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광수(소설가)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30778_03.jpg|width=100%]]}}} || >"40년 일본정부 밑에서 일본에 협력한 자, 아니한 자를 가리고 >협력한 자 중에서도 참으로 협력한 자, 할 수 없어서 한 자를 가린다고 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더 엄격하게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도 (일본 정부에 대한) 협력이다." >---- >《나의 고백》 中 '친일파의 변' [* 이광수가 말을 꺼내서 대중적으로 확산된 '친일 공범론'의 주된 논리이다. 당시 모두가 친일을 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없다는 주장. 당시 반민족 행위를 했던 모든 친일파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친일파들은 또한 '인재 중용론'도 주장했는데, 친일파의 국정 운영 경험을 활용해야 하니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 >《무정》 [[일제강점기]]의 [[문인]],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표작으로는 <[[무정(소설)|무정]]>과 <[[단종애사]]>, <[[흙(소설)|흙]]>, <[[마의태자(소설)|마의태자]]> 등이 있다. 한때는 [[2.8 독립 선언|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민족]] 계몽가로 활동했으나 이후 일본 [[제국]] 합리화 노선으로 전향하였다. 이에 대해서 그를 대표적인 타협적 민족주의자로 보며 급진적 독립 노선을 포기하고 외적으로는 [[일본]]에 협조하는 것과 함께 내적으로 자신을 계발하여 [[조선인]]의 권리를 얻어내어 선진화되자고 주장하였다는 시각에 따라 '매국형 친일파'는 아니며 [[친일파]] 항목에 서술된 '개화형 친일파'에 가깝게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광수는 그중에서도 '광신적 친일파'로 꼽히기에 그러한 시각은 설득력이 낮다. 단적으로 개화형 친일파가 [[매국노]] 소리를 안 들었던 것은 일본의 목적이 [[한일병합]]에 있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 정도이고 이후에는 이걸 받아들이냐 거부하느냐로 확연히 갈라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유길준]]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일본 유학도 다녀왔으며 [[을미개혁]] 등에 적극적인 찬성을 띄웠으나 한일병합 직후 받은 작위를 버리며 개발에 필요한 일제의 경제적인 도움을 포기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도 추종하면 모를까 정통 [[역사학]]계에서는 이광수가 활동했던 시기에 정말로 [[한반도]] 독립을 바라면서 자치론을 주장한 인물들이 존재하기는 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 [[문학]], 특히 현대 문학에[*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계몽적 민족 의식을 표현했으며 또한 현대 소설의 [[문체]] 확립, 실험적 인물 묘사, 현대적 주제 설정 등 문학의 선구자로써 자리매김하였다.] 있어서는 지대한 공을 세웠다 치더라도 [[친일]] 행적에 의해 그 대부분의 공이 과에 덮인 경우라 보아야 하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