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신정우회 (문단 편집)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유신정우회.jpg|width=100%]]}}} ||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시기 [[대한민국]] 국회에 존재했던 '''박정희의,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교섭단체]]. 약칭은 유정회(維政會). 정식 명칭보다는 약칭으로 많이 불린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정치교수|금배지 한번 달아보겠다고 유신체제를 찬양하던 대학교수/학자/문필가/언론인들]]이 많아[* 대학교수만 따지면 1기 11명, 2기 21명, 3기 21명이다.] [[민주공화당]]에서조차 ''''유신의 친위대''''라고 부르며 견제했었고, 주로 여야가 충돌할 때 앞다투어 나와 고함과 야유를 보내고 육체적 격돌을 담당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에서는 '청와대 특공대'라는 멸칭을 붙였다. 그외 '관선 의원', '73명의 거수기' 같은 별명도 있다. 정권을 후원하는 것만이 존재 목적이었고, 당의 강령이나 지도부 조직, 기타 등등 당으로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국회의원만 존재하는 껍데기 정당, 유사 조직이었으며, 쉽게 말해 '''정권의 거수기''' 정당이었다. '''창설 이유도 대놓고 "대통령이 창출한 유신 이념을 국정에 반영토록 한다"였다.''' 유신정우회라는 명칭은 [[일본]]의 1867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과, 1900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입헌정우회]](立憲政友會)'에서 따왔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어엿한 정당으로 활동한 입헌정우회와 비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실례고, 그 후신으로 1940년 결성된 [[군국주의]] 정당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가 유신정우회와 더 비슷하다. 다만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유신정우회의 유신은 메이지 유신이 아니라 [[10월 유신]]에서 따온 말이며 정우회라는 명칭 자체가 단순히 "정치하는 친구들 모임" 정도기 때문에 이를 대놓고 일제에서 따왔다는 것은 억지의 요소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