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유비 (문단 편집) == 이름과 칭호 == 널리 알려진 '유비 현덕'이라는 표기는 일본 이외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를 한국에서 쓰는 것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오늘도 황하는 도도히 흐른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며 유비가 황하를 바라보다가 장비와 만나는 《삼국지》이다.]가 60~70년대 한국으로도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한자로 성 2자+이름 2자를 기본으로 쓰는 일본인답게 유비 현덕, 관우 운장으로 4글자를 맞추어 이름을 풀어 써 표기하는 등의 오류를 저질렀다.[* 별개로 제갈량을 '제갈 공명'으로 표기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성인 제갈과 자인 공명을 합쳐 제갈 공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은 표기이기 때문. '유비 현덕'은 굳이 따지자면 '제갈량 공명'이라고 쓴 것과 같다. 실제로 일본에서 나온 코에이의 삼국지 영걸전, 공명전 등에서 제갈량 공명으로 등장한다.] 《연의》 본문에서는 유비, 유현덕, 현덕, 유황숙, 한중왕, 선주, 소열제 등의 호칭으로 그를 가리킨다. 이런 모습이 미디어에서 드러나는 것이 과거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삼국지2 ~ 공명전)과 《범우사판 삼국지》인데, 전자는 일본식으로 4자에 맞춰 표기하고 후자는 대만판의 번역이라 유현덕, 관운장, 관 공(公)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화권에서는 자와 이름을 다같이 소개할 때는 성은 유, 이름은 비, 자는 현덕이라고 각자 하나씩 쓰거나, 줄여서 부를 때는 유비, 유현덕이라고 부르지 한 번에 이름과 자를 같이하며 유비 현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신삼국에서 유비 휘하의 부하들이 자신의 소속을 밝힐 때 주공의 이름을 "유비 유현덕"이라고 부르긴 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성+이름+자의 구조로 말하는 경우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중국의 삼국지 드라마에서는 아예 자막에 이름을 넣고 자는 따로 표기한다. 즉 유비를 소개한다면 유비 자(字) 현덕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비를 부를 때는 [[헌제]]처럼 윗사람은 유비라고 부르고, 동급인 다른 군주들은 '현덕'이라 부르며, 아랫사람은 유예주, 유좌장군(예주 자사 및 좌장군을 제수 받은 적이 있으므로)등 관직명으로 부르고 현덕공이라고 자에 높임말을 쓰는 것은 오류이다. 그냥 현덕이라고 부르든가(윗사람 또는 친구), 직책 이름인 유예주 내지는 그냥 유 공(아랫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편지를 쓸 때는 족하라고 부른다. 고대 중국에서는 성인이나 부모, 조상, 군주 등의 이름과 같은 한자를 쓰지 않음을 예로 여겼고, 발음도 하지 않았다. 이를 [[피휘]](避諱)라고 부른다. 피휘할 대상은 아니더라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다. 대놓고 면전에다 이름을 부르면 모욕도 그런 모욕이 없다고 했다.[*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 후반부에서 흑화한 사마의의 모습에 실망한 [[백령균]]이 딥빡친 목소리로 '사마의'라고 부르자 사마의도 당황해서 지금 날 뭐라고 불렀냐고 화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이유에서다.] 자(字)를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부르는 이름이고 실제로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는데 자야말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한 또 다른 이름이었다. 요컨대, 이름이야말로 친한 사람들끼리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친한 사람이라고 함은 친구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가족 등 그야말로 혈연관계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다. 또한 공식적인 문서에는 인물의 이름을 쓴다. 다시 말하자면, 벼슬과 자는 같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성+자를 하면 존중의 의미이고, 그냥 벼슬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성+벼슬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을 꽤 존중해 주는 지칭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는 좀 다른 부분이다. 김 사장님, 김 교수님보다는 김철수 사장님, 김철수 교수님 쪽이 더 격식있게 느껴지는 편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유비의 이름과 자의 뜻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비의 이름인 '''비'''(備)는 첫째, 근신하며 준비한다는 뜻이다. 《소대예기》(小戴禮記)에는 "일을 경계해 근심하지 않는 것을 '지비'(知備)라 한다(事戒不虞曰知備)."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역경》(易經)<계사>(繫辭)에 "역(易)의 글됨이 광대해(우주의 모든 문제를) 그 속에 전부 갖추고 있다(易之爲書也, 廣大悉備)에서 볼 수 있듯이 '완전하다, 모두 갖추고 있다'는 뜻이 있다. 유비의 자(字)는 더 특별하고 무게감도 있다. 유비의 자는 '''현덕'''(玄德)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는 현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행해도 그 공에 의지하지 않으며, 길러도 주재하지 않는 것을 이르러 '현덕'이라 이른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간단하게 해석하면 현덕에는 세 가지 상태가 있다. 첫째, '낳고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생이불유'''(生而不有)이다. 즉 자신이 심은 사과라도 혼자 소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둘째, '행해도 그 공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위이불시'''(爲而不恃)이다. 즉 내가 한 일이라 해도 자랑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겸허하게 행동하며 과장해 늘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장이부재'''(長而不宰)이다. 여기서 '재'(宰)는 주관을, '장'(長)은 장년을 뜻하는 말로 권위 있고 존귀한 위치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권한을 이양하고 부여할 줄 안다는 뜻이다. 유비의 다양한 호칭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유비(劉備): 본명.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른바 전근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상대가 미성년자이거나 평민, 노비가 아니고서야 함부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형제자매 간에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으니, 따라서 '유비 놈' 이라든지 '네 이놈 유비' 라는 식으로 적이 더 많이 썼다.[* 여기서 더 낮추면 '귀 큰 놈'이라든가 '돗자리 짜던 촌놈' 하는 식의 욕설로 호칭하게 된다.] 유비 자신이 황제와 같은 윗사람 앞에서 또는 윗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도 ‘비’라고 자기 이름을 직접 불렀다.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표현이다. * 현덕(玄德): 자. 현덕이라는 그의 자는 《[[도덕경]]》 10장에서 따온 어휘로 여겨지며, 이를 풀이하자면 우주에 드러내지 않은 채 만물을 다루고 변화하게 하는 깊은 도리(대자연의 질서), 묘한 덕 또는 매우 깊은 덕이라는 뜻이다. * [anchor(유현덕)]유현덕(劉玄德): 성+자. 딱히 벼슬이 없을 때는 이 호칭이 자주 쓰였다. * 귀 큰 놈(대이아大耳兒/혹은 대이옹大耳翁): 적대 군주가 유비를 욕할 때 부르는 이름 + 여포가 죽기 직전 부른 이름이다. 예를 들어 [[여포]]의 [[유언#s-1]]이 있다. * 비슷한 별명으로 당나귀같이 귀가 큰 자([[기령]]), 돗자리나 짜던 촌놈[* 《연의》에서는 툭하면 적들에게 "돗자리나 짜던 천한 놈이"라면서 출신 문제로 욕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황족인 동시에 하류층인 미묘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등이 있다. * 유 예주(劉 豫州): 도겸, [[조조]]가 상표하여 [[예주]]목을 벼슬로 받았을 때의 호칭.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지방관을 역임했거나 역임하고 있는 자는 성씨와 그 지방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덧붙여 유비가 자주 있던 소패는 예주 패국 패현으로 추정된다. * 바리에이션으로 '''(예주)자사님'''이라는 뜻의 사군(使君)도 확인된다. [[논영회]]에서 조조가 유비를 부를 때 사용한 단어. * [anchor(유황숙)]유 황숙(劉 皇叔): 《연의》에서 [[헌제]]와 만난 다음 [[족보]]를 뒤져보고 황제의 숙부뻘이라 하여 붙은 호칭이다. 주로 아군 측에서 유비의 혈통을 높이려는 뜻에서 자주 쓴다. 당연히 역사적으론 쓰인적이 없다.[* 사실 연의에서 유황숙유황숙하니 유비가 혈통팔아먹고 다니는 인물로 여겨질 때도 있는데, 사서에서 유비의 혈통에 대한 얘기는 그가 중산정왕 유승의 아들 유정의 후예란 게 짧게 언급되는 정도다. 황실에서 전한대에서 갈라져나온 유비와 달리 후한대에서 갈라져나온 유엽같은 인물도 딱히 혈통 덕을 본게 없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평민 출신인 유비가 이걸로 딱히 대접받았을 확률도 희박하다. 헌제가 의대조 사건 때 그를 포섭한 이유는 그가 조조에게 대적하는 실력자여서였지, 촌수를 따지기도 힘들만큼 희미한 혈통 때문이 아니다. 물론 나중에 유비가 칭제할 정도로 세력을 키운 이후엔 유씨 성이 명분 면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먼 방계라고 해도 확실한 유씨고, 확실히 한 고조의 후예긴 하니까.] * 좌장군(左將軍): 유비가 한중왕에 스스로 등극하기 전 조정에서 정식으로 받은 최고 관직은 좌장군이다. 출처는 <노숙전>, 《오서》 인용 주석, 관우의 말. 사실 과거나 현재나 직함이 있을 경우 그걸 붙여 호칭하는 게 일반적이라 그 사람의 행적을 조명할 때나 어떠어떠한 지위를 거쳤다고 적는 거지, 그렇게 불렸다는 출처를 표기하라거나, 그것들을 일일이 불렸던 호칭이라고 열거하는 건 의미가 없다. * 한중왕(漢中王): 한중왕에 오른 뒤에 쓰인 이름이다. * [anchor(촉선주)]선주(先主): 촉한의 앞선 군주라는 뜻. 《[[정사 삼국지]]》에서 쓰인 호칭이며,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가 황제가 된 후에는 해당 표현이 쓰인다. 성+선주라고 해서 불린 적이 있는 듯하다. [[북송]] 시대의 기록 가운데 《삼국지》를 소재로 한 연극을 보고 한 농부가 의자를 머리에 쓴 다음 "유 선주 같지 않나?"면서 장난을 쳤다는 것이 있다.[* [[면류관]]을 의자에 비유한 것이기 때문에 황제의 지위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 농부는 관청에 잡혀갔지만, 황제가 무지렁이 시골 농민이 장난친 걸 가지고 진지 빤다며 풀어주게 했다.] 위의 정통성을 이은 진나라의 사가인 진수가 촉한을 꽤나 존중했음을 나타내는 칭호다.[* 참고로 진수는 서진의 관료였으므로 조위 정통론자의 입장이었고, 따라서 위나라는 통상적인 본기의 서술을 따라 <무제기>, <문제기> 등으로 호칭했다. 오나라의 황제였던 손권에 대해서는 <오주전>이라고만 쓰고 본문 첫머리부터 "손권은 자가 중모이다." 라며 이름을 언급하는데, 유비는 제목은 비슷하게 <선주전>이지만 그 이름을 말할 때 "선주의 성은 유이고, '''휘'''는 비이다." 라며 나름의 존칭을 사용했다. 여담으로 사마의는 선제라는 추존 명칭이 있었는데도 그냥 진나라가 왕국이던 시절의 추존명인 사마선왕이라고 적었다.] 유비의 뒤를 이어 촉한의 황제가 된 [[유선(삼국지)|유선]]은 후주(後主)라고 불린다. * [anchor(한소열제)]소열제(昭烈帝): [[시호]]+제(帝)를 붙여서 황제로 취급한 것. 정통성을 인정하여 가장 높이 평가하는 호칭이다.[* 소열은 [[시호]]이고, [[연호]]는 장무다.] 물론 시호이므로 생전에 저렇게 불린 적은 없다. * 소열, 한소열: 帝는 떼고 시호만 부르는 명칭이다. 한국에서 조선 시대 왕들을 부를 때 보통 묘호를 부르듯, 조선 시대에 유비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면 시호인 소열로 부르는 기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 음흉한 놈, 사기꾼, 배신의 달인, 유통수, 당나귀 귀: 촉까들이 종종 쓰는 호칭. 물론 촉까가 아니어도 유비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개중 '''음흉한 놈'''이란 호칭은 위서의 [[정욱]]도 대놓고 부를만큼 그 유서가 깊다. * 유패왕: [[유비 패왕설]]에서 기인한 명칭. 인터넷상에서 많이 쓰인다. * 누상촌 [[돗자리]]파 두목: 유비군이 기본적으로는 임협의 성격이 강했기에 나오는 말. 실제로 [[토사구팽]]만 빼고 [[고제(전한)|한고제 유방]]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은근히 한국 인터넷상에서 많이 쓰인다. 실제로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유비의 기반 세력을 탁군 저잣거리의 [[유협 집단]]으로 해석한 뒤 도원결의 부분을 2차 창작으로 적어놓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