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일한 (문단 편집) == 여담 == * '회사 이름인 [[유한양행]]의 양행이 올바른 행동이란 뜻이다'라는 설이 있는데, 바른 행동은 양행(량행, 良行)이고, 유한양행의 양행은 양행(洋行)으로 '외국과의 무역 거래를 중심으로하는 기업'이라는 뜻의 한자어로, 같은 단어가 아니다. * 그의 생애와 행보를 보면 의외의 일이긴 하나 작곡가 [[안익태]]와 친분이 있었다고 하며,[* [[유한공고]]의 교가는 [[안익태]]가 작곡했다.] [[윤치호]]의 아들과는 대학 동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유일한이 안익태와 윤치호에게서 일정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는 추측이 가능해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유일한의 생애를 본다면,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제한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들이 친일파로 돌아서자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 소설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펄 벅]]과 친분이 있었다. 그녀의 작품에 '김일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유일한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또 1964년 한국 [[고아]]와 혼혈아들의 입양을 주선하던 한국펄벅재단이 건립되었는데,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동에 위치해 있다. 펄벅여사기념관이라고도 칭한다. 그 터는 이전 유한양행의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로, 생전 두 사람의 친분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와 비슷하게 동생 [[유특한]]은 유명 건축가 [[김중업]]과의 인연이 두터운 편으로 후에 김중업이 설계한 안양공장 터는 [[김중업박물관]]이 세워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가 안양의 어원이 되는 안양사가 있던 자리로 확인된 덕에 형에 비해서는 개인 자체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형을 비롯한 혈연과 인맥이 국내외적으로 월등하다라는 평을 내릴 수 있다. * [[파일:kr-800px-유일한박사상.jpg|width=500]] [[경기도]] [[부천시]] 중앙공원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있으며, 부천시에서 [[경인로]] [[유한대학교]] 일대 구간에 '유일한로'라는 별칭을 부여하기도 했으며, 캠퍼스 내에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도 있다. * 1982년 KBS2 드라마 <현대입지전> '고독한 횃불' 편은 유일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인데, 당시 유일한 역은 배우 [[이낙훈]], 부인 유호미리 역은 김민자가 각각 맡았다. * 유일한의 사저는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해 있으며 1936년 건립된 이래 1956년에 [[성공회대학교]] 측에서 매입해 신부 굿윈을 기리는 의미로 구두인관(goodwin house)으로 명명하여 연구소로 사용하고 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igital9ro&logNo=222001143530|#]][[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rchur&logNo=220718229958|#]] 뒷날에는 유신 치하에서 집회 장소로 쓰이는 등 민주화 운동과도 인연이 있는 건물이 되었다. * 키는 약 170cm 내외로 추정된다.[* [[파일:306476_161094_572.jpg|width=80%]] [br]1968년 동탑산업훈장 수훈 당시 박정희(164cm)와의 사진.] * 박정희에 대한 유일한의 시각은 쿠데타 군인으로 나빴다가 그래도 대통령이 된 이후엔 뭔가 좀 해보려나 하고 기대해보다가 다시 독재자로 치닫자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상술한 연만희 전 회장이 생전의 그와 짧게 나누었다는 담소를 통해 이를 엿볼 수 있다. "1963년쯤일 겁니다. 유일한 회장님과 함께 일본 출장을 떠난 적이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 제게 묻더군요. '님자[* [[임자]]의 옛 표기. 임자는 그 시절 어른들이 자주 쓰던 [[2인칭]] [[대명사]]였다. 박정희도 주변 사람들을 임자라고 부르는 말버릇이 있었다.],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해.', '그래도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 같습니다.', '맞아, 나도 처음엔 박정희를 테러단 두목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뭔가 하려는 것 같애.'" 그래서인지 박정희의 유럽 순방 때에는 대방동의 본사 옥상에서 태극기를 흔들어주기도 했다고. 허나 상기했듯 1968년 정치자금 거절했다고 세무조사를 쎄게 맞기도 했고 박정희도 권력에 미련을 못버리고 독재자가 될 기미가 보이자 "역시 배운 게 없어서 욕심이 많아"라고 디스했다고 한다.[[https://brunch.co.kr/@hanki2/5|#]] 사실 이런 정치인에 대한 평가 변화는 출렁이는 지지율만 봐도 알 수 있듯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하여튼 이 말은 예언 아닌 예언이 되어서, 죽은 그 해 여름에 [[광주대단지사건]]과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다. * [[Sheaffer]] 만년필을 사용하였다. 사용한 만년필이 고장나, 평생 수리 된다고 하는 미국 본사에 수리를 맡겼더니 미국 본사에서 '이렇게나 오래 썼냐면서' 놀라면서 새 만년필을 보내준 적이 있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땅콩 항공 사태]]'때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 사례로 유일한의 아들 유일선을 찾아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애초에 유한양행에서도 창업주가 '자립해서 살아가라'라는 유언을 남긴 뒤 아들이 회사 경영에 개입한 사례가 없어서 연락처도 잘 모른다고.[*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유한재단 행사에 종종 참여하는데 연락처를 모를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창업주 가족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 유한양행 공식 유튜브 채널에 유일한 박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https://youtube.com/@user-rh5hx8hw3g|유한양행 유튜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