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영(촉한)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황제가 된 자신의 형 유선에 비해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형과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고 나이가 어려서 이복동생인 유리와 함께 비중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유비가 황제가 된 후 노왕(魯王)에 봉해졌지만 [[오(삼국시대)|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삼국시대)|위]]를 멸한 후를 가정하여 땅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노나라가 속한 예주가 오나라 소속이었기 때문에 촉령 기주에 소속된 감릉왕(甘陵王)으로 옮겨졌다. [[환관]] [[황호]]와 사이가 좋지 못해 형 유선을 십여년 동안 알현하지 못하고 촉 멸망 후 봉거도위로 임명되고 향후에 봉해져서 낙양으로 이주했다. 후에 유선의 후손이 영가의 난 때 모두 몰살되거나 성씨를 바꾸고 숨어들자 유영의 손자 [[유현(성한)|유현]]은 난을 피해 촉 지방에 숨어들었다. 당시 촉 일대를 장악한 저족의 왕조 성한(成漢)이 있었는데 성한의 황제 이수는 유현에게 유현의 큰할아버지 유선의 작위인 안락공에 봉하고 촉의 문신이었던 이복의 손자이자 성한 황제의 장인인 이수[* 위의 황제 이수와 동명이인이다.]를 유현에게 붙여 주었다. 347년, 동진의 [[환온]]이 성한을 멸하고 성도가 함락되었을 때 유현은 동진의 역사가인 손성을 만났다. 그 후 유현의 소식은 알 수가 없으나, 중국 각지에 자손이 퍼져 대부분의 유씨가 그의 자손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동생 유리는 기록이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한국에 있는 유(劉)씨들은 동한 3대 황제 장제의 아들이자 안제의 아버지인 청하효왕 유경의 후손이므로, 유영과는 별 상관없다. 물론 족보가 사실이란 전제에서나 가능한 얘기지만 말이다.] [[청두 유비혜릉]] 앞에는 짚신을 만들어 파는 유영의 후손이 있다고 한다.(릉 관리인이라는 말도 있다. 릉 관리인이 본업이라면 짚신 만들기는 유비가 짚신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를 반영하여 유비의 후손이 재현한 퍼포먼스 목적을 겸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늘 날 유비의 후손들은 모두 유영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