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엔 (문단 편집) ==== 과거 상임이사국 ==== 첫째로 현재 [[중화민국]]([[국민정부]])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 진영의 한 축으로써,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로 중화민국은 1945년 유엔 창립 당시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가입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중일전쟁]]을 이유로 [[국공합작]]으로 잠시나마 길을 같이했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중국 본토를 놓고 다시 [[국공내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승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기존 중국 본토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은 [[국부천대|타이완 섬으로 천도]]하면서 세력이 급속도로 작아지게 된다. 이 시기에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의 원칙과 상관없이, 유엔에서는 상임 이사국의 지위에서 중국의 대표가 두 나라인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중국의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UN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지는 더 커져만 가고, 기존 중국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의 입지는 합법적인 오직 하나의 중국 대표라는 의미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이는 유엔이 중국 대표 문제를 다룰 때에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고,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사회의 여론도 기울기 시작했다. 또한 냉전이 심화되던 상황인 만큼 소련의 입장에선 [[제2세계]]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꿰찰 경우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이런 소련의 국제적 계획을 일종의 힘의 균형을 바라는 국가들도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반대로 미국은 당연히 중화민국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이 패하자 [[영국령 홍콩]]의 안위를 위해 즉각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으며 1964년, 프랑스도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등 중화민국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졌다. 1970년에는 캐나다가 중화민국과 단교하는 등 서유럽과 북미 국가에서도 중화민국과 단교 행렬이 이어져 [[대만 외교부]]는 단교부라 불릴 지경이었다. 결국 1971년 동유럽 공산국가 [[알바니아]]를 중심으로 처음으로, "중국 대표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교체하자"라는 안건이 제출되었다. 당시까지 미국은 중화민국을 절대 지지하였다. 그래서 미국은 중화민국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주도로 "[[중화민국]]의 대표 지위를 보호를 담은 절충안"을 유엔 총회에 상정했지만 거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최대 파트너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대표 지위를 승계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개도국들의 주장으로 결국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중화민국은 유엔을 탈퇴하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기존 중화민국을 대체하는 형식으로 UN 참여에 성공했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의 UN 가입은 1971년이 아니라 1945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대만 사람들은 유엔 본부로의 출입이 까다로운 편이다. 유엔이 [[중화민국 여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만 주민 대륙 방문 통행증(台湾居民来往大陆通行证)을 소지해야 한다. 둘째로 [[소련]]이 있다. 소련이 이전 회원국이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연방의 해체 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면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소련이 추진해왔던 폐쇄적인 정책과 상당히 대비되는 것인데, 이는 소련에서의 경제 개방과 표현의 자유 실현, 각 동맹국들에 대한 내정간섭 중지를 추진하는 것이었다. 소련이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폐쇄적인 정책을 철회함에 따라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으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엔 이런 [[자유주의]] 혁명의 물결로 각 소련 동맹국들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하기에 이른다. 원래 소련의 동맹국들의 정권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명될 시에, [[제2세계]]의 보호 차원에서 소련이 직접적인 개입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소련이 개방, 개혁 정책을 실행함에 따라 더이상 그런 개입은 없어졌기에 소련에게 정치적으로 많은 의존을 해왔던 제2세계 동맹국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소련]]의 개혁 정책에 의하여 제2세계가 상당히 불안정해졌다. [[제2세계]]의 리더가 체제 개혁 정책을 편다는 것 자체가 공산주의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는 곧 지구상 대부분 제2세계의 붕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련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의 징조는 기존 소련의 방향성을 역행하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항의하는 보수파들이 반란으로 나타났다. 보수파들의 반란으로 초강대국 소련마저 상당히 불안정하게 되었고, 고르바초프는 일시적으로 실각되었다. 보수파들의 쿠데타로 가뜩이나 불안정한 소련의 재조직 가능성마저 무너뜨려 소련의 존재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렸다. 이런 보수파들의 내전이 진압되고, 혼란스러워진 전후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보리스 옐친]]은 현 상황을 감안하여 소련의 재조직이라는 길을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최종적으로 1991년에 "소련의 해체"를 결정하고, 소련 내 [[러시아 SFSR]]을 개편해 "[[러시아 연방]]"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소련이 해체되었고, 러시아 이외에 연방으로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여러 국가들도 독립을 맞이한다. 유엔의 [[상임이사국]]의 변동 또한 불가피하였다.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를 소련의 후신으로 보아 러시아에 UN 회원국 지위와 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해주고, 나머지 독립국은 이미 1945년에 UN에 가입되어 있던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를 제외하고 신생국으로서 UN 가입을 받아주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UN 가입연도는 1991년이 아니라 1945년이다. 소련과는 별도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벨라루스]]도 유엔에 창설 회원국으로서 가입했다. 이는 유엔을 구상한 연합국 간의 타협에 의한 것이다. 유엔 창립 구상 당시 소련은 영국이 [[인도 제국]], 미국이 [[필리핀 자치령]]을 유엔으로 가입시키려는 구상에 반발하여 소련 구성 공화국 15개를 전부 별도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련은 공식적으로는 독립된 공화국들의 [[국가연합]]이였고, 유엔창설 당시의 소련 헌법 역시 이론적으로 각 공화국의 국방권[* 엄밀히는 [[소련군]] 중 각 공화국과 관련된 일부 부대의 지휘권] 외교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그러면 우리도 48개 주 전부 유엔에 가입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미국의 주는 이론적으로도 각 주의 외교권이 없고 제한적 군사권([[주방위군]])만을 가지므로 미국의 주장은 사실 억지이지만, [[미국 헌법|헌법]]을 개정해서 주에 외교권과 군사권을 부여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결국 [[얄타 회담]]에서 타협하여 영국의 자치령(당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연방]] 등)들과 미국의 필리핀 자치령을 회원국으로 해주는 대가로 소련과 우크라이나, 벨로루시가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출처: David Raynolds(2009), Summits: Six Meetings that Shaped the Twentieth Century] 소련을 구성하는 15개의 공화국 중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만 UN에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련이 건국될 때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UN 가입 연도는 1991년이 아니라 1945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