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응달동 (문단 편집) == 역사 == 오래 전에는 응달동 윗쪽으로 흐르는 조만강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 때문에 응달동 대부분의 논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현재도 가뭄에도 조만강의 수량은 상당하다.] 모순적이게도 이 조만강의 안정적인 식수 공급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마을은 세 곳 밖에 없다. 응달마을, 용곡마을, 태정마을. 당연히 이 세 마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태정마을은 옥녀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써 가야 왕의 태반(胎)을 묻었다는 '태봉'[* 현재는 옥녀봉이라 부르는 산으로 추정.]이 있기에 1700년 언저리까지 태장리(胎葬里)라 하다가, 1800년대에 들어서 태정리(台亭里)로 고쳐졌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수남면 하의 태정리였던 적이 있으며, 면소[* 요즘 말로 면사무소]가 이 마을에 있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위의 용곡마을이 있었던 용계리와 합쳐졌다. 용곡마을은 [[부군면 통폐합]] 이전 용계리(舂溪里)였던 곳이었으며, 오래 전부터 이 세 마을 중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이다. 나름 이 세 마을 중 완만한 경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세대수로만 따지면 태정마을이 가장 규모가 크다. 응달마을은 바로 옆의 법정동인 [[수가동]]의 수가마을처럼 윗응달마을, 아랫응달마을로 나뉘어져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태정마을 둘레에 하천이 흐르기도 했었고, 15년 전만 해도 태정마을과 용곡마을 사이와 주위에 습지가 많아 밤마다 개구리 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는데 현재는 사라졌다. 그 습지 중 제일 큰 곳에는 건설 중단된 흉측스러운 철골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에도 하천길은 남아있기는 하다. 요즘에도 지하수가 나오는 밭과 집이 있다 [[카더라]]. 현재는 세 마을 전부 듬성듬성 신식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장유 율하 신도시와 부산 강서구와 가까운 거리에, 교통 또란 여러 방면으로 뚫려있으며 용곡마을 주변에 예타 면제된 부산신항 배후고속도로의 일원인 조만IC가 들어설 예정이다. 게다가 김해평야를 물류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김해시의 야욕에 땅값이 그린벨트로 묶인 농지가 100만원을 상회하며 주택지 또한 200만원을 상회한다. 농촌 마을 치고는 많이 비싼 편. 으레 시골마을이 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 마을의 어르신들은 연세 때문에 하나둘 돌아가셔서 '토박이'라 불릴 사람이 많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