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친왕 (문단 편집) == 자녀와 후손 == [[위장]]이었든 진짜 모습이었든 탕아답게 그는 여러 [[첩|처첩]]을 두고 자식도 많이 낳았다. 현재 인정된 자녀는 총 '''12남 9녀'''. 다만 본처인 [[의친왕비|김덕수]]와의 사이에서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바람에, 의친왕의 후손들은 전부 [[서자]] 출신이다. 고종의 자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아들을 낳았으며, 가장 많은 자녀를 두었다. 의친왕이 많은 자손을 둔 것은, 그의 존재가 [[대한제국]] [[대한제국/황사|황실]]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고종(대한제국)|고종 황제]]의 후손들 전부 의친왕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의친왕의 이복형인 [[순종(대한제국)|순종황제]]는 후손이 아예 없었다. [[영친왕]]과 [[이방자]] 슬하의 두 아들 역시 큰아들 [[이진(1921)|이진]]은 갓난아기 때 죽고, 장성한 작은아들인 [[이구(1931)|회은황세손 이구]] 역시 후손 없이 일본에서 [[2005년]]에 사망했다. 이복여동생인 [[덕혜옹주]]의 외동딸 소 마사에(종 덕혜)도 후손 없이 의문사했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영선군]]의 후손들, [[고종(대한제국)|고종황제]]의 후손들은 모두 의친왕계이다. 의친왕의 자녀들 중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일제]]에게서 인정받은 사람은 [[모모야마 켄이치|이건]]과 [[이우]] 둘뿐이다. 나머지 자녀들은 실질적으로 의친왕의 자녀들로 인정되었지만, [[일본 제국|일제]]에게서 인정받지 못해 법적으로는 호적도 없는 [[사생아]]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전주 이씨|이씨]]로 만들기 위해 다른 종친들에게 양자, 양딸로 각각 입적시켰다.[[http://www.newsroh.com/plugin/mobile/board.php?bo_table=chds&wr_id=109|#]] 그 중 아들들은 남계 자손이 끊긴 [[대한제국/황실|황족]]의 대를 잇는 명목으로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입적했지만[* [[이우]]는 예외. 의친왕의 아들로 인정받았음에도 당숙 [[영선군|이준용]]이 [[사망]]하자 그의 뒤를 잇기 위해 [[양자(가족)|양자]]로 입적했다.], 대를 잇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던 딸들은 가장 가까운 촌수의 종형제인 [[이기용(1889)|이기용]]에게 일괄 입적했다. 다음은 출계하여 '''법적으로는 의친왕의 자녀가 아닌''' 황손들이다. ||<-4> '''{{{#3D414D,#fff 아들}}}''' || ||<:>{{{#white '''순서'''}}}||<:>{{{#white '''황실명'''}}}||<:>{{{#white '''생모'''}}}||<:>{{{#white '''출계'''}}}|| ||<:>2남||<:>[[이우]](아명 이용길)||<:>수인당 김흥인||<:>[[운현궁]] 종가의 [[영선군 이준용]]|| ||<:>3남||<:>이방(아명 이흥길, 호적명 이해진)||<:>수현당 정운석||<:>소현세자파의 이기손[[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cro21c&logNo=20146617736&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 ||<:>4남||<:>이창(아명 이창길, 호적명 이해직)||<:>조병숙||<:>[[은전군]] 종가의 [[이헌용]]|| ||<:>5남||<:>[[이수길|이주]](아명 이수길)[* 1917~1982. [[대한민국]] [[외교관]]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이한주]](1943~2011)를 거쳐 [[이덕]](1973~)을 통해 [[안평대군]] 종가가 이어진다.]||<:>수인당 김흥인||<:>[[인평대군]] 종가의 이인용|| ||<:>7남||<:>[[이해청|이광]](아명 이형길, 호적명 이해청)[* [[의친왕비]]가 작성한 황손 계보도에는 이해창으로 적혀있으나 [[사동궁]]에서 잘 쓰지도 않는 호적상 이름이라 헷갈려 오기한 것이라고 한다.]||<:>송은점||<:>[[계동궁]][* [[영조]]의 이복동생 [[연령군]] 이훤의 종가. [[흥선대원군]]의 큰형 [[흥녕군]]의 가계다.]의 [[이기용(1889)|이기용]]|| ||<-4> '''{{{#3D414D,#fff 딸}}}''' || ||<:>{{{#white '''순서'''}}}||<:>{{{#white '''황실명'''}}}||<:>{{{#white '''생모'''}}}||<:>{{{#white '''출계'''}}}|| ||<:>1녀||<:>이영(아명 이길순, 호적명 이해완)||<:>수덕당 이희춘||<:>[[계동궁]]의 [[이기용(1889)|이기용]]|| ||<:>2녀||<:>이진(아명 이길운, 호적명 [[이해원(1919)|이해원]][* 후술하겠지만 [[2006년]] [[대한제국]] 황족회에서 [[여황제]]로 옹립한(…) 그 분 맞다.])||<:>수덕당 이희춘||<:>계동궁의 이기용|| ||<:>3녀||<:>이찬(아명 이길련, 호적명 이해춘)||<:>수완당 김정완||<:>[[계동궁]]의 [[이기용(1889)|이기용]]|| ||<:>4녀||<:>이숙(아명 이길영, 호적명 이해숙)||<:>수길당 박영희||<:>[[계동궁]]의 [[이기용(1889)|이기용]]|| ||<:>--5녀--||<:>--이공(아명 이길상, 호적명 이해경)--||<:>--김금덕--||<:>--[[계동궁]]의 [[이기용(1889)|이기용]]--[* [[1954년]] [[의친왕비]] [[호적]]에 정식으로 입적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380788|관련기사.]] 단, 법적 이름은 [[이해경]]이 맞다.]|| 아래는 법적으로 확실히 의친왕의 자녀로 인정된 황손들이다. ||<-3> '''{{{#3D414D,#fff 아들}}}''' || ||<:>{{{#white '''순서'''}}}||<:>{{{#white '''황실명'''}}}||<:>{{{#white '''생모'''}}}|| ||<:>1남||<:>--[[모모야마 켄이치|이건]](아명 이용길)--||<:>--수관당 정씨--|| ||<:>6남||<:>[[이곤(1919)|이곤]](아명 이명길)[* [[대한민국]] [[공무원]] 및 [[정치인]]까지 두루 역임했기에, 의친왕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치 당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또한, 이곤의 아들인 이준 황손이 의친왕의 궁호였던 '''[[사동궁]]'''을 사손(嗣孫)으로서 현재까지 계승하고 있다.]||<:>수인당 김흥인|| ||<:>8남||<:>[[이현#s-3|이현]](아명 이경길)||<:>수경당 김창희|| ||<:>9남||<:>[[이해룡|이갑]](아명 이충길, 호적명 이해룡)||<:>함개봉|| ||<:>10남||<:>[[이석]](아명 이영길, 호적명 이해석)||<:>홍정순|| ||<:>11남||<:>이환(아명 이문길, 호적명 이해선)||<:>김혜수|| ||<:>12남||<:>이정(아명 이정길, 호적명 이해준)||<:>홍정순|| ||<-3> '''{{{#3D414D,#fff 딸}}}''' || ||<:>{{{#white '''순서'''}}}||<:>{{{#white '''황실명'''}}}||<:>{{{#white '''생모'''}}}|| ||<:>5녀||<:>[[이해경|이공]](아명 이길상, 호적명 이해경)||<:>김금덕[* 제 1,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두 번 다 낙선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5591657|#]] ]|| ||<:>6녀||<:>이장(아명, 호적명 이희자)||<:>김혜수|| ||<:>7녀||<:>이용(아명 이숙기, 호적명 이해란)||<:>홍정순|| ||<:>8녀||<:> [[이현#s-4|이현]](아명 이숙향, 호적명 이해련)||<:>홍정순|| ||<:>9녀||<:>이민(아명, 호적명 이창희)||<:>김혜수|| 의친왕의 장남 [[모모야마 켄이치|이건]]은 [[모모야마 켄이치]]라는 이름으로 [[1955년]]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했고, 그 후손들도 일절 [[대한제국/황실|황실]]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정말 완전한 [[일본인]]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의친왕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표에서 보듯이 2남부터 5남까지는 전부 다른 [[왕족]]들의 양자로 갔기 때문에 의친왕의 가계는 6남 [[이곤(1919)|이곤]][* 1919~1984. [[대한민국 국회|대한민국]] [[국회사무처]]에서 근무했었다. [[1984년]] [[이곤(1919)|이곤]]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 아들 이준([[1961년]]생)이 [[사동궁]]을 현재까지 잇고 있다.]이 이었고 현재도 [[이곤(1919)|이곤]]의 후손들이 의친왕의 제사를 받들고 있다. 사동궁의 현재 사손인 의친왕가 종손 [[이준(1961)|이준]]을 중심으로 의친왕기념사업회가 2022년에 설립되어 의친왕 기신제를 주관하고, 의친왕 유물전시와 학술회 등을 진행한다. [[2023년]] 9월 기준, 의친왕의 아들은 총 3명이 살아있다. 그 중 10남 [[이석]]만이 유일하게 [[대한민국|한국]][*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전주 한옥마을]]에 '승광재(承光齋)'라는 한옥 집에서 국가에서 약간의 문화재 전승/계승에 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산다.]에서 사는데, 이 때문인지 '마지막 황손'으로 잘못 알려졌다. 11남 이환[* 아명 이문길], 12남 이정[* 아명 이정길]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구(1931)|이구]]의 사후, [[이구(1931)|회은황세손]]의 [[양자(가족)|양자]]가 되어 황실의 후계자([[이원(1962)|황사손]])가 된 사람이 의친왕의 9남 [[이해룡|이갑]]의 아들인 [[이원(1962)]]이며 [[이해룡|이갑]]은 [[2014년]] [[12월 13일]] [[미국]] [[뉴욕 시|뉴욕]] 롱 아일랜드 자택에서 향년 77세를 일기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7304797|별세했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2남 [[이우]]의 아들인 [[이청]] 또한 생존해있다. [[이우]]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와 관련된 [[KBS|KBS1]] [[8월 15일|8.15]] [[광복절]] [[다큐]]에서 등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의친왕의 딸은 총 5명이 살아있는데 그 중 그나마 대중들에게 알려진 사람으로는 다섯째 딸 [[이해경]](황실명 이공)이 있다. 그리고 8녀 이해련(황실명 이현)의 딸은 탤런트 박승아로 KBS 2TV 청소년 드라마 〈스타트〉 등에 출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