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오꾸옌 (문단 편집) == 평가 == >黎文休曰: 前吳王能以我越新集之兵, 破劉弘操百萬之衆, 拓土稱王, 使北人不敢復來者, 可謂以一怒而安其民, 善謀而善戰者也。雖以王自居, 未即帝位改元, 而我越之正統, 庶幾乎復續矣。 >레 반 흐우(Lê Văn Hưu, 黎文休, 여문휴)가 말하였다. "전응오왕은 우리 대월의 새로 모인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었으며, 유홍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고, 영토를 넓히며 칭왕하여 북인들로 하여금 다시 감히 쳐들어오지 않게 한 사람이었다. 한 번의 기세로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뛰어난 모략과 전략을 가졌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왕이 독립[自居]하면서 즉시 칭제하고 연호를 정하지는 않았으나, 우리 대월의 정통을 거의[庶幾], 아, 다시 이었도다!" > >史臣吳士連曰: 前吳之興, 非徒有戰勝之功, 其置百官, 制朝儀, 定服色, 帝王之規模可見矣。享國不永, 未見治效, 惜哉。 >사신 응오 시 리엔(Ngô Sĩ Liên, 吳士連, 오사련)이 말하였다. "전응오왕은 흥기하여 전쟁에 승리한 공이 있었을 뿐 아니라[非徒], 여러 관직을 두고, 조정의 의식을 제정하였으며, 복색을 규정하였으니, 제왕(帝王)의 제도[規模]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응오왕이 나라를 누린 시기가 길지 않아 통치의 효과를 볼 수 없었으니, 애석하도다!“ >---- >-《대월사기전서》<외기>(外紀) -오씨기-(吳氏紀) '전오왕(前吳王) 훙서' 기사에 딸린 사론. [[쩐 왕조]] 시대 레반흐우(Lê Văn Hưu, 黎文休, 여문휴)가 《대월사기》(大越史記)를 편찬하던 시기부터 응오꾸옌은 베트남의 1,000년 북속기를 단절시킨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응오꾸옌에 대한 레반흐우와 응오시리엔(Ngô Sĩ Liên, 吳士連, 오사련)의 견해는 조금 달랐는데, 레반흐우는 응오꾸옌이 칭제도 하지 않았고, 개원(改元) 또한 하지 않았기에 그의 독립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고, 완전한 독립 시기를 [[딘보린]]이 칭제한 968년으로 보았지만, 응오시리엔은 이때부터 베트남이 완전히 독립했다고 보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응오시리엔의 견해를 따라 응오꾸옌을 중세 베트남 최초의 독립군주로 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