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강백 (문단 편집) == 기타 ==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발작 증세로 사경을 헤매 그의 어머니가 전주 일대의 용하다는 의원, [[병원]]을 쫓아다녔는데[* 그의 유년기는 소아마비 백신이 보급되기는커녕 개발되기도 전이다. [[조너스 소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하고 미국에 막 배포되기 시작한 게 1955년이었다.], 끝내 차도가 없자 영험하다는 [[무당]]을 찾아 "사지 중 어딘가 쓰지 못하게 될 팔자"라는 참언을 들었다고 한다. 본인의 회고로는 당시 어머니의 대답이 "죽지는 않는다는 거네요?"였다고... 때문에 [[지체장애|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시인 [[김혜순]]과는 부부관계다. 부부가 양쪽에서 한국 문학계의 획을 그은 셈. 정년퇴임 이전까지는 부부가 함께 서울예대 교수직에 있었고, 심지어 서울예대는 문예창작과와 극작과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교수실 및 강의실을 가지고 있다. 강의 때나 사석에서 종종 "나 정도 되니까 그런 퀸카를 꼬신 거다."라고 팔불출인지 자랑인지 모를 농담을 곧잘 하기도. 중앙대 대학원 재직 시절, 유난히 질문 많고 영민한 학생이 있어 기억해두었는데, 나중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극작가 [[장성희]]였다고. 서울예술대학에서는 아예 같은 과 교수로 있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 및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현 [[국어 영역]]의 전신인 [[언어 영역]] 시절부터 [[희곡]]이 출제되면 자주 보는 이름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작가이다.[* 이미 [[평전]]이 발간될 정도로 한국현대희곡사에 큰 업적을 남긴 작가다. 작가 생전에 평전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문 일이다.] [[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1947년 출생]][[분류:1971년 데뷔]][[분류:보관문화훈장]][[분류:전주 이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