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선도 (문단 편집) === 고산 윤선도 묘소 === 고산 윤선도의 묘소는 풍수지리를 하는 이들이리면 한 번쯤은 방문했을 만한 명당자리로 정평이 났다. 윤선도가 지은 금쇄동기에 보면 그가 자신의 묫자리를 발견한 기록을 남겼는데 "국고대(臺)아래 서북쪽에 깊은 계곡이 있으니 바로 옥녀동(玉女洞)이다. 내가 지난해 여름에 이곳을 얻었는데 기이한 형상이 있다."라고 하였다. 옥녀는 풍수지리 형국론에 나오는 용어로 "옥녀(玉女)는 몸과 마음이 옥처럼 깨끗한 여인으로서 도교에도 자주 등장하여 옥황상제와도 관련이 깊고 절세의 미인인 동시에 풍요와 다산을 나타내는 표상이기도 하다. 이런 형국이 있는 양택이나 음택에서는 만인이 부러워하는 인물이나 재자가인(才子佳人)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윤선도는 자신이 얻은 묘소자리의 형국이 옥녀형이라 하였는데, 과연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 현손자인 낙서 윤덕희, 내손자인 청고 윤용까지 3대가 유명한 화가인 것을 보면 이 옥녀형 묘소자리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된다. 금쇄동기를 지은 시기가 55세 되던 1641(신사)년 겨울에 지었으니, 이곳을 발견한 때는 전년 여름인 54세 되던 1640(경진)년 여름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