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거이 (문단 편집) == 대중매체 == 여말선초가 사극으로 많이 만들어지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사극에 등장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용의 눈물]]과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뿐이다. 그마저도 태종 이방원에서는 본 무대였던 1차 왕자의 난까지는 언급도 안되다가 사병혁파때 처음 등장하고 조사의의 난 이후 퇴장하는 역할로 나왔다.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강재일]][*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추허조]] 역, 2006년 [[KBS]] 드라마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묵철 역.]이 연기했다. 159부작의 초장편 사극이고 그만큼 방대한 분량을 다루기에 나름 비중을 가지고 출연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상당히 입체적인 이미지의 [[권신]]으로 등장하는데 [[이방원(용의 눈물)|이방원]]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이를 축하하는 연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방원의 [[공신]]들 중 가장 많은 [[사병]]을 거느린 인물로 도성에서만 100여 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다들 도성 밖에 [[농장]]을 가지고 있고 사병들이 딸려 있으니 수는 늘어난다. 2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 혁파가 추진될 때 조영무가 도성 밖 사병들을 언급하고 이방원 측도 이를 경계해 도성 인근 [[병력]]을 모두 장악한 다음 "어명없이 [[병력]] 이동은 [[역모]]로 규정하겠다"는 명을 내려 철저히 대비하고 사병 혁파를 착수했다.] 야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서열]] 2위 왕자인 [[익안대군|이방의]]가 도성 집에서 거느리던 사병이 20여 명이라는걸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 가진 게 많은 만큼 [[1차 왕자의 난]] 이후 진행된 이방원의 사병 혁파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했고 [[2차 왕자의 난]] 때도 한동안 관망하다 뒤늦게 참여했다.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고 사병들이 해체될 때 다른 공신들처럼 바로 [[유배]]보내지 못하고 직접 그의 집을 찾아가 사병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세자]]가 된 이방원에게 반기를 들었다가는 [[역적]]이 되는지라 결국 포기하고 사병을 내놓은 후 지방으로 좌천된다. 이때 유배당한 다른 공신들은 곧 자시 부르겠다는 이방원의 서찰을 받고 감격하지만, 이거이만은 이때도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방원 주변 사람들이 우직한 무장이나 온건한 [[학자]] 타입이 대부분인데 의외로 [[하륜]]과 함께 나름의 비전을 갖고 [[국가]]를 꾸려가고자 하는 인물. 문제는 그가 바라는 신권주의는 재추가 6부 위에 군림하며 국정을 운영하던 [[고려]]식 재상 중심제였고 이는 [[정도전(용의 눈물)|정도전]]이든 이방원이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하륜 중심으로 [[조선]]의 관제가 만들어질 때 실권에서 소외되어 허울 좋은 [[재상]]직만 지키는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다 [[조사의의 난]]이 벌어지자 [[조영무(용의 눈물)|조영무]]를 찾아가 "난이 성공해서 [[정종(조선)|정종]]이 복위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논의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난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거이를 주시하던 태종은 [[이성계(용의 눈물)|이성계]]를 환궁시켜 걸리적 거릴 게 없어지자마자 이거이 제거에 착수한다. 태종은 목숨을 끊어버릴 생각이었으나 사가의 [[항렬]]상 사돈어른인지라 [[죄]]를 묻기 전에 이성계를 찾아가 허락을 받으려 했고 이것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이성계는 "나와 척지면서까지 널 많이 도와준 사람인데 죽여서 되겠냐"며 [[피]]를 보지 말라 충고하고 태종은 이를 받아들여 서인으로 만들어 [[귀양]]보낸다. [[조사의]]의 난이 실패하면서 모든걸 내려놓은 이거이는 조영무를 불러 대질 심문을 하는 태종에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후 담담히 귀양길에 오른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는지 훗날 조영무는 목숨을 거두기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이천우]]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애에 아무런 한이 없는데 민씨 형제와 이거이를 옹호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남긴다. * 2021년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드라마)|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차기환]][*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염흔 역, 2005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신립]] 역,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드라마)|정도전]]>에서는 [[조반]] 역 등 사극에서 얼굴을 많이 비추던 배우이다.]이 연기했다. 절제사 신분으로 세자였던 이방원이 시도했던 사병 혁파에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직을 잃고 [[경주시|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다. 조사의 난 시점에서 다시 조정에 복귀한 상태로 나오며, 태종과 함께 난을 진압하러 출정한다. 다만 출정 전 조영무에게 이방원에게 불만을 표하고 상왕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하는데 조사의의 난 진압 직후 조영무가 이 말을 그대로 이방원에게 일러바친다. 이후 조사의의 난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을 치하하는 분위기 좋은 자리에서 갑자기 이방원이 이거이의 충심을 문제 삼고 아들과 함께 유배를 떠나면서 퇴장한다. 실록에서처럼 조영무에게 항의하진 않지만, 이방원에게 질책당하는 도중 조영무를 슬쩍 쳐다보는 것으로 이거이도 사정을 파악한 것처럼 연출된다. 그리고 이방원은 사돈인 이거이를 유배 보내면서 장인인 민제에게 처가인 민씨 가문도 저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민씨 형제 다음가는 눈새이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조, 정종실록과 태종실록에서 등장한다. 태조 편에서는 [[이숙번]], 이저,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과 함께 [[정안군]]측 인물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무장한 걸로 첫 등장한다. 이후 반란에 성공해 이숙번,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 형제와 기세등등하게 나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후 태종실록에는 시범 케이스 편에서 등장하는데 사병 해체에 반발하다가 좌천돼서 부임지로 내려가는데 그 행차가 너무 거창해서 대간에게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1401년 이거이가 조영무에게 “이들을 모두 쳐 없애고 [[정종(조선)|상왕]]을 섬기는 게 좋지 않겠소? 상왕은 주상처럼 일 꾸미기를 좋아하지 않소.”라고 반역에 가까운 말을 했다가 조영무가 이방원에게 보고해 결국 유배가면서 등장 종료. [[분류:1348년 출생]][[분류:1412년 사망]][[분류:청주 이씨]][[분류:고려의 인물]][[분류:조선 정사공신(태조)]][[분류:조선 좌명공신]][[분류:조선의 관리]][[분류:영의정]][[분류:좌의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