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라클리오스 (문단 편집) == 말년: [[무슬림의 시리아 정복 전쟁|이슬람의]] [[무슬림의 이집트 정복 전쟁|폭풍]] == >잘있거라, 시리아여. 그대에게 기나긴 작별 인사를 고한다. 나의 사랑하는 속주여. 너의 아름다움은 이제 이교도의 수중에 있구나. 오, 시리아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으라.[* 뒤에 '정말 아름다운 적들의 땅이 되겠구나' 부분이 덧붙여져 있다.] > >---- > 638년의 이라클리오스, 시리아를 떠나며 [[이슬람 팽창]] 문서 참고. 625년까지만 해도 [[이슬람 제국]]은 1,000명이 싸웠다 하면 300명이 도망칠 정도의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이라클리오스가 사산조 페르시아에게서 힘들여 수복했던 영토 중 상당 부분은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를 앞세운 이슬람의 공세에 모두 빼앗기고 만다. 지금까지 싸웠다 하면 이겼던 황제였지만 본인이 노쇠와 병마 때문에 직접 전투를 지휘하지 못했고, 휘하의 동로마 장군들은 수적 우세를 가지고도 할리드에게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것이 참으로 제국에 큰 불운이었다. 또한 종교적 갈등도 컸다. 시리아에 우세하던 단성론은 한 세기 이상 로마 당국에게 차별을 받다가 6세기 초엽 약 20년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종교적 관용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라클리오스의 재정복과 함께 칼케돈 주의가 재차 강요되자 단성론 신자들은 분노한 것이다. 이는 페르시아처럼 저항만 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자유를 약속한 이슬람에게 현지인들이 무관심 혹은 환영의 자세를 취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엄청난 세금을 과세한 동로마에 비해 이슬람의 지즈야가 덜 가혹했던 점도 있다. 이렇게 온갖 패배를 당하고 백성들로부터는 [[근친상간|조카딸과 결혼해서]] 신의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온갖 비아냥을 들었으며 각종 병마에 시달린 나머지[*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폭이 좁은 곳은 750m밖에 되지 않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널 때조차 별별 이상한 방법을 동원해서 겨우 건넜다.[* 다리를 만들었다는 설 또는 배를 꾸며서 육지처럼 해놨다는 설이 있다.] 이 와중에 사생아 [[요안니스 아탈라리치오스]] 등이 이라클리오스가 수도를 비운 틈을 타 반란을 꾀했다가 조기에 발각되어 신체 절단형과 유배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또 대관식을 겨우 끝낸 다음 640년에는 알렉산드리아까지 공격당했다는 소식과 641년에는 새로운 로마 교황 [[요한 4세]]가 단의론을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실감에 빠져 죽고 만다. 거기다가 그는 죽으면서 저서 진술의 내용을 부정하며 "모든 게 세르기우스의 거짓말"이라는 단의론을 인정하는 말을 하고 죽는다. 그의 마지막마저 누구나도 알 만한 뻔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죽고 나서도 3개월 뒤에 그의 계승자였던 [[장남]] [[콘스탄티노스 3세]]의 명령에 따라 석관을 열고 함께 매장된 보석 제관을 벗겨내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비록 5대 대교구 중 3곳인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집트, 아르메니아 등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동방의 모든 땅을 다 잃었지만 이라클리오스는 사산조 페르시아에게서 효과를 본 전략을 다시 가동하여 제국에 생존할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부여했다. 이슬람 제국은 제국에게 그렇게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제국의 핵심 야전군 다섯 중 그 어느 야전군도 제대로 궤멸시키질 못했다. 아바르와 슬라브족이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며 일리리쿰 야전군 자체를 골로 보내버린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는 놀라운 결과며, 이는 이라클리오스가 어느 순간부터 '''영토는 잃어도 군대만은 보존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방어적 전략으로만 일관한 데 이유가 크다. 물론 영토는 제국 본진인 [[아나톨리아]] 앞마당까지 다 뺏겼지만...[* 결국은 사산 제국에게 빼앗긴 것을 힘들게 되찾고 역습을 가했다가 새로운 세력에게 다시 빼앗긴 것.] 여담이지만 예언자 [[무함마드]]가 그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대강 [[알라|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중립적인 내용으로, 이라클리오스도 아직 이 군소집단의 종교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선물을 보내 돌려보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사산 왕조의 [[호스로 2세]]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서신을 보냈고, 호스로 2세는 [[조로아스터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외교문서에 노발대발하여 찢어버렸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유일신을 믿는 동로마 제국과 달리 사산 왕조만큼은 멸망시킬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외교문서가 진품인지, 후대의 이슬람 사가들이 각색한 것인지는 아직 학계에서 논의가 분분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