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선도 (문단 편집) === 부용동 원림 === 병자호란때 근위병을 조직하여 강화도로 가던중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는 치욕이 있자 이에 충분을 느껴 더이상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자 제주도로 가던중 보길도에 들려 부용동을 발견하고 마지막 삶터로 작정한 곳이다. 그는 부용동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 "이 지역은 비록 해도(海島)라고 말은 하지만, 천석이 절승(絶勝)하여 참으로 세상 밖의 선계(仙界)라서, 나의 삶을 마치도록 소요할 수가 있으니, 〈운곡기(雲谷記)〉에서 '산에서 밭 갈고 물에서 낚시하며, 성품을 기르고 서적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고 질그릇을 두드리면서, 선왕의 풍화를 노래하면, 즐겁게 생활하며 죽음을 잊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경지를 또 거의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집안일을 정리하고 이 산속에 숨어 살 계책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언덕을 거닐고 골짜기를 찾아가서 놀다가 쉬다가 하고 멀리 바라보기도 하며,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대나무에 기대기도 하며, 물고기를 구경하고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회포를 잊곤 하나니, 옛날에 산속과 바다에 들어간 사람들이 꼭 무심(無心)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들도 대개 때를 만난 것이 좋지 못하여 포부(抱負)를 펴지 못한 채 당시 세상을 상탄(傷歎)하면서 불쾌한 기색과 우울한 회포가 없지 않았으므로 산수(山水)를 즐기며 세상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 보길도 부용동의 조경에 대한 내용은 그의 5대 손인 윤위(1725~1756)가 그의 사후 78년경에 보길도를 답사한 후 작성한 [[보길도지]](甫吉島識)에 실려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