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동녕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 후기의 개화 사상가이자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이철희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과 이석희(1922~2014) 전 [[대우그룹]] 부회장이 그의 손자다. 호는 석오(石吾), 독립운동가들의 회고록에서는 이름을 대신해 주로 석오로 등장한다. 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립 멤버로 초대•2대, 5~7대 임시정부 주석, 제3·5·9·10·13·14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과 제1대·12대·15대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지내 임시정부 [[위임통치 청원 사건|중반기]] [[국민대표회의|바람 질 날 없던 상황]]에도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탱한 대들보같은 존재였다.''' 임시정부가 성립될 때부터 1927년 헌법 개정까지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이었으며, 이후로도 죽는 날까지 국무회의 주석(1927~1933, 1935~1940)으로 정부수반을 역임했다. 초기의 국무총리-대통령 [[이승만]](1919~1922)[* 대통령에서 탄핵된 것은 1925년이나, 1922년 자신을 대통령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며 상하이를 떠난 이후로는 실질적으론 임시정부를 분열시킨 존재였다.], 항쟁기의 주석 [[김구]](1940~1945) 사이에서 '''국무회의 주석(정부수반)'''으로 임시정부가 무너지지 않는 가장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으나, [[8.15 광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여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임시정부 연구에서는 그야말로 중요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