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형 (문단 편집) ==== 종류 ==== 정배(定配)·부처(付處)·안치(安置)·정속(定屬)·충군(充軍)·천사(遷徙)·사변(徙邊)·병예(屛裔)·투비(投畀) 등의 표현이 있다. 종류도 종류지만 유배지가 매우 중요하다. 부처와 안치의 경우 본향(고향)이나 '''자원처'''도 가능하다. 장형을 속전으로 면하고 고향이나 자원처로 부처를 간다면 그냥 벌금 좀 내고 쉬다 오라는걸 에둘러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절도(絶島)에 위리안치된다면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꿈도 희망도 없다]]. * 부처: 중도부처(中途付處)의 약자. 유배 가던 길(중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정해진 유배지까지 가는 것과 중도에 머무르는 것이 무슨 차이냐 할 수 있는데, 부처는 사실상 유배지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 된다. *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라는 표현[[http://sillok.history.go.kr/id/kka_11411016_012|#]]이 있는데, 외방은 '서울 밖'을 뜻한다. 즉 교외추방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 안치: 멀리까지 무조건 가야 한다는 점에서 좀더 무거운 처벌. 반드시 혼자 가야하는 점도 달랐는데, 일반적인 귀양의 경우 가족이나 제자를 데려가는 것을 묵인해 주었으나 안치는 그러지 않았다. * 위리안치(圍籬安置): '가택연금'에 해당한다. 귀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귀양은 정해진 지역 내에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주막 정도는 다녀올 수 있었고 감시도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하지만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고, 녹각성[* 鹿角城. 짧은 나무를 비스듬하게 박거나 십자 형태로 울타리로 조성한 일종의 목책. 녹각, 녹각목, 녹각책으로도 불린다.]까지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지했다. 식사도 10일에 한번 양식을 보내주는 식으로 통제했다. 현대로 따지면 귀양이 전자발찌를 채우고 그 동네 정도는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 것이라면, 위리안치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담장에 철조망까지 쳐서 가둬두는 격이다. 가극(加棘)안치, 천극(栫棘)안치라 불리기도 한다. * 전가사변(全家徙邊): 죄인의 일가 모두를 북쪽 변방으로 보내는 형벌. * 정속: 관비로 예속되는 것. * 충군: 군역을 지게 하는 것. 보통 수군이나 국경 쪽에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 병예: 집 주위에 담을 쌓고 출입을 금지했다. 위리안치의 마이너판. * 투비: 왕명으로 정해진 지역으로 귀양보내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