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기석 (문단 편집) === [[신주영(프로게이머)|신주영]]과의 비교 === 신주영이 래더 토너먼트를 우승하고 세계 챔피언이 되고, 또 이기석이 KPGL을 우승하고 국내 최강자가 되자 둘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때만 해도 세계 챔피언 신주영과 한국 챔피언 이기석의 구도였다. 이후 이기석도 래더 토너먼트 우승자가 되면서 저런 인식은 사라졌지만, 둘 다 세계 챔피언이 되고도 누가 더 잘하냐는 논쟁은 있었고 배틀넷 방제로도 많이 쓰였다. 이기석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소한 그 인터뷰의 시점엔 이기석이 3전 1승 2패로 뒤쳐졌었다. 그 인터뷰에서 이기석의 말에 따르면 2패 후 1승을 하였는데, 그 1승에 대단히 기뻐했다는 말과 인터뷰의 흐름으로 봤을 때 당시엔 자신보다 형인 신주영의 실력을 더 위로 인정했던 듯하다. 하지만 신주영은 스타크래프트가 대중들에게까지 퍼지기 전인 99년 초에 입대를 하면서 경력이 끊겼고, 그 사이 이기석이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면서 프로게이머의 아이콘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신주영과 이기석의 경기 영상은 [[http://blog.naver.com/uhuh0909/50143281436|1999년 Starcarft Championship]]이 남아 있다.[* 이 영상은 녹화되어 VHS로 유통되기도 하였다.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볼 수 있었다.] 당시 방송 경기 화면 구성과 중계 방식은 [[바둑]]과 같은 전통적인 [[보드게임]] 중계에 가까운데, 방송 포맷 또한 백지나 다름없는 초창기인 [[1999년]]이었던 만큼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보드게임 중계를 주로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경부터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지금의 시끌벅적한 스타일로 변하게 된다. 이후 둘다 프로게이머로서 재기를 위해 [[KTF 매직엔스]]에 입단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