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영철 (문단 편집) == 여담 == * 유영철은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얌전히 있지 않았다. 우선 감방에 들어와서 동료 수감자들을 훑어보더니 "이 중에서 '''[[조폭]] 한 명과 경제사범'''[* 정작 경제사범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한 명을 반드시 죽이고 [[사형]]당하겠다(데리고 가겠다)'''"고 선포해서 교도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정작 조폭들은 이 말을 전해듣고는 코웃음을 치며, “감히 누구를 건드리겠다는 것이냐. 유영철을 한 번 혼내주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이는 조폭들이 코웃음 칠 만도 한 게,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먹이사슬 최상위권에 포진한 이들이 바로 조폭들이다. 수직적 위계가 몸에 밴 조폭들 특성상 수감지에서도 쉽게 적응하며, 그 안에서도 무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교도관들도 질서 유지를 위해, 조폭 수감자들이 방장 노릇을 하거나 다른 재소자를 독단적으로 통제하는 행위를 해도 정도가 가벼우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묵인해주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출소 후에도 자기 뒷배를 보아줄 조직의 존재가 있다. 물론 유영철의 싸움 실력이 만만치 않다 하더라도 교도소의 깡패들이 힘을 합쳐 몰아붙이면 유영철 개인은 쉽게 제압될 것이다.] 이에 교도소 측은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76173|유영철에게 4~5명의 교도관을 상시 붙여놨으며]],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766386|조폭과 유영철에 대한 상호접근을 막았다.]] * 과거 [[2004년]], 기자에게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이미 죽었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이유는 "연쇄살인범은 그런 식의 제재가 없으면 결코 살인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4100079|#]] 그리고 그 말대로 미궁 속에 빠진 진범 [[이춘재]]가 다른 범죄 1건으로 [[무기징역]][* 1심 2심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되었다.]을 살고 있음이 드러남과 동시에, 사건명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 후일 [[2008년]]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극중에서 ‘지영민’으로 나온다. * [[http://ko.wikisource.org/wiki/서울중앙지방법원_2004고합972,973,1023|유영철의 판결문 전문]]이다. 보면 알겠지만, 다른 범죄자에 비해 판결문이 엄청나게 길다. 사람을 한두 명도 아니고 '''밝혀진 것만 20명이나 살해'''했으며, 살인 행각 과정에서 잡다한 다른 범죄들 역시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년|2004]].[[12월 13일|12.13]] 선고 2004고합972 2004고합973 2004고합1023 판결 【[[살인]]·[[현주건조물방화죄|현주 건조물 방화]]·[[사체등손괴·유기·은닉·영득죄|사체손괴]]·[[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공무원자격사칭죄|공무원 자격 사칭]]·[[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야간·공동공갈)(일부 인정된 죄명 : [[공갈]])·[[사체유기]]·[[도주]]·일반[[자동차]]방화·사체은닉·[[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죄|절도]])】] * 유영철의 PCL-R[* 일반인에게는 '사이코패스 테스트'로 알려 있다.]이 만점에 근접한 만큼, 해외에서도 유명한 [[살인마]]로 알려져 있다. 이는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1055175|사진잡지 <라이프>에서 세계 30대 살인마]]에도 올랐으며, 연쇄살인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면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그의 이름을 거론한다. 심지어 유영철이 [[한국]]에서 [[1997년]] 이래 8년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경우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오고 있는데, 그의 악명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 위에서 언급했듯, PCL-R이 만점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영철은 스스로 '사이코패스 관련 서적으로 공부를 정말 많이 해보니, 난 [[사이코패스]]가 아닌, [[소시오패스]]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전문가인 그의 일방적이고 오만한 주장일 뿐, 전혀 신빙성이 없는 허위사실이다. *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서 처음 투입된 사건이 그의 살인사건이다. 권일용의 말로는 유영철이 말이 너무 많아, 그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고. 하지만 유영철은 권일용 등의 프로파일러는 만나본 적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권일용은 이를 두고 '거짓말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려 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 또한,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그를 두고 '[[경계선 성격장애]]' 기질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물론, 의학적 진단은 전문의가 할 수 있으니, 본인이 진단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덧붙였다. 권일용이 그를 경계선 성격장애 기질이 있다고 한 이유 첫 번째로는 비정상적으로 고독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유영철은 실제로 '내가 죽인 시체 옆에 있고 싶을 정도로 외롭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순식간에 변동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영철은 아침에 기분 좋게 집을 나서자마자 본인 앞을 위험하게 지나간 오토바이 때문에 갑자기 살인 충동을 느낄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고. * 조용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구치소 내에서 난동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독방으로 직행, 언론에서는 '[[콩밥]]도 아깝다, 닥치고 사형시켜라' 등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으며 현재도 사형집행 이야기가 나오면 [[강호순]], [[정두영]], [[박한상(범죄자)|박한상]] 등과 더불어서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다. [[1994년]] [[10월 26일|10월 26일생]]으로, 현재 [age(1994-10-26)]세. [[사이코패스]]는 가족에게도 매우 폭력적일 거라는 통념과 다르게, 아들을 지극하게 아꼈다고.[* 유영철은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잘린 머리가 수건걸이에서 떨어졌던 순간도, 머리 없는 몸뚱아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던 순간도 아니었다. 그 순간 걸려온 '''"'아빠의 감기가 아직 안 나았느냐'는 아들의 전화가 가장 무서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전처 황아무개 씨는 레이디경향과 인터뷰를 할 때, "유영철의 아내로 지낸 생활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했지만, 의외로 단 한 번도 유영철이 자신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유영철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은 상태였는데도,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답변한다. [[http://m.lady.khan.co.kr/view.html?med_id=lady&artid=4989&code=4|#1]]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4100079|#2]] 비록 인터뷰에 응했다고는 하지만 전처는 "이미 몇 년 전 이혼했고 할 말이 없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다. 가정폭력이 실제로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아들을 나름대로 아끼는 마음은 있었음을 기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문동]] 여성 살인사건에 대해 경찰이 "아들의 [[대학교]] 진학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겠다"고 회유하자 거짓 진술을 했고, 감옥 내에서 기자와 나눈 편지에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인지 연쇄살인 피해자 중에 10대는 없었다. 연쇄살인 진행 중 맞닥뜨린 어린 남아를 직접 공격하진 않았던 이유를 아들과의 연관성에서 찾기도 한다. 이후 아들은 평범하게 성인으로 자라 여느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하며, 일반적인 사회인으로 살고 있으며, 놀랍게도 자기 아버지가 '그 유영철'이라는 건 '''전혀 모른다'''고 한다. 전처 황 씨가 아들이 모르게 하려고 실로 처절한 노력을 했다고. 황 씨는 아들이 자립한 후인 [[2013년]]경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서 전남편에게 살해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살고 있다.[[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483|기사]] * 자신의 범행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답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내용은 ''''아닐걸?ㅎㅎ''''. *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원래 이 인간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이 나올 계획이었지만, 세간의 비판을 인식하여 그만 두었다고 작가 본인의 언급이 있었다. 대신 '여러 해만에 [[사형]]집행 재개 여론을 들끓게 만든 희대의 살인마'라고 에필로그에 살짝 언급만 된다. 공지영 본인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유영철을 보면서 '저런 인간은 죽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느꼈다고. 다만 공지영은 유영철을 보고서 ‘손이 참 곱다.’며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 각종 [[괴담]]에 등장하기도 했다. [[유영철에 관련된 괴담]] 문서 참조. 여기에 나온 괴담은 전부 거짓이다. 칼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말도 사실은 아니다. 유영철이 칼을 흉기로 사용한 적이 있긴 있다. [[황학동]]과 [[구기동]]에서 남자를 상대로 살인을 했을 때는 얼굴 부위를 칼로 20차례 찌르고나서 해머로 마무리 했다. 이렇듯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열등감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구기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해당한 남성은 [[자폐성 장애]]인이었고 유영철이 지시를 하였지만 잘 따르지 않자 화가 나서 오버킬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부 자신의 손에 알맞게 제작한 손망치로, 속칭 '[[오함마]]'의 손잡이를 개조한 것을 써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칼로 죽이면 사람이 느리게 죽는다고 쓰지 않았다.[* 어머니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실험을 해보았더니 한 번에 죽지 않았고, 노점상 살인 때에도 한 번에 죽지 않아 범행도구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살인범 중에서 칼을 순수하게 살인의 목적으로 쓰는 경우는 살인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칼을 쓰거나 전문적으로 칼을 잘 다루는 사람이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두 경우밖에 없다. 통념과는 달리, 칼은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데 좋은 흉기가 아니다. 대개 칼로 살해된 사람의 경우 손, 팔 등에 방어흔이 많이보이는 것이 그 증거. 출혈이 생기긴 하나, 즉사는 어렵고, 죽기 직전까지 계속 저항한다는 뜻이다.[* 급소에 제대로 공격해서 [[대동맥]]을 끊어내거나 최중요 장기들에 큰 손상을 입히면 수 초 내로 절명하기는 한다. [[특수부대]] 또한 이런 식으로 기습했기에 나이프를 근접전 무성무기로 활용 가능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급소를 공격하지 않는 막공격으로는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수련을 빡쎄게 한 칼잡이 정도는 되어야 이런 게 가능하다는 소리이므로, 유영철같은 일반인이 그런 기술을 보유하는 건 어렵다.] 또한 유영철은 아파트에서 살인을 한 적이 없다. * 만화가 [[유영태]]는 이름이 비슷해서 ⌜[[홈런더비]]⌟에서 유영철로 불린 적이 있다. * [[2004년]] [[7월 26일]], 유영철을 이송하던 기동수사대 1계 2반 소속 이용길 형사가 유영철에게 달려들던 피해자 유가족[* [[이문동]] 살인사건의 유가족으로, 이 사건의 진범은 [[정남규]]였다. 이 당시에는 유영철이 진범이라고 보도되었던 시기였다.]을 발로 걷어차 유가족이 계단에서 굴러 넘어진 사건이 있었다.[[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49008_30775.html|#]] 논란이 된 이용길 형사는 "유족인 줄 몰랐으며 달려든 유족이 들고 있던 우산을 순간적으로 흉기로 보았다"고 해명했고, 이 형사 본인이 피해자 남편에게 찾아가 사과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유가족이 달려든 것은 방송사가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4072770368#Redyho|#]] 이후, 전출 징계로 마무리되었고 당시 발길질한 이용길은 진급에 아무 문제없이 잘 올라가, [[2022년]]에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감]]으로 재직하고 있다. * [[표창원]]은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 측면에서 큰 문제를 드러낸 경우'''라고 서술했다. 다만 해당 경찰에 대해서는 실드를 좀 쳐주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경찰이 살인마 유영철을 보호하기 위해 비탄에 잠겨 이성을 잃은 연약한 피해자 유가족을 발로 차는 과잉 행동을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여론 역시 분개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경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전혀 없는[* [[범죄피해자 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이 [[2011년]]이다. 유영철 사건은 [[2004년]], 이 책이 나온 것은 [[2005년]].] 우리 제도가 문제의 원인이지, 해당 경찰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 >''''공공의 적'으로 언제든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유영철을 무사히 호송해서 검찰에 인계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경찰관은 운집한 군중의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초긴장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 사태 앞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도 없이 직업적 특성에 따른 반사적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청장]]이 공개석상에서 고개 숙여 사죄했고, 해당 경찰관은 비난의 화살과 징계의 화를 당했다. [[https://hello519.tistory.com/m/254?category=449399|출처]] * 유영철에 의해 가정파괴가 된 유가족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참고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2&oid=020&aid=0002143217|눈물로만 닦을 수 있는 핏자국]], [[http://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1071800048|피해자 17가족 세상과 인연 끊고, 3가족은 풍비박산]]] * 월간조선의 이은영 기자가 유영철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일부가 이은영 기자의 기사로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공개된 편지를 보면 유영철은 글씨를 굉장히 잘 쓰고, 간단한 주소와 이름 등은 [[한자]]까지 섞어서 쓰며,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다. 행간•자간 등도 매우 일정한 점이 눈에 띄기도. 이 편지들은 훗날 <살인중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당연히 유영철의 행각이 행각인지라 '''19세 미만 구독불가''' 서적이다. 참고로 이 편지들을 읽은 이은영 기자와 [[경기대학교]] [[이수정(교수)|이수정]] 교수 등은 몸서리가 쳐지고 편지들을 몇 번이나 내 던져버렸다고. 《[[그것이 알고싶다]]》 1038회에서 이 책이 잠깐 언급되었다 한다.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4100079#_enliple|살인 중독자의 처절한 告白 - 연쇄살인犯 유영철이 보내온 50여 통의 편지]][* 편지에서 《[[살인의 추억]]》 영화를 보고 "그렇게 막나가는 범인이 아직까지 안 잡히는 것은 중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썼는데, 이게 예언처럼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14년]] [[11월]]에는 교도관에게 뒷돈을 주고 [[일본 만화]]나 성인 화보집, 야설을 밀반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982012&ref=A|#]] 이 일로 감시가 엄격한 [[대구교도소]]로 이감된 후에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 경찰 신분증을 위조하기도 했다.[* [[미군 군사경찰|미 육군 헌병]] 뱃지가 부착된 케이스에 휴대하고 다녔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여기서 유영철의 '무식함'을 지적했다. 참고로 해당 흉장은 관련 규정이 없어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이게 유영철의 연쇄살인 전후 주 범죄 수법이었다. 잔인하게 살해된 [[황학동]] 노점상 희생자 또한, 유영철이 가짜 경찰이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생계유지를 위하여 경찰을 위장해 사기 행각을 저지르고 다녀, 검거 이후 [[공문서]] 위조 및 공무원 자격 사칭 죄목 또한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직접 제작한 위조 경찰 신분증은 영화 《[[공공의 적(영화)|공공의 적]]》을 즐겨보고, 작중 나온 경찰 신분증을 보고 제작에 써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러한 위조를 막기 위해 실제와는 다른 소품을 썼는데, 그것이 위의 황학동 노점상 희생자에게 가짜 신분증이 들통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오랫동안 밀실에 갇혀있다가 풀려나온 오대수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한다. * 유영철의 경우도 대다수의 흉악범들과 마찬가지로, 첫 범행은 절도였는데, 이것이 흉악범으로 이어졌다. 그의 생애 첫 범죄는 [[1988년]][*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등 악명높은 살인사건이 많았던 해였다.] 10대 때 이웃집 누나의 방에 침입해서 기타와 현금 23만 원을 훔쳤다가 [[소년원]]에 다녀온 것이다. * 드라마 《[[모범택시(드라마)|모범택시]]》에서 장성철의 부모를 살인한 연쇄살인범(오철영)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 저지른 사건의 추적 과정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서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 공개되었다. * [[권일용]]의 르포와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프로파일링]]을 통해 연쇄살인범을 잡는 스토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배우 [[한준우]]가 연기한다. * [[2022년]]에는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홍기 목사가 [[CBS기독교방송]]에 나와 자신과 유영철의 만남에 대해 말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Wl5PXjMupFI|#]] * 경찰서 포토라인에 섰을 때 진행한 [[피해자 비난]] 인터뷰가 보도되어 굉장한 공분을 샀다. || [[파일:유영철검거당시인터뷰.png|width=100%]] || || [[MBC]] [[뉴스데스크]] ([[2004년|2004.]][[7월 18일|07.18.]])[[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49606_30775.html|#]]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