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신정우회 (문단 편집) == 소속 의원들 관련 여담 == 앞서 언급했듯이 유신정우회는 기존의 전국구, 훗날로 치면 비례대표를 대체한 것이기에 정권에 의해 일종의 직능대표성을 갖춘 것으로 포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유신 체제의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이었던 학원을 포함한 지식인 사회에 대해 무마와 분열책으로서 임명제 국회의원을 최대한 이용"[* <박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이상우. 317~318쪽.]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의원 자리를 준다고 덜컥 변절할 인물이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만한 인물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이로 [[장준하]]가 사장으로 있던 잡지사 [[사상계]]에서 오랫동안 주간을 맡으면서 [[이승만]]의 독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해오던 [[신상초]]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장]] [[김정렴]]의 증언에 따르면 "사전에 낙점을 받은 인사들을 설득, 수락시키는 과정에서 '''단 한 사람도 거절하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유신헌법의 기초자였던 [[갈봉근]], [[한태연]]은 유신정우회 의원을 7년간 3기 연임[* 그러니까 재선 국회의원.]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헌법의 혜택을 최대한도로 누렸다. 그 외에 3기를 모두 역임한 인사로는 전 총리 [[백두진]]을 위시해 [[고재필]]([[만주국]] 관리, 보건사회부 [[장관]]), [[서영희(정치인)|서영희]]([[경희대학교]] 교수, 여성인사), [[정재호(1930)|정재호]]([[경향신문]] 정치부장), [[최영희(군인)|최영희]]([[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육군 [[중장]] 퇴역. 4개국 특명대사, 전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가 있다. [[김구]]의 차남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었다.]과 [[안중근]] 의사의 5촌조카인 [[안춘생]][* 1912~2011. [[1951년]]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 학교로 재설치되면서 초대 [[교장]]직을 수행했다. 교장이 되었을 당시의 계급은 육군 [[준장]]. [[1998년]]~[[1999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으며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했다.]도 유신정우회 제9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었다. [[참군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이종찬]] 장군도 이 유신정우회 9~10대 국회의원 직을 지낸 바 있다. 친일 행적과 더불어 이종찬에겐 또 하나의 [[흑역사]]. 이종찬의 국회 활동은 최소한도였고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당시 [[김영삼]] 의원 제명 건에서는 석상에서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론에 떠밀려 표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이종찬은 한 번 정도는 그래도 박정희와의 친분을 생각해 감수하려고 했지만, 또 지명되자 자신에게 신세를 진 바 있던 [[김재규]] 중정부장에게 전화해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