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기수(법조인) (문단 편집) == 여담 == * 고대 총장으로 재직중이던 2009년 4월 2일, 당시 고대 신입생이었던 [[김연아]] 선수가 처음으로 고대를 방문했을 때, 김연아에게로 몰려온 취재기자들 앞에서 김연아 옆에 착 달라붙어 마치 수행비서라도 되는 양 포즈를 취해 구설수에 올랐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101158|관련 기사]] 이에 대해서는 대놓고 "총장으로서 체통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비난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http://sapientis.tistory.com/1|관련 글]] * 2009년 5월 6일, 이른바 ‘김연아 마케팅 신문광고 논란’이 일자, “김연아의 우승은 고대정신을 주입시킨 결과이며,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구설수에 올랐다. “내가 직접 김 선수와 통화를 하며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지도자는 민족정신과 개척정신, 승리에 대한 확신 등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대 정신을 팍팍 집어넣은 것”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인데,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김연아가 올해 고대에 입학해 고대생인 것은 맞지만 입학한 지 한달도 안되는 김연아를 고대가 낳았다는 것은 무리다. ‘낯뜨거운 광고’가 아니냐” “김연아는 고대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글로벌 인재였는데 이런 홍보를 하기 위해 김연아를 데려간 것이냐” 고 비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06/2009050601656.html|관련 기사]] * 교수 초년 시절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1987년 6월에는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서 이문영·이만우·윤용·김채수·김기영·[[배종대]]·[[김일수]]·송옥·김기목·[[김우창]]·정규복·김충열·[[조광(교수)|조광]] 교수와 함께 시국선언에 서명하고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당시 고려대학교 전체에서 시국선언에 서명한 교수가 겨우 18명 밖에 안 됐고, 전두환 정권기간 내내 교수가 시국선언 같은 것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권에 밉보여 해직될 위험이 대단히 컸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기수 교수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 아들 이병준 교수도 아버지와 같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출신(89학번)이며, 튀빙겐 대학교 법학박사 출신이며, 대한민국의 법학교수이다. 이병준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민법]]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총장 재임 시절, [[FM(자기소개)|FM]]을 굉장히 좋아했다 학생들 앞에서도 "FM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를 외치고 학생들의 FM 연호를 즐길 정도. 다만 학생들이 사용하는 FM 구호인 '민족고대, 정의법대'가 아닌 '세계고대, 민족법대'를 구호로 했다. 고연전 당시 '65'학번 이기수를 외치니 학생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사회과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양형위원회 위원장]][[분류:하동군 출신 인물]][[분류:동아고등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튀빙겐 대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재직]][[분류:1945년 출생]][[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민주운동가]][[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