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정환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장점도, 단점도 고전적 10번의 전형이라 할 만한 선수였다. 엄청난 시야와 패스 속도+정확도를 자랑하면서 화려하고 창의적인 스루패스를 쫙쫙 뿌려 주었다. 볼간수도 잘해서 빠른 드리블로 제끼기보다는 정확한 드리블로 지키는 드리블도 수준급이었다. 소위 말하는 테크니션이었으며 또한 셋피스에도 뛰어나서 프리킥으로도 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위의 하이라이트에서 볼 수 있듯 중거리 슛에도 능한 킥에 관해서는 만능, 마스터였다. 그러나 느린 발에 몸싸움이 안되는 약한 피지컬과 172cm의 단신으로 제공권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적은 활동량과 빈약한 수비력[*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애초에 수비가담 자체를 잘 하지 않았다. 당대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선수들은 대다수가 이러했고, 윤정환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이라는 양날의 검과 같은 선수였다. [[김기동(축구)|김기동]](1998년부터 을용타 이을용 선수가)이 어마어마한 활동량으로 뒷공간 다 커버해주지 않으면 부천은 공수 불균형으로 알아서 무너졌다. [[J리그]]에서는 잠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긴 했지만 전형적인 공격몰빵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그래서 윤정환을 중심으로 팀을 짤 수 있는 클럽팀에서는 몰라도, 당시 강한 피지컬과 빠른 발을 중심으로 하던 한국 국대에서 윤정환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현역 시절 "체력이 약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한국축구계가 스테미너와 힘, 몸빵 등을 모두 '체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졸지에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 취급을 받았는데 윤정환은 몸싸움이 약하고 활동량이 적은 선수지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활동량이 적은 덕분에 체력온존형이라 풀타임을 뛰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당시 한국 축구계는 닥치고 피지컬이었던 시절이라, 윤정환같은 소위 테크니션이라는 선수들이 종종 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반쪽짜리 선수 취급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윤정환이고 이전에는 [[최문식]], 이후에는 [[고종수]], 심지어 [[안정환]]까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축구계는 체력에서 스테미너와 힘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한일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야 비로소 구분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선수다. [[PC통신]]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엔 윤정환 기용 문제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과 유공 코끼리에서 보여준 화려한 패스 플레이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이 윤정환 위주로 대표팀을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비쇼베츠호(올림픽대표)에서 함께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영혼의 단짝 [[최용수]]와 상반되게 [[차범근]]호(국가대표)에서 중용되지 못했다. 이는 당시 전술 자체가 중원은 원톱일땐 김도근 - 유상철, 투톱일땐 김도근 없이 유상철 혼자 중앙 전체를 커버하다시피하고 양사이드에 윙을 4명(좌 고종수-하석주, 우 이상윤-서정원) 세워놓고 김도훈, 최용수 등 아시아 탑클래스였던 타겟맨 머리에 무한 크로스 올리던 전술이라 유상철 자리에 윤정환을 넣는다는 것은 중원을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이 투박하지만 실리주의였던 독일식 축구를 배웠던 데다, 이미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였던 '''홍명보의 존재''' 때문에[* 포지션은 다르지만 2010년대의 기성용과 1990년대의 홍명보의 공통점은 이 둘을 빼면 '''후방에서 볼이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월드컵 본선에서는 선수비 후역습 전술 밖에 달리 도리가 없고, 필드 전체의 압박이 보편화되지 않은 1990년대에는 다소 기술적이지 않을지언정 속공 상황에서 열린 공간으로 패스하는 것쯤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패스 성공률을 떠나) 큰 무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전의 후방에서 중원으로, 혹은 후방에서 다이렉트하게 전방으로 볼이 넘어가는 단계로, 적재적소의 날카로운 전진패스와 전방으로 단번에 넘기는 정확한 롱패스는 기용에서 다소 제약이 따르더라도 홍명보가 네 차례나 월드컵 본선에서 모두 주전으로 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홍명보를 중용하기 위해 주전으로 좌우와 윗선에 피지컬 좋고 투지있게 대인 방어에 임하는 [[최진철]], [[김태영]], [[김남일]], [[유상철]]을 배치했는데, 이 상황에서 윤정환까지 쓴다면 전술적 제약이 너무나 커진다.] K리그에서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메이커라도 홍명보와의 공존은 불가능했고, 홍명보의 방패 역할을 할 피지컬 좋고 터프한 선수를 중용하면 중용했지 [[신태용]], 윤정환 같은 선수는 설 자리가 애초에 없었다. 이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서도 확실한 주력 멤버로는 도약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허정무는 3-5-2 포메이션에서 윤정환을 사용하기 위해 유상철-박지성의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특히 최용수와 다시 만나 주전급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노렸던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당시는 아시안 게임에 나이 제한이 없어서 국대 A급 선수들 몇명을 포함해서 선수단을 꾸렸다.] 8강전에서 태국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면서, 더욱 "윤정환은 국대와는 안 맞는다"는 인식이 굳어진 면도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소속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뛰던 윤정환의 자리가 [[거스 히딩크]] 감독의 3-4-3 포메이션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나마 윤정환의 존재감을 알렸던 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한일월드컵]] 직전에 열렸던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안정환]]과의 콤비플레이로 (일명 투정환 전술) 추가 골을 넣었던 그 때 딱 한 번이었다. 압박전술에 걸맞는 강인한 피지컬, 많은 활동량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고, 특히 포지션 교체에 능한 올라운더를 원했던 [[히딩크]] 감독에겐 지극히 계륵같은 존재였다. 결국 [[김병지]], [[최은성]], [[최성용]], [[현영민]]과 함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한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윤정환 본인은 히딩크에 대해 전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아니, 월드컵 때 1경기도 뛰지 못했을 땐 섭섭한 감정이 있었지만, 이후 감독이 되어보니 피지컬을 중시하던 히딩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수 지도 등에 관한 부분을 모두 히딩크가 지휘하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지도자로서 현재는 매우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현역 시절에는 볼 예쁘게 차는 테크니션이었으나, 지도자로서 윤정환은 체력훈련을 입에서 단내나게 시키는 걸로 일본에서 유명했다.] 결국 이름값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4, 1998 월드컵엔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정리를 하자면, '''대한민국이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한 명이지만, 시대를 잘못 탄 불운의 아이콘'''이었던 선수였다. 10년 정도 일찍 태어나서, 예컨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종종 롤모델로 거론되던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콜롬비아]]의 [[카를로스 발데라마]]처럼 활용되어 선수 본인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양쪽에 윈윈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다만 발데라마도 한 시대 뒤떨어졌다는 평을 받았던데다 1990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유럽, 남미 선수들과 맞먹는 피지컬을 자랑하던 [[최순호]]이고 바로 이전인 1986 월드컵 때는 몸싸움을 잘하고 체력과 기동력이 좋던 [[박창선]]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때도 힘들었을 수 있다.] 윤정환으로 시작된 테크니션의 잔혹사는 [[이관우]] 등으로 이어졌고, 이후 [[기성용]]이란 테크니션이 대표팀에 자리를 잡아서야 종결되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기성용은 후방에서의 조율과 롱패스가 장점이라는 면에서 홍명보의 후계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 역시 소화할 수 있지만, 대표팀에서나 소속팀에서나 3선의 [[중앙 미드필더]] 내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시간이 훨씬 더 많고 선수 본인의 롤 모델도 중앙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이다. 진짜 테크니션이 대표팀에 중용되기 시작한 때는 오프더볼과 활동량까지 겸비한 [[황인범]]까지 가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