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응룡 (문단 편집) ===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다 === 남해에서 도적들이 일어나자, 남송 조정은 이를 근심하여 이에 유응룡을 현모각대제(顯謨閣待制) 신분으로 지광주(知廣州)·광남동로경략안무사(廣南東路經略安撫使)로 삼았다. 남해의 도적들은 유응룡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아났고, 유응룡은 도적들을 소탕하여 남해의 정세를 안정시켰다. 뒤에 여러 차례 유응룡을 불러 호부시랑으로 임명하고 거듭 시독(侍讀)을 겸하게 하였으나, 유응룡은 7번 상소를 올려 벼슬을 사양했다. 1275년, 병부상서(兵部尙書)·보장각직학사(寶章閣直學士)·지감주(知贛州)로 옮기고 강서병마검할(江西兵馬鈐轄)·청해군절도사(靑海軍節度使)를 겸임하였으나 이쪽도 사양하고 구봉(九峰)에 은거하였다. 이후 알려진 행적은 알 수 없다. 유응룡의 아들인 유원고(劉元高) 또한 진사로 급제하여 지후관현(知侯官縣)이 되었는데, 유원고가 죽자 홍천석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탄식했다. >조정이 1명의 어사를 잃었구나. [[분류:송나라/인물]][[분류:장시성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