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비/혈통 (문단 편집) === 적대 인물들도 혈통을 의심하지 않는다 === 후한 말에는 상대방의 혈통에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을 경우 그 점을 트집잡아 공격하는 [[프로파간다]]가 매우 흔한 일이었다. [[원술]]이나 [[공손찬]]이 [[원소(삼국지)|원소]]가 얼자라고 '종놈', 심지어는 원가도 아닌 게 원가를 사칭하는 놈이라고 헐뜯었던 것이라든가, 원소가 조조의 혈통이 '환관' 집안이라고 헐뜯었던 것은 전부 당대 사서의 기록에 남아있다. 그런데 그 악명 높은 [[조조]]와 [[조비]]마저도 유비의 혈통에 대해서는 전혀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특히 조조의 경우 그 유명한 [[논영회]]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치 에너미|평생에 걸쳐 다른 모든 군웅들을 제껴놓고 오직 유비만을 자신의 가장 껄끄러운 상대로 여겼던]] 인물이다. 혹시라도 유비에게 혈통 관련해서 뭔가 트집잡을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유비의 혈통에 대해 조사해보는 것이 당연하며, 당시 협천자를 통해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사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혹거리가 있었다면, 그걸 트집잡아 역적으로 몰아붙여 유비 세력을 궤멸하는 것 정도는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조조 입장에서는 유비를 살려둔 채 붙잡아두고 할 바에는 '''처음부터 유비를 황실 사칭 혐의로 제거해버리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관우 장비 등을 회유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깔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결국 유비를 황제에게 직접 소개하면서 황족으로 인정해야 했고, 이후에도 과거 유비의 직업을 가지고 [[돗자리]] 짜고 [[짚신]] 만들던 놈이라고 욕할지언정(...) 혈통을 가지고 욕하지는 못했다. 이는 조조가 유비의 혈통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커녕 의혹조차도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훗날 유비가 칭제를 할 때 멸망한 한(후한)을 잇는다는 의미로 국호를 한이라 했는데, 이 당시 후한을 멸한 조비 측에서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당연히 유비의 혈통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나 조비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유비의 혈통을 부정하지 못했다. 적어도 삼국시대 당시에는 유비의 혈통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개차반 패륜아에 불효자 에피소드도 한가득인 조비가 이 정도의 공격거리를 고작 아버지 체면을 생각해서 놔두었을 가능성도 낮다. 이렇듯 당대의 거의 모든 기록과 당시 사람들이 당사자인 유씨 일족에서 적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유비가 황실 종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후대사람들이 유비의 혈통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뜬금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당대 사서를 보면 혈통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뭔가 기록에 남기거나 확실하지 않다고 서술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수의 경우 [[손견]]이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의 자손이라는 떡밥에 대해서는 "아마 손무의 자손일 걸로 추측된다."라는 불확실한 추정만 했지만 유비와 조조는 명백하게 그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거론했다. 그런데 [[모순|손견은 현대에서 이미 손무의 자손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굳어졌고, 유비는 혈통을 사칭했다고 의심을 받는다]]. 일부에서는 조위의 입장에서 조조 인생 최후의 난적이었던 유비를 의도적으로 띄워줘야 조조에 대한 면피가 되니 사서에 유비의 황실 혈통을 긍정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위는 그렇다 쳐도, 조위 외에 유비와 적대하던 그 누구도 유비의 혈통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다. 예로 유비와 한 번도 좋은 관계였던 적이 없던 [[원술]]만 봐도, 종국에는 유비가 아예 조조군을 이끌고 자신을 치러 오는데도 유비를 가짜 황족이라고 비난한 적이 없다.[* 특히 원술은 사세삼공 명문가의 적자라는 자부심이 워낙 커서 유비 쯤은 갑툭튀한 듣보잡 정도로 취급했고 끝내 칭제를 감행했음에도 유비의 혈통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유비의 유기-유종의 승계 문제를 두고 대립하던 형주 채씨 문중,[* 유비가 유기를 적극 후원할 수 있었던 것이 유비가 방계라도 하여간 친족이라는 데 있었다. 유비를 쳐내고 유기를 [[낙동강 오리알]] 만드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혈통 논란으로 유비를 친족집단에서 축출하는 것이며 안 그래도 유표는 유비를 은근히 경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채씨네가 그걸 못한 이유는 뻔하다.] 적벽 직전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노래를 부르며 손유동맹을 반대하던 강동 호족들,[* 연의의 ~~키배~~논쟁씬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긴 했지만 연의는 명대의 저작임을 잊지 말자. 그나마도 제갈량이 입을 다물게 만든다.] 유비의 입촉을 반대하던 친 유장 휘하 서촉 세력들이나 한중에서 대치했던 장로, 아무런 정당성 없이 뜬금포로 칭제를 감행한 손권 등 조조 아니어도 유비를 까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누구도 이걸 써먹은적이 없다.[* 여기서 유표, 유장, 손권 정도는 그래도 유비의 황실 혈통을 한 번씩은 써먹었으니, 황족 타이틀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기 위해 눈감아준 것일 수 있다고 쳐도, 서촉 호족들이나 장로는 정말 아무런 부담 없이 유비에게 마음껏 딜을 넣을 수 있는 입장인데도 한 번도 유비의 혈통을 깐 적이 없다.] 까놓고 촉한 수립의 정당성이 오롯이 유비의 황실 혈통에 있었는데[* 위촉오 3국 중 촉은 유일하게 익주와는 하등의 인연이 없는 쌩 외지인들이 들어와 세운 국가다. 이런 국가들은 보통 현지세력과의 통혼을 통해 기반을 다지려 하는데 유비는 그나마 [[목황후]]와 혼인했지만 유선은 유비의 친위세력이자 마찬가지로 외지(하북)출신인 장비의 딸만 연달아 황후로 맞을 수 있었을 정도로 촉에서 유씨 황실의 권위는 막강했다.] 혈통을 문제삼을 수 있었으면 조위나 동오가 이걸 안 써먹었을 것이며, 그런 심리전이 벌어졌으면 당대 기록에 흔적이 남지 않았겠는가? 애초에 삼국지는 조위가 아니라 서진에서 편찬한 역사서다. 서진 입장에서 최대 관심사는 한-조위-서진으로 이어지는 정권 승계의 정당성이지 조조의 통일 실패에 대한 변명 따위가 아니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이 승계구도에 가장 껄끄러운 존재인 촉한 황실의 혈통에 대해 아무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것만 봐도 후대의 유비 혈통 논란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공범 논리대로 속은(혹은 이용해먹은) 쪽이 우스워지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조씨 황실을 짓밟고 집권한 사마씨 정권은 더더욱 이 문제를 들먹임으로써 조씨와 유씨, 심지어 손씨까지 [[모두까기|동시에 두들겨]] 이득을 취해야 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미 유비의 혈통 문제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사실관계가 이미 다 정리되어 있었고 완벽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