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단심문관 (문단 편집) == 현실의 이단심문관 == * [[토마스 베켓|토머스 베케트]] [[퇴마록]]의 [[박신부]]가 들고 다니는 '베케트의 십자가'의 그 베케트다. [[영국인]]으로서 원래는 영국왕 헨리 2세의 친구이자 신하였고 당대의 권력자였다. [[영국]]의 국왕보다도 사치를 더 많이 부렸다고 한다. 그런데 헨리 2세가 정치적인 이유로 친구인 베케트에게 수도원장을 맡기려고 했고, 베케트는 이를 몇차례 거부했지만 결국 수도원장직을 맡게 된다. 그런데 베케트는 철두철미한 인물이었기에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려고 했고, 나중엔 진심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헨리 2세의 친구에서 적으로 변한다. 시대가 [[중세]]이다 보니 [[마녀사냥]]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재판권을 앞세워서 헨리 2세의 재판에 앞서 종교재판을 하여 오히려 가벼운 처분 등으로 민심을 달래고 헨리 2세의 화를 돋우었다. 결국 헨리 2세의 심기가 불편해짐에 따라 그 휘하의 [[기사]]들에게 살해당한 뒤 [[성인#s-2|성인품]]에 오른다. 당대에도 이 사건이 일어나고 헨리 2세가 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자 휘하의 기사가 과잉충성을 했다고 주장하며 면피하려고 했다. "죽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제대로 된 부하가 없어서, 베케트 같은 자에게 굴욕을 당하는구나"의 뉘앙스였다는 설도 있다.]라고 투덜거린 것을 듣고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왕실의 주장이지만 이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며 정말로 헨리 2세의 명령으로 실행에 옮겼는데 책임을 하수인에게 덮어씌웠다는 주장도 있다. 하여간 베케트 본인은 실제로 헨리 2세의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 지은 죄 이상의 처벌을 받았던 상황인지라, 헨리 2세보다 먼저 재판을 시도해 먼저 사람들을 구하려고 손을 썼던 것. 소설 [[대지의 기둥]]이 이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대지의 기둥은 헨리 2세의 어머니 마틸다와 그녀의 4촌뻘인 스티븐 간의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며, 대략 소설의 에필로그 정도의 시점에 베케트 암살이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 [[토머스 모어]] 법관으로서 종교재판관을 겸임했다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 등의 서적을 저술하여 종교의 자유를 바라는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모어는 [[가톨릭]]의 열성 신자로 철저하게 교황측에 서서 종교재판으로 루터파 [[개신교]]도 6명을 [[화형]]에 처하고, 수십여 명을 징역에 처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된 틴들역을 만든 윌리엄 틴들의 체포와 처형에도 배후에 관여했다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정작 모어 자신도 [[헨리 8세]]가 이혼하여 [[성공회]]를 만들 때 격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사형당했다. [[유언]]은 "나는 가톨릭 신앙을 위해 죽는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덕분에 순교자로 모셔저서 지금은 가톨릭 성인이다. 참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례명이 토머스 모어였다. [[성공회]] 교인 중에도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인 신자가 있다고 하니, 성공회의 포용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인능욕~~] * 베르나르도 귀도 [[장미의 이름]]에도 등장한 인물. [[프랑스]]식인 베르나르 기(Guy)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현실에서도 악명 높은 이단심문관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상으로는 이단 심문이 장미의 이름처럼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십수년 동안 [[알비파]] 이단 관련 9백여 건의 재판에서 42명을 화형주(柱, 기둥)에 걸고 3백여 명에게 수감형을 내렸다고 한다. *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 [[에스파냐]]의 유명한 이단심문관. 15세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다. * 피에르 코숑 [[잔 다르크]]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 판결을 내린 걸로 유명한 보베의 [[주교]]다. 실제로는 재판할 자격이 없는데도 [[잉글랜드]] 왕실을 지지하는 주교였기 때문에 잔 다르크의 재판을 맡았고, 랭스를 점령해서 자신이 랭스 주교가 되지 못하게 만든 잔 다르크에게 개인적인 원한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잔 다르크가 이단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온갖 엉터리 수법으로 재판을 하여 화형 판결을 내린 주교라는 안좋은 쪽으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잔 다르크가 사형당하고 얼마 못 가서 급사했는데, 당대에도 성녀를 죽여 천벌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담으로 잔 다르크의 재판은 억지 재판이라는 것 이외에도 관련자들 중 끝이 좋았던 자들이 하나도 없는 걸로도 유명하다. 재판을 지시했던 호국경은 급사, 몇몇 사람은 아예 재판 도중에 의문사했으며 재판이 끝나고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죽거나 사후 장미전쟁 등으로 가문 전체가 풍비박산나기도 했다. 약간 과장 섞어서 재판에 협조한 자들 중 침대에 누워서 죽을 수 있었던 자들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는 잔 다르크의 성역화에도 영향을 크게 끼쳤다. 당장 당대의 영국인들조차 우리가 성녀를 죽였다면서 재판 참가자들을 손가락질했을 정도.] *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위에 언급한 이단심문소의 후신인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활동 면에서도 해방신학이나 교황 무류성 논란에 대해 전면에서 비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