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융건릉 (문단 편집) == [[융릉]](隆陵)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융릉.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625668.jpg|width=100%]]}}}|| || '''융릉''' || '''융릉의 인석''' || [[조선]]의 추존왕이자, 22대 왕 [[정조(조선)|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장조의황제[* 대한제국때 추존 황제 되었다.]]]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의 합장릉이다. 봉분에는 모양을 잘 잡기 위해서 인석(引石)을 봉분 중간중간에 박아 두었는데, 그 인석 끝부분에는 연꽃 봉오리를 화려하게 새겨 놓았다. 융릉의 특징으로는 일반적으로 왕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봉분은 일직선으로 배치되기 마련인데, 융릉은 정자각과 봉분의 축이 약간 틀어져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지금 봉분 자리가 좀더 명당이라서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건릉과 같이 정자각 앞쪽을 굉장히 넓게 조성하였는데, 이는 1900년 이후 [[사도세자]]와 [[정조(조선)|정조]]를 황제로 추숭하고 융릉과 건릉을 황제의 릉으로 조성하면서 그 격식에 맞게 꾸민 거라고 한다. 비각에는 1개가 아니라 2개의 표석이 세워져있는데, 하나는 융릉이 능이 아니라 현륭원이었을 때의 표석이고, 하나는 융릉으로 격상된 후의 표석이다. 현륭원의 비석에는 "조선국 사도장헌세자 현륭원(朝鮮國 思悼莊獻世子 顯隆園)"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융릉 비석에는 "대한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大韓 莊祖懿皇帝 隆陵 獻敬懿皇后 附左)"라고 새겨져 있으며, 제작년도는 광무4년(1900년을 의미)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전쟁]] 막바지이던 [[1953년]] 초에 미군 장교가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https://twitter.com/POI18041/status/128698456232984576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