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녀 (문단 편집) == 신분과 가정생활 == [[궁녀]]들과는 달리, 의녀들은 [[결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의녀들도 관비 신분이었으며, 의녀들은 보통 관비보다도 더 천시되었기 때문에,[* 조선에선 의료인이라는 직업이 오늘날과 같은 명예를 얻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는 일이 모두 비위생적이고 고된 [[3D#s-2|3D]] 업종이기 때문에 높은 신분인 자들은 기피했기 때문. 조선뿐 아니라 전근대 사회에서는 의료인의 신분은 낮은 편이었다. 그나마 [[의사]]들은 그럭저럭 대우가 나쁘지 않았지만, 서양에서도 [[간호사]]는 근대 시기만 해도 지위가 낮고 천대받는 직업이었으며, 의녀나 간호사 모두 남자들과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준으로는 추잡한 여자라는 오명까지 써야 했다.] 결혼생활이 쉽게 되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남성과의 접촉이 잦은 의녀들을 관기 못지않은 추잡한 여자(…)로 취급했고, 결혼하기 전에 정조를 더럽힌 경우도 많이 있었다. [[싸튀충|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결혼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으며,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도 구박받거나 버림받는 일이 많았다. 즉, 멀쩡한 양인 여성들이 스스로 의녀가 되는 드라마 [[허준(드라마)|<허준>]]의 내용은 완벽한 허구다. 하물며 양반가 여식이 의녀가 되는 드라마 [[마의(드라마)|마의]]는 그냥 '''판타지'''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의녀들에게 가장 괜찮은 결말은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의녀를 첩으로 삼을 때는 의녀 대신 여종을 1명 바쳐서 관비로 넣고, 대신 의녀는 양인 신분이 된다. 자식도 서출이기는 하지만 양인으로서 살 수 있게 된다.[* 이를 '대구속신'이라고 하는데, 주로 [[서얼]] 중에서도 얼자ㆍ얼녀들이 [[노비]] 취급을 받지 않게 되는 이유이다. 노비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재산을 모은 공노비의 경우는 이렇게 면천하기도 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혹은 월매가 이렇게 면천한 사례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 따르면 의녀는 창기와 한 데로 묶여 천출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성종(조선)|성종]]조 말부터 [[중종(조선)|중종]]조 초까진 의기(醫妓)라 불리며, 연회의 흥을 돋기 위한 기악이나 가무를 익혀야 했다. 국가적인 대사뿐만 아니라 권세가들의 사적인 잔치에도 동원되어야 했을 정도. 사실 내의원의 의원들과는 달리 의녀들은 당초 출신 신분이 관비였으니, 취급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중종 5년에 들면서 임금이 의녀의 [[기생]]살이를 법으로 엄격히 금한 이래 표면적으로나마 이러한 풍조는 줄게 되었으며, 비록 대접받을 만한 위치는 기대할 수 없으나 조선후기 [[속대전]]에서 의녀의 과목과 계급을 세분화하는 등 어느 정도 전문직으로써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