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휴 (문단 편집) == 개요 == >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인가?"''' > - [[사약]]을 받고 죽으면서 남긴 [[유언]] [[조선]] 후기 [[문신]], [[성리학]]자, 유학자로 원시 유학에도 정통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字)는 두괴(斗魁),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 하헌(夏軒), 야보(冶父)이다. [[송시열]]에 의해 일방적으로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당하는 인물로 그려졌으나 실제적인 갈등은 [[예송논쟁]] 때부터다. [[갑인예송]]으로 집권하였으나 5년 뒤인 [[경신환국]] 때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청남의 중진이자 논객으로, 서인에 대해 강경파로 꼽히던 인물이다. 또한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을 펼친 인물로 가끔은 같은 남인들이 이건 아니지 않냐며 반대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사후 1689년 [[기사환국]]으로 복권되고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그뒤 1694년의 갑술 옥사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추탈. [[정조(조선)|정조]] 때 다시 복권되었지만 1801년 정조 사후 추탈당했다가 1908년 [[이완용]]에 의해 최종 복권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