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국종 (문단 편집) == [[의사]]로서의 모습 == 그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내에 몇 안 되는 ''' [[외상외과]] 전문가'''이며, 능력뿐만 아니라 외과의로서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유튜브]]에서 관련 다큐 몇 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일례로, 언제 어디서 [[수술]]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수술복을 입고 다닌다. [[의사]] 가운 안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진이 매우 드물다.[*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에서 말하길, 근무복은커녕 수중에 먹고 죽을 돈조차 없었으므로 수술복을 근무복처럼 입었다고 한다. 현장으로의 잦은 출동 탓에 흙먼지를 뒤집어 쓰거나 땀, 핏물에 수술복이 젖는 일이 잦았다고 하나 수술복을 입고 있어야 그나마 쉽게 갈아입을 수 있어 감염방지에 도움이 되었다 한다. 원칙적으로 수술복은 수술실 안에서 입고 수술 후에는 세탁실로 보내는데, 수술복을 여러 벌 구비해놓고 하나의 수술을 마무리한 후에는 새 수술복으로 갈아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중증외상[* 교통사고, 추락, 총상, 폭행 등으로 치명적인 외상. 국내에서 중증외상 환자가 매년 10만여 명이 발생하지만, 중증외상 이송 및 진료 체계가 취약하여 완치 가능한 중증외상 환자의 사망률이 35%에 달한다. 이는 [[미국]], [[영국]] 등 기타 선진국의 중증외상 환자 예방 가능 사망률 10~15%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이라는 분야를 언론 등을 통하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의 20%(약 1,600억 원)를 2017년까지 사용해 전국에 16개의 중증 외상 센터를 건립하게 된다.]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국종 교수가 몸담고 있는 [[외상외과]]학은 여러모로 난이도 최고 수준의 [[의학]] 분야이기도 하다. 외상외과의 의사들은 외상으로 생기는 트라우마, 치료의 가능성 희박 등으로 3대 [[외과]][* [[외상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의사들이 이곳을 오기를 꺼린다. 얼핏 보면 응급의학과 혼동하기 쉽지만, 수많은 경증/중증 환자를 함께 돌보아야 하는 [[응급의학과]]에서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중증외상환자를 케어할 수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LXwWdzTBM|이국종 교수가 직접 설명하는 응급의학과 외상외과의 차이점 영상.]]] 특히 전문적인 외과 수술의 경우 응급실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력을 갖춘 베테랑이 필요하다. 따라서 집중치료와 수술 및 소생이 필요한 부분을 별도로 중증 외상외과학이라 부른다. 중증 외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각 핵심분야[* 중증외상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흉부외과]], [[영상의학과]], [[임상병리과]] 등.] 의료진은 항시 응급 대기 상태여야만 하며,[* 제자이자 동료인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외과]] 정경원 교수의 경우, [[부산]]에 있는 집에 1년에 4일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한다. 정 교수도 이 교수 못지않은 헌신과 신실함의 대명사이며, 이 교수가 '얘는 진짜다'라고 경탄한 사람이다. 독실한 신자로 매일밤 통성기도로 환자들의 안위를 빌고 자곤 했고, 가족이 있는데 아예 병원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국종 교수는 아주대 센터가 망해도 그가 돌아갈 곳이 있도록 부산대 외상센터의 향배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항시 계획되지 않은 응급수술[* [[수술]] 며칠 전부터 입원하여 많은 검사를 하고 철저하게 계획한 수술과 응급수술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중증외상 수술 전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흉부, 복부 등을) 열어봐야 안다."이니 말 다했다. 환자의 모든 외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데다 한시가 급하기 때문에 일단 개흉/개복한 다음 출혈을 잡고 망가진 장기를 꿰메거나 절제하는 것이 [[수술]]의 1차 목표.]을 하는데, 그 범위가 엄청나다. 팔다리/두부/흉부/복부에 걸쳐 수혈팩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쓰며 광범위하게 진행한다. 당연히 의료 처치 혹은 수술 중 사망률도 높고,[* 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할 경우, 가족의 죽음 앞에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의료진을 신뢰하지 않는 보호자들에 의하여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멱살을 잡히는 것은 예사요, "살리지도 못할 거면 왜 수술했냐", "수술 전에는 괜찮았는데 수술 후에 이상해졌다. 수술이 잘못된 게 아니냐?"라거나, 심지어는 "우리한테 돈 뜯으려고 수술하자고 한 것 아니냐?"라는 등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욕을 먹는 것은 기본이다. 고소 협박, 심한 경우는 죽여버린다는 둥 협박까지 당하기도 한다.] 죽기 직전에 병원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아, 환자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의료진의 노력은 엄청나다. [[레이디스 코드]]의 [[권리세]]는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치료 도중 사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중증외상 환자의 82% 가량이 사고가 난 후 1시간 이내인 골든 아워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https://news.v.daum.net/v/20160907101904770|#]] 국내 상황은 8시간 동안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할 판이다. 물론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며 개선 중이긴 하나 근시일 내에 변할 가능성이 없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인명구조가 최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민원이나 재산손해 등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소방서에서 출동 시 구조에 방해가 되는 차량이나 물건은 그대로 소방차로 들이받아 길을 열거나, 도끼로 까부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이렇게 막 부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응급상황시 현장요원에게 부여하는 힘이 막강하고, 관련 법이 잘 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헬기가 출동하면 사고지점 바로 옆에 내리거나, 심지어 바로 위에서 호버링하면서 응급요원을 '''레펠로''' 투입한 뒤 환자를 싣고 병원 주차장이나 옥상 헬리패드에 바로 내려 환자를 병원으로 보낸다. 한국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아주 난리가 난다. 야간에 도심지에 헬기가 내렸다간 당장 인근 주민들의 폭발적인 소음민원에 부딪힌다. 뉴스에서 시민들이 겁이 났느니 하는 방송이 나온 뒤 민관 양쪽에서 신나게 깨질 것이다. 물론 귀순사태 이후 바뀐 여론에 의해 이러한 상황의 인식이 달라져 위와는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수도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한다. 유사시 레펠로 투입할 만큼 전문적인 항공구조 훈련을 받은 응급구조 요원이나 장비도 민간병원에는 드물고[* 한국에서 레펠강하를 가장 많이하는 특전사, 특수부대도 국가에 돈이 없다고 열기구로 훨씬 낮은 고도에서 겨우 훈련한다. 민간분야에선 거의 없다시피 하다보니 무리하게 산지 등에 착륙하다 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 환자를 싣고 병원에 가려고 해도 근처 헬리패드에 내린 뒤 다시 차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처구니없게 거기서부터 병원까지 가는 와중에 교통체증 등으로 시간이 수십 분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아래에서 나오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어려움의 배경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단, 이렇게 차원이 다른 대응 속도 및 규모는 [[미국]]이 [[한국]]보다 선진 국가이기 때문에, 혹은 한국이 의료적으로 후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국이 총기사고와 살인범죄 발생이 잦은 미국보다 중증외상의 위험에서 비교적 먼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늦게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증외상을 끼칠 정도로 인체에 강력한 이슈가 적기 때문에 중증외상에 대한 인식이 늦게 일깨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더 가까이에 [[일본]]만 봐도 중증외상 위험이 큰 국가들이 아님에도 이에 대한 대처가 [[미국]]에 준할 만큼 잘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영국이나 일본보다 의료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님에도 중증외상 환자를 길바닥에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게 하는 건 분명한 문제이다. 결정적으로 범죄나 총상에 의해서만 중증 외상 환자가 생기는 게 아니다. 교통사고, 산업재해, 추락사고 모두 사지육신이 문자 그대로 짓이겨지는 전형적인 중증외상의 사례이고,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에 있어선 여전히 후진국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으로, 이국종 교수가 지적하고 호소했던 사례들이 쌓여가면서 공론화 된 덕에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나가기 시작했다.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가 지나갈 때면 차로를 다같이 열어주는 문화가 정착되고, 미국의 사례처럼 구급차와 소방차 등이 신속출동을 해야할 때 길을 비켜주지 않고 방해하는 악질 운전자에 대해서는 밀어버리게 하자는 지지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힘입어 법도 개정되었다. 구급 출동으로 통행을 요청했음에도 비켜주지 않는 차량에 대해서 과태료와 벌금 부과를 하는 처벌규정이 신설되었고, 강제집행으로 옆으로 끄집어내거나 밀어버릴 수 있고 이에 대한 소송 책임을 면책하도록 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도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그나마 도로교통에서 겪는 문제만큼은 이국종 교수의 오랜 호소에 사람들의 공감대가 이루어졌으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이런 문제가 없더라도 야간 [[닥터헬기]] 운항은 현실적인 운영 문제로 매우 힘들다. 민간 닥터헬기의 경우 인건비 문제로 조종사를 많이 고용해도 3~4명 이상을 고용하기 힘들다. 헬기 1대에 정, 부조종사가 탑승을 해야 하니 4명이 주야로 24시간을 대기하며 근무하려면 하루 12시간씩 365일을 근무해야 한다는 말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업무량을 견디다 못한 조종사들이 이직해버리면 그대로 시스템이 멈춰버린다. 설령 인원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과업무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운행 중에 사고라도 치면 차라리 헬기 안 띄운 게 나을 정도의 대형사건이 날 수 있다. 119나 해경 등 정부기관에서 야간에 인명구조를 나가는 것도 민간에 비해 비교적 인원이 더 있고, 누군가는 주야간으로 근무를 하는 힘든 환경을 감수하기 때문인 것이다. 권역중증외상센터 설립 취지가 바로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현실은 시궁창]]. 16년 9월 30일, [[전북대학교병원]]에서 발생한 중증외상소아환자 사망사건으로 권역중증외상센터 무용론에 정점을 찍었다. 권역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놓기만 하고 제대로 된 지원도 없고, 수가 인상도 없고, [[의사]]를 더 뽑을 환경을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강제시행을 한 꼴이다. 애초부터 센터가 있으면 뭐하나? 실질적인 환경 개선은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외상파트 전공을 꺼리는 이유는 희생정신의 부족이 아니라, 전공을 해도 전공을 살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증외상이란 것이 '''365일 24시간이 상시 대기 상태'''일 수밖에 없는 분야[*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내 10만 명 모든 [[의사]]를 통틀어 최일선[* 귀순 병사, 즉 진짜 최전방 환자까지도 상대할 정도로 이국종 교수는 야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에서 고군분투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인데, 이국종 교수 본인은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이 너무나 미흡하다는 점을 항상 비판하고 있다. 2017년 [[판문점 귀순 사건]]을 계기로 국민 여론도 많은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2018년 들어서는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운영하는 닥터 헬기의 담당의가 되었다. 헬기의 [[무전기]]가 고장났음에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행정당국의 태도에 분노해 무전기를 바닥에 패대기쳐 부수기도 했다.[[https://news.v.daum.net/v/20181018203000133|해당 기사]] 심지어 무전기 같은 기본적 장비 지원을 부탁하고 OK를 받은 게 무려 '''8년 전 일'''이라고. 이 시점까지 8년 전 약속했던 물건을 받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창궐한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국종에게 닥터헬기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부터 [[인요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인요한은 특별귀화 1호 한국인으로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인요한의 사비를 들여 만든 한국형 앰뷸런스가 현재 우리가 아는 소방 앰뷸런스의 모태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