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형 (문단 편집) ==== [[중국]] ==== 중국 역시 유형을 두었다. [[후한]] 시대에는 낙양을 기준으로 멀면 멀수록 유형의 강도가 강하다고 평가되어 일남(日南)[*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 지역.]으로 유배되는 것이 유형 중에서는 최고로 무거운 형벌이었다. 낙양에서 13,400리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당시의 일남은 고온다습에 기후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전염병까지 창궐하는 지역이었다. [[하이난 섬|해남도]] 역시 최고의 유배지였다. 일남과 해남도가 최고의 유배지였으며 그 다음 랭크에 있는 유배지가 회계와 [[돈황]]이다. 회계는 [[손권]]이 [[반평]]을 짱박아둔 곳으로 유명하며 돈황은 [[이문후]], [[북궁백옥]] 등이 일진 짓을 하던 곳이다. [[청나라|청]]대에는 죄인의 유배처가 영고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고탑은 비록 만주족의 발상지였으나, 반대로 만주족이 중원에서 쫓겨났을 때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봉금된 곳이기도 했다. 기후도 상당히 추운데다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미개발지역이라 열악해서, 청대의 죄인들은 영고탑으로 유배를 갔다. 실제로 [[공손찬]]이 본인은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상급자의 잘못에 같이 연좌되어 일남으로 유배형을 당했는데 '''그 당시 풍습에 따라 장례식을 먼저 치른 뒤 일남으로 출발'''했다. 일남 정도의 유배지로 유배를 당하는 것은 사형집행을 당하는 것과 같은 가치를 지닌 형벌이라서 이런 곳으로 유배를 당하면 장례식 먼저 치르고 유배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공손찬은 유배지로 가고 있던 도중 죄가 사면되어 다시 요동으로 복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