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형 (문단 편집) ==== [[러시아]] ==== 드넓은 나라인만큼 [[시베리아]]로도 유배형을 보냈다. 사실 [[러시아 제국]] 시대까지는 대부분의 유형은 그냥 특정 지역에서 떠나지 못하는 채로 경찰을 보호관찰을 받는 것이었고, 비교적 느슨한 형태여서 몰래 탈출해 돌아올 수도 있었다.[* 준비성 좀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유형 선고를 받고 출발할 때부터 탈출용 자금과 가짜 서류를 숨겨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냥 눈치 좀 보다가 슬쩍 기차역에서 가짜 서류를 제출한 뒤 기차를 타고 탈출하거나 썰매 등을 이용해 튀는 식으로 탈출은 빈번하다 못해 당연한 정도였다.] 이게 힘들고 혹독해진 건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시대 이후.[* 스탈린 본인도 제국 시대에 시베리아로 유배형을 받은 적이 있으니 아이러니한 케이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에 보면 이 점을 들먹이며 감옥 생활이나 시베리아 유형 생활이나 여러 면을 통틀어 봐도 차라리 박해받던 제정 러시아 시절이 나았다며 증언하는 고참 볼셰비키 당원이 나온다. 그 또한 대숙청 시기 애꿎게 휘말려 루뱐카에 수감된 신세였고 이후 굴라크에 끌려가게 된다.] 시베리아에 수많은 [[굴라그]]가 운영되었다. 안 그래도 혹한에 격오지로 유명한 시베리아 한복판이었는데다가 감시가 여간 철저한 것이 아니었기에 시베리아 원주민 출신조차 탈출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위에 한국의 유배 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배를 간 인사들 때문에 지역의 교육과 문화가 발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러시아의 이 유배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이 유배로 보낸 사람들 때문에 시베리아 개발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로마노프 왕조]] 말기의 경우 [[데카브리스트의 난]]처럼 차르 전제 정치에 저항하다가 유배를 온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시베리아에 정착하면서 단순한 경제, 산업 개발 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도 분명히 발전이 이뤄졌다. 대표적인 예가 [[이르쿠츠크]]다. 소련이 그 광활한 면적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지역 방언 차이가 크지 않은 것 또한 이런 역사적 사정에 일부 기반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제정 러시아 시기에나 통용되던 이야기. [[알래스카 조약]]을 체결하기 전, [[알래스카]]가 아직 러시아 영토이던 시절에는 저기 [[추코트카]] [[웰렌]]까지 유배를 보냈었다. [[알래스카]]가 [[미국]]에게 팔린 이후에는 그 경로를 타고 미국으로 도주할 우려 때문에 [[웰렌]]으로 유배보내진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