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묵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익주에서는 대부분 금문으로 된 경학을 중시하고 장구의 정확한 독음은 중시하지 않았다. 윤묵은 그러한 학문의 협소함에 실망해 멀리 형주로 유학하여 [[사마휘]], [[송충]], [[이선(삼국지)|이선]] 등과 함께 고문으로 된 경학을 학습했다. 여러 경서와 사서에 모두 통달해 《[[춘추좌씨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유흠의 조례, 정중, [[가규(후한)|가규]] 부자, 진원, [[복건(후한)|복건]]의 주석과 해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암송해 두번 다시 책을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214년에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주목을 겸임하게 됐을 때 윤묵을 불러 권학종사로 삼았으며, 220년 [[조비]]가 [[헌제]]의 황제 자리를 뺏자 유비에게 황제 작위에 오르기를 권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유비가 황제로 즉위한 후 [[유선(삼국지)|유선]]을 태자로 삼고 윤묵을 태자복야로 임명해 《춘추좌씨전》을 유선에게 가르치게 한다. 223년에 유선이 제위를 잇자 간의대부가 되며, [[제갈량]]이 한중에 있을 때 군좨주가 되어 그를 따랐으나 제갈량이 죽자 성도로 돌아와 태중태부가 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아들 윤종이 그의 학문을 계승하여 박사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