련을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부터 방송출연이 금지되며 뉴스 인터뷰나 선거 토론회 등 선거와 관련 있는 방송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다만 완전히 정치에 미련을 못 버린지 인력거 체험으로 청와대 앞을 지날때 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같이 있던 장모는 “청와대에는 눈길도 돌리지 마라.”라고 정색해 본인은 미련이라도 주변에서는 완강히 반대할 것 같다.] 다음 총선에 출마하려면 90일 전인 2020년 1월 16일[* 사족으로 이때는 뭉쳐야 찬다 해외촬영차 사이판에 가 있었다. 15일부터 3박 5일 일정이었다.]까지 방송에서 다 물러나야 한다.[* 말이 저때지 녹화방송이므로 12월 말에는 하차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하차하지 않으면서 다음 총선 불출마가 확정되었다. 2021년 이후로는 [[김해시|김해시장]]에 재도전하거나 대학교수 경력을 살려 경남교육감에 도전할 수 있다는 지역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아무리 친노진영의 거점인 김해라지만 영남지역에서 망신수준의 표차이가 난 이만기를 다시 공천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