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육수부 (문단 편집) === 나라와 같이 죽다 === 하지만 이미 [[원나라]]는 상대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당대 세계 최강의 몽골군한테 수도까지 뺏겨서 상태가 사실상 망한거나 다름이 없던 남송이 [[버틸 수가 없다|버틸 수 없는]] 상황. 1279년 2월, 형세가 불리하다고 느낀 [[장세걸]]은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거록전투|섬에 있던 황궁과 거처를 모두 태우고]]''' 모든 병력을 배 위에 올렸다. 그리고 [[연환계|배들을]] [[적벽대전|모조리]] [[방통|묶었다]]. 물론 배에다가 진흙을 발라서 불이 쉽게 안 붙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 상황에서 육수부는 여전히 어린 황제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이 교육시키고 있었다. 소제도 육수부도 황제와 그의 스승이라 하여 특별 대우는 받지 않았고 배 위에서 신하와 병사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거나 온갖 고생을 하였다. 1279년 3월, 결국 남송은 현재의 [[홍콩]] 또는 [[마카오]] 인근인 애산까지 밀려났고, 마침내 [[원나라]]가 마지막 공격을 개시했다. 송의 잔여 병력들과 장군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도 육수부는 어린 황제에게 경서를 강독하고 있었으나, 원나라 병력들이 아주 가까이까지 오자 어린 황제를 껴안고 >'''국사가 지금 허무하게 패했으니 폐하께서도 또한 순국하심이 옳습니다. [[공종(송)|덕우 황제]]의 전철을 되풀이 하시면 안됩니다. 덕우 황제께서 원나라의 [[베이징|대도]]에서 모욕당하시는 것도 견딜 수 없사온데 폐하께서도 그런 능욕을 당하게 할 순 없사옵니다.''' 하고 말을 하였고 소제는 >'''다시는 왕후장상의 씨앗으로 태어나지 않겠다!''' 하는 말을 남기고 남중국해 바다에 같이 투신하여 죽었다.[* 독일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소설가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때 송 왕조의 옥새도 함께 가지고 뛰어내렸다는데 이 옥새가 [[전국옥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죽음을 끝으로 [[남송]]도 같이 멸망했다. 이것이 바로 남송의 최후를 알린 전투인 [[애산 전투]]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광동성 바닷가나 홍콩, 마카오 일대 여기저기에 송황대(宋皇臺)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홍콩]] [[구룡반도]]에는 송웡토이(Song Wong Toi) 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게 그대로 [[튄마선 1단계]] [[송웡토이역]]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